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감독 싸움에서 졌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부임 후 처음으로 치른 한국 경기에서 중국을 다른 팀으로 만들어 놨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같은 방식을 답습했고, 후반전에 반전도 끌어내지 못했다. 예상된 불안요소를 극복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가는 길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중전에서도 중국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한국은 3-0으로 앞서가던 경기를 2-3 신승으로 마쳤다. 당시 가오홍보 감독은 5-3-2 포메이션으로 한국을 상대했는데, 경기 후 회견에서 상대를 너무 경계한 것이 패인이 됐다고 했다. 

지난 경기에서 중국은 수비 라인을 너무 뒤로 내려 역습으로 올라가는 과정이 지체되고 체력 소진도 많았다. 풀백과 센터백 사이 공간은 물론, 페널티 에어리어 앞쪽 공간을 허용해 수비 숫자를 많이 두고도 한국의 공격에 빈틈을 허용했다. 

#물러서지 않은 중국, 중앙 지역을 통제했다

리피 감독의 접근법은 달랐다. 가오홍보 감독이 스리백을 기반으로 팀을 운영했다면, 리피 감독은 포백 앞에 세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해 콤팩트한 축구를 했다. 포백은 라인을 높이고, 세 명의 미드필더가 그 앞을 지켜 중앙 지역을 통제했다. 일대일 대결에서 승산이 없는 측면 싸움을 포기하는 대신 중앙 지역을 틀어막고 역습 기점을 높였다.

중국은 장즈펑-펑샤오팅-메이팡-장린펑이 포백 라인을 구축하고, 왕용포-정즈-하오준민이 세 명의 미드필더로 섰다. 장시저와 우레이가 좌우 측면 공격수로 서고 위다바오가 원톱으로 나섰다. 

수비 상황에서 장즈펑과 장린펑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왔다. 이용과 김진수의 오버래핑은 좌우 측면 공격수 장시저와 우레이가 커버했다. 두 센터백이 이정협을 가두고, 지동원 구자철 남태희의 2선 공격은 네 명의 수비수와 세 명의 미드필더가 수적 우위를 점해 커버했다. 

한국은 전반 11분 김진수가 예리한 크로스 패스를 연결했고, 전반 14분과 전반 39분에는 우측면에서 지동원이 과감한 중거리슈팅으로 중국 골문을 위협했다. 장린펑과 우레이가 자리한 우측면은 상대적으로 수비 밀도가 떨어져 남태희와 김진수가 비교적 좋은 공격 장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중국은 위험 지역에서는 한국에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남태희가 전반 29분 시도한 감아 차기 슈팅은 예리했지만, 중국은 아주 정밀하게 골문 구석을 적중시키는 슈팅을 뿌리지 못할 경우 득점이 되기 어려운 위치에서만 기회를 내줬다. 리피 감독은 실리적으로 한국 공격에 대응했다.  

중국은 간결한 삼자 패스 혹은 월패스를 통해 역습에 임했다. 선수비 후역습 자세를 취했으나 문전 지역을 가득 메우는 형태로 수비 하지 않았고, 하오준민이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면서 장시저와 위다바오가 전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여 패턴 플레이를 펼쳤다. 장시저와 위다바오는 전방압박도 부지런히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 지역에서 공을 끊고 공격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일대일 피하고 숫자로 승부를 건 리피

중국 선수들은 개인 능력 면에서, 특히 일대일 상황과 오픈 플레이 상황의 기술면에서 한국 선수들에 비해 부족했다. 리피 감독이 골로 가는 길을 열어낸 방법은 약속된 세트피스 공격이었다. 전반 35분 왕용포의 코너킥 크로스를 위다바오가 니어포스트에서 잘라 먹는 헤더 슈팅으로 득점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조합 플레이였다.

중국의 계획대로 전반전이 끝났다. 한국의 후반전 계획은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톱 이정협을 197센티미터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으로 바꿨다. 예선 초반 일정에 슈틸리케 감독이 매번 시도해 결과를 본 플랜B다. 중국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우측면에서 공수 양면에 걸쳐 별다른 영향력을 보이지 못한 우레이를 빼고 우시를 투입했다. 압박 균형이 더 좋아졌다. 

