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파주] 김정용 기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울리 슈틸리케 남자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다. 이용수 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을 옹호하는 근거로 소집 기간 부족을 들었다. 2002년 이후 한국 축구에서 계속 반복된 이야기다.

이 위원장은 3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파주 국가대표축구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기술위원회를 통해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논의한 뒤 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슈틸리케 감독을 다시 한 번 신뢰하며, 우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이전에도 여러 최종예선에서 어려운 과정을 겪었지만 월드컵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왔다는 걸 믿으면서 다시 한 번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A조에서 7차전까지 조 2위를 달리고 있지만 3위 우즈베키스탄과 승점차가 1점에 불과해 불안한 상황이다. 조 2위까지 본선에 직행하고, 조 3위는 조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통과해야 본선에 갈 수 있다. 한국은 한 번도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밀린 적이 없다.

한국은 최종예선에서 현재까지 4승 1무 2패에 그쳤다. 특히 최근 4경기 중 이란 원정과 중국 원정에서 패배했다. 원정 경기에 유독 약하다. 구자철, 기성용 등 선수들 스스로 정신력 문제를 거론하며 자신들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지만 리더십과 전술 양쪽 모두 슈틸리케 감독을 위태롭게 만들기 충분한 결과였다.

이 위원장은 한국이 부진한 이유로 일반적이고 당연한 문제를 꺼냈다. 슈틸리케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촉박한 훈련 일정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상대팀에 맞는, 또 우리 대표팀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전술이 잘 준비돼왔다고 생각한다. 몇 경기 결과가 아쉬운 건 준비 과정에서 조금 더 충실하게 하지 못한 요인 때문이었다. 그것은 우리와 상대하는 모든 팀들이 2주 3주 이상 준비하고 우리와 경기하기 때문이다. 우린 대부분 이틀이나 3일 훈련하고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위원장은 브리핑 막판에 ‘대표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해 달라’는 질문을 재차 받았을 때도 같은 취지의 대답을 반복했다. “말씀드린 대로 이틀, 길면 3일 정도 훈련하고 경기를 한다. 어떤 때는 세트피스 훈련도 완벽하게 못 한 상태에서 경기를 한다. 프로축구연맹과의 협의를 통해 6월에는 일주일 정도 먼저 팀을 소집할 수 있도록 했다. (...) 오해하지 말아 달라. 감독의 전술은 좋았는데 선수들이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 2002년 이후 많은 선수들이 유럽 등 해외에 진출했고, 국내 프로축구도 대표팀을 위해 마냥 희생하기보다 A매치 기간에만 선수를 내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대표팀에 소집 기간이 부족하다는 건 특정 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대표 감독이 공유하는 고충이었다. 변수라기보다 상수다. 슈틸리케 감독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로는 너무 빈약했다. 한국 전력이 상대팀보다 대체로 높기 때문에 일정 문제도 생긴다. 이 정도는 극복하는 것이 한국 대표팀 감독의 필수 역량이다.

이 위원장이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꺼렸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 위원장은 “감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기술위원장인 내가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은 답변을 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 경기 결과에 따라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며 슈틸리케 감독의 입지가 불안한 것처럼 말했다가 나중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정정하는 등 확실히 힘을 실어주지도 않으며 오락가락했다.

슈틸리케 유임을 결정하며 어떤 지원과 보완책을 마련할지도 밝히지 않았다. 슈틸리케호의 문제로 소집 기간만 거론됐기 때문에 6월 13일 열릴 카타르 원정 경기를 앞두고는 조기 소집을 하겠다는 점 정도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조기 소집은 이 위원장의 말대로 다양한 효과가 있다. 일단 조직력이 높아질 수 있고, 소속팀에서 출장 기회가 없는 선수도 대표팀 평가전으로 실전 경험을 되살린 뒤 카타르전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표팀 분위기와 전술이 계속 문제를 반복한다면 조기 소집을 비롯한 모든 방안이 쓸모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많은 매체에서 슈틸리케 감독 유임시 대안으로 제안한 코치진 충원 등 ‘맨파워 강화’도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았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감독님과 추후에 협의하겠다. 기술위원들도 여러 부분에서 건의가 있었다. 기술위원들과 또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 위원장은 이미 슈틸리케 감독에게 외국인 코치를 구해주겠다고 공표했다가 선임에 실패해 설기현 코치로 선회한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역량에 많은 의구심이 있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 확률이 탈락 확률보다 높다.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대안으로 거론된 인물들이 더 나은 지도력을 발휘한다는 보장도 없다. 합당한 현실 인식과 보완책만 있다면 유임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케케묵은 소집 기간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불안감만 증폭시켰다. 감독을 유지하고 팀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부진을 계속 반복하겠다는 순진한 낙관론으로 보일 수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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