[풋볼리스트=인천] 허인회 수습기자= 인천유나이티드 공격수 김호남의 2019년은 다사다난했다. 제주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지난해 7월 팀 성적이 좋지 않자 갑작스럽게 트레이드 통보를 받고 인천으로 거취를 옮겼다. 당시 만삭인 아내를 제주도에 남겨두고 먼저 떠나야 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이후 인천의 잔류에 한몫하는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후반기 K리그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됐다.

김호남과 남준재의 트레이드를 통해 K리그 선수의 동의 없이 구단간 합의만으로 이적을 결정(선수 연봉 총액 또는 기본급 연액이 향상될 경우)할 수 있는 로컬룰이 '악법'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고통을 겪어 본 김호남은 ‘풋볼리스트’를 통해 선수들이 부당한 트레이드나 계약 해지를 당하는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인천의 K리그1 잔류 소감과 ‘잔류왕’ 별명에 대한 생각은?

“우선 다행이다. 그때는 참 기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시간을 돌려보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성과였던 것 같다. 리그 10위는 좋은 순위가 아니다. 비록 시즌 중간에 합류했지만 팀의 일원으로서 기쁘면서도 시간이 지나니 씁쓸했다.

잔류왕이라는 별명을 팬 분들, 선수들, 인천 직원들이 마냥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부심은 있다. 2부 리그로 떨어지지 않은 시민구단은 유일하기 때문이다. 넘어서는 게 숙제인 것 같다. 2020년에는 잔류왕이라는 타이틀을 없애고 싶다.”

 

-인천에서 겨우 반 시즌 뛰었는데 팬들을 향한 사랑이 넘친다.

“힘들었을 때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 분들이 팬이다. 선수는 축구장에서 가장 많은 것을 느낀다. 팬들의 응원이 나를 다시 살려준 것 같다. 은인들에게 항상 감사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많은 ‘짤’을 생성했다. 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한 'X나 멋있어요' 발언, 버스 맞이 행사 때 놀라면서 지은 극적인 표정 등 다양하다.

“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메가폰을 들었다. 처음에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모든 팬 분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진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격하게 표현을 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멋있는 건 멋있는 거니까. 하지만 어린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는 김호남의 말이 거짓이라며 그의 손을 전기로 지졌다.)

버스 맞이 행사 때는 정말 놀랐다. 원래 얼굴에 티가 잘 난다.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날은 얼굴과 몸에 티가 났나보다. 발목 부상이 있었는데 그날 발목이 안 아프더라.”

 

-명예 인천 유스, 김인천 등 불리는 별명이 다양하다. 팬들에게 이름을 가장 많이 불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선수들한테는 김인천으로 불린다. 팬들로부터 김메남, 선 오브 인천 등도 들어봤다. 다 좋고 감사하다. 앞으로 계속 좋은 별명이 생기게끔 활약 보여주겠다.

팬들에게 이름을 가장 많이 불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은 좋은 활약을 해야 팬 분들이 이름을 불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오를 그런 식으로 표현해봤다. 리그 후반기 때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못했다. 동계훈련 기간 동안 잘 준비해서 2020시즌에 더 완벽한 모습으로 더 많은 콜을 듣고 싶다.”

-지난 시즌 중간에 제주에서 인천으로 이적했다. 다른 결과를 맞이한 두 팀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가장 큰 차이는 제주는 섬이고, 인천은 육지다. 분위기에도 차이가 있다. 제주는 기업구단이면서 선수 스쿼드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위권이 낯선 팀이었다. 하지만 전반기 동안 팀 분위기가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도 그랬으니, 후반기까지 제주에서 뛴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인천에 오고 나서 정말 놀랐다. 10위권 밖에 있는데도 훈련 분위기나 일상생활에서 분위기가 활기찼다. 하위권 팀이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에 가면 실력을 떠나 분위기 싸움이 중요해진다. 그런 부분이 인천이 잔류를 했던 요인으로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제주에서 17경기를 뛰는 동안 골이 없었지만, 인천에서 18경기를 뛰며 4골을 넣었다. 지난 시즌 제주에서 윙백을 맡다가 인천에서 윙포워드를 보는 등 포지션에도 변화가 있었다.