김신욱을 투입했지만, 전북에서 함께 뛰는 김진수 이용 조합의 측면 오버래핑과 크로스 시도는 활발하지 못했다. 좌우 측면에 포진한 남태희와 지동원도 직선적인 돌파나 크로스 패스에 능한 타입은 아니었다. 한국 공격인 김신욱의 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기성용이 시도한 중거리 슈팅정도가 위협적인 기회였다. 

중국은 전반전에 라인을 내리지 않았고, 수비 라인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을 관리하며 1-0 리드로 경기를 마쳤다. 그 덕분에 체력 소모가 크지 않은 상태로 후반전을 맞았고, 후반 시작과 함께 들어간 우시가 부지런히 뛰어주며 중원 선수들의 수비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줬다. 공격 전개 상황에서도 제 몫을 했다. 후반전에는 이용 뿐 아니라 김진수도 위력을 보일 수 없었다.

후반전에는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이 온다. 리피는 지체 없이 후반 15분에 중원에서 많은 양을 뛴 왕용포를 빼고 인훙보를 투입해 체력을 보강했다. 인훙보는 왕용포에 비해 기술적으로 부족했으나 압박 그물이 헐거워지지는 않았다.

#김신욱 활용 못한 후반전, 실패로 돌아간 슈틸리케의 선택

반면 기성용-고명진으로 구성한 한국의 중원 조합은 실패로 돌아갔다. 공을 지배하지도, 창조적인 패스를 연결하지도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후반 21분 선택한 교체는 고명진을 빼고 저돌적인 공격수 황희찬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중국 수비가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황희찬에게도 좋은 기회가 전달되지 못했다. 역할이 애매해진 구자철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김신욱은 문전 지역으로 좋은 크로스가 배달되지 않자 측면과 2선으로 빠져 나오며 수비를 끌어내려 했다. 이 과정에서 좋은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후반 30분 남태희의 크로스 패스를 지동원이 문전으로 진입해 헤더로 연결했으나 중국 골키퍼 정청이 선방했다. 후반 14분과 후반 19분 기성용이 시도한 두 번의 중거리슈팅과 더불어 한국이 이날 경기에서 만든 가장 좋은 장면이었다. 

후반 중반 이후 한국 공격이 개선된 과정에는 중국 원톱 위다바오의 체력 저하로 인해 전방 압박과 역습 상황의 위협이 떨어진 문제가 있었다. 리피 감독은 정확한 처방을 내렸다. 후반 31분 위다바오를 빼고 장위닝을 투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 39분 마지막 교체 카드로 자신이 깜짝 발탁한 허용준을 투입했다. A매치 데뷔전이었다. 측면에서 과감한 플레이를 기대했지만 시간도 경험도 부족했다.

90분 내내 중국이 원하는 대로 경기가 전개됐다. 리피 감독은 한국의 장점과 약점을 철저히 알고 대비했다. 반면 한국은 명확한 계획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기를 했다. 선수들 개개인이 시도한 부분 전술 협업 외에 이정협 혹은 김신욱이 가진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패턴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 공격수들 개개인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팀 중국은 정신적으로나 조직적으로 90분 동안 견고함을 잃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의 자신감은 높아졌다. 한국은 상황을 반전시킬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0-1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날 경기는 역대 33번째 한중전이었다. 18승 2무 2패. 2010년 도쿄에서 당한 0-3 패배 이후 두 번째 패배다. 당시 패배가 유럽파 주력 선수들이 빠진 동아시안컵 경기였다면, 이번에는 월드컵 최종예선 진검승부 패배다.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빠졌지만, 변명할 수 없는 패배다. 한국은 홈에서 3-2로 이겼고, 적지에서 영패를 당했다. 중국과 대결이 두 팀 간의 홈 앤드 어웨이 승부였다면, 원정 다득점 원칙이 적용될 경우 한국이 탈락할 수 있는 결과다. 슈틸리케호는 가오홍보의 중국에 혼쭐이 났고, 리피의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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