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한때 얇은 선수층과 줄부상 때문에 추락 위기를 겪었던 대구FC가 일찌감치 파이널A(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짓게 한 마지막 퍼즐은 전역 선수들이었다.

지난 8월 아산무궁화에서 돌아온 김선민과 김동진 모두 전역 즉시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9월 상주상무에서 돌아온 신창무 역시 휴식 없이 전력의 한 축으로 돌아왔다. 대구는 김선민, 김동진 복귀 이후 3승 4무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김선민은 장기부상을 당한 미드필더 츠바사 대신 중원에서 수비와 빌드업 모두 준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선수들은 대구의 달라진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체감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김선민이 의경으로 입대하기 직전 시즌이었던 2017년, 대구는 하위 스플릿이었다. 강등권과 승점차가 단 3점에 그치며 아슬아슬하게 잔류했다. 이번 시즌에는 3위 FC서울을 승점 4점차로 추격하는 4위다. 새로운 홈 구장과 클럽하우스, 가득 들어찬 팬들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역자 대표로 김선민의 소감을 들어봤다. 새 클럽하우스에서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 보이스톡을 해야 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게 만족스럽다고 했다. 김선민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솔직히 군대 가기 전에는 대구FC가 약팀이었다면, 이젠 강팀이 된 것 같다. 군에 있을 때는 대구에 올 일이 없었다. 아산은 K리그2니까 맞상대할 일도 없었고. 컴퓨터로 대구 영상을 찾아보며 간접체험만 했다.

전역 후 실제로 뛰었을 때, 굉장히 감격스러웠다. 뛰면서 계속 울컥울컥 하더라. 관중이 많이 오는 팀에서 뛸 수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인 줄 몰랐다. 그때 대구에 오래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오래 남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 기왕이면 좋은 조건으로.

그리고 전역한 선수들끼리 늘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이 정도의 분위기인 줄 몰랐는데, 일단 경기장에 들어가면 안 뛸 수가 없겠다’라는 말이다. 경기장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게 팬들께 큰 메리트로 다가가는 것 같다. 발 구르기 할 때 바닥 재질(알루미늄)이 다른 구장과 다른 거 맞나? 그것도 감동적이고.

모든 게 새롭다. 일단 K리그에서 볼 수 없는 경기장과 클럽하우스, 훈련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선수에게는 가장 크게 와 닿는다. 그게 경기력으로 이어지고, 쉽게 지지 않는 팀이 됐다.

서포터도 얼마나 늘었는지, 하늘색 유니폼이 꽉 찬 모습은 아름다웠다. 예뻤다고 할까. 경기 끝나고 나서 버스에 탈 때 팬들이 기다려주시는 것도 새롭다. 그런 건 울산, 전북, 서울 같은 팀에만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받은 전역 축하 메시지 같은 건 별로 없다. 개인 팬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건 (정)승원이같이 잘 생긴 선수나 (조)현우, 그리고 세징야 같은 외국인 선수들이나 있는 거지. 사실 군대 가기 전에는 우리 1군에 개인 팬 가진 선수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런 이미지의 팀이 아니었다. 그때 2군의 어린 선수였던 (김)대원이와 승원이가 주축으로 뛰니까 평균 외모가 상승했다.

3위 등극에 대한 목표는 구단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알아서 갖게 됐다. 상위 스플릿이라는 목표를 이룬 뒤 더 큰 목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대로 5, 6위와 승점차가 적기 때문에 한 경기만 잘못돼도 순위가 쭉 떨어질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내가 울산에 있었을 때(2014)가 좀 부진했던 시즌이라서 6위에 그쳤다. 아마 이번에 내 생애 최고 순위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목표는 이제 없다. 군대 가기 전에는 공격 포인트도 많이 올리는 선수였지만 내 스타일이 좀 바뀌었다. 이젠 수비를 먼저 신경 쓰고 팀에 헌신하는 미드필더가 됐다. (류)재문이, (황)순민이 형 같은 동료 미드필더들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다. 분유값을 버는 것도 내 역할이고.”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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