“제주에 있을 때 득점하지 못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때도 최선을 다 했다. 골을 넣기 위한 훈련도 따로 많이 했다. 핑계가 아니다. 공격수로서 동계훈련 동안에도 열심히 준비했다. (윤)일록이와 시너지도 좋았고, 많은 기대를 받았다. 결국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스스로가 부족한 것 같았다.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다.

포지션이 바뀐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김)진야도 올림픽 대표팀에서 사이드 백을 보고, 소속팀에선 윙어 역할을 맡았다. 정말 비슷할 것 같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공감하는 말을 많이 해줬다. 지금은 서울로 갔지만 그때의 얘기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한다.”

 

-제주에서 뛰던 시절 남준재와 트레이드 되며 인천으로 이적했다. 선수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채 통보를 받았는데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당시 슈팅 감각이 떨어진 느낌이 들어 통보 전날 피지컬 코치님께 훈련을 요청했다. 마침 (이)근호가 슈팅 훈련이 있어 함께 진행했다. 그날따라 슈팅이 발에 잘 걸렸다. 기분 좋은 상태로 훈련을 마쳤는데 에이전트분이 나를 미팅실로 불러 트레이드 사실을 알려줬다. 정말 가기 싫었다. 제주를 정말 좋아했다. 그곳에서 집 계약도 마친 상태였다. 솔직하게 가기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상태였다.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떠나야했다. 제주는 나에게 추억이 많은 팀이다. 서운하긴 했다. 여전히 고마운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제주 팬 분들께는 감사와 죄송함을 모두 전하고 싶다.”

 

-제주를 떠날 때 최윤겸 당시 감독이 따로 해준 말은?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최윤겸 감독님한테 따로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미안한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함께 보낸 세월을 후회하지 않는다. 머리 맞대고 최선을 다했다. 조금 쑥스러운 얘기지만 선수들에게 떠난다고 말하면서 서럽게 울었다. 감독님이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악수를 청하셨다.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집 문제 등 많은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 채 급하게 인천으로 떠났을 것 같다.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통보 받은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탔는데, 아내가 혼자 가구를 정리하고 집을 알아보더라.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아내를 힘들게 만들까. 근데 나만 유별나게 부각되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나 말고도 부당한 트레이드나 계약 해지를 당하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2020시즌에도 인천에서 뛰게 되나? 지난 시즌 37번이었는데 올해 원하는 등번호는?

“인천에 남는다. 11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번호다. 달고 싶다. 다음 시즌 유니폼이 2019시즌과 똑같은 브랜드였다면 번호를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팬 분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괜히 또 사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브랜드가 바뀌었다. 미련 없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번호를 노려보겠다.”

 

-쌍둥이 아빠가 됐다. 육아 팁이 있다면?

"아내랑 육아를 함께 하다가 최근 장모님이 휴가를 주셔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와이프에게 했던 얘기가 있다. 나는 원래 오래 사는데 욕심이 없었다. 의미 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아기들을 보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말 속에는 정말 많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휴식기에는 24시간을 모두 육아에 쏟는다. 육아를 잘 하는 편이다. 아내가 평가를 좋게 해주더라. 아기들도 성향이 모두 다르다. 아들은 아기 띠를 하고 압박해주면 잠을 잘 잔다. 딸은 쪽쪽이를 물리면서 못 놀래게 조금 눌러주면 잘 잔다."

 

-다음 시즌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특별한 건 없다. 제일 자신 있고 오랜 기간 해왔던 게 축구다. 축구를 10년 정도 하다 보니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더라. 프로 선수로서 제일 중요한 점은 가지고 있는 열정을 운동장 위에서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도 김호남답게 운동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그리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해본 적이 없다. 인천과 함께라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유상철 감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독님과 똑같이 아파보지 못해서 감독님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진심으로 감독님을 존경하는 제자가 감독님의 힘겨운 시간들을 묵묵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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