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카스트로프(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옌스 카스트로프(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다른 대표팀으로 갈 수 있었던 선수를 설득해서 데려왔다면 그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세계 최강 브라질조차 그렇게 한다.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브라질에 0-5로 대패했다. 한국이 브라질 상대로 대패하는 건 익히 봐 온 일이지만, 지난 2022년 두 경기에서 각각 3점차와 4점차였던 것에 비해 점수차가 늘었다. 경기력 격차도 더욱 커졌다.

한국과 브라질은 선수 기용 측면에서 한 가지 차이를 보였다. 두 축구협회 사이에 놓여 있던 선수를 적극 설득해 비슷한 시기에 데려왔는데, 브라질은 왜 데려왔는지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 반면 한국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질의 도글라스 산투스, 한국의 옌스 카스트로프가 그렇다. 카스트로프는 8월 초에 독일에서 한국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시스템을 통해 스포츠 국적변경 절차를 밟았다. 산투스는 8월 말 러시아에서 브라질로 변경했다.

산투스는 브라질이 취약 포지션인 풀백 포지션 강화를 위해 그동안 외면했던 선발 후보군을 이 잡듯 뒤져 찾아낸 선수다. 산투스는 원래 브라질 올림픽대표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하지만 유럽 빅 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2019년 러시아의 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한 뒤 대표팀과 연이 끊겨 있었다. 최근 러시아 여권을 받으면서 러시아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이미 대표팀에 꾸준히 뽑히던 루이스 엔히키가 제니트로 이적하면서 자연스럽게 산투스도 브라질 대표팀의 시야에 들어왔다. 올해 3월 브라질은 산투스를 설득해 러시아 대표로 출전하는 걸 막았다. 6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하면서 산투스를 월드컵에서 활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산투스는 어차피 러시아로 간다 해도 월드컵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브라질로 돌아가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결국 이례적으로 두 번에 걸친 스포츠 국적 변경을 거쳐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 브라질이 러시아 리그에서 뛰는 31세 선수를 설득해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면 그 이유를 경기장 위에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안첼로티 감독은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대표팀 합류 직후인 9월 칠레전에서 풀타임 출장시켰다. 그리고 이번 한국전에서도 부상자를 제외하면 주전을 총출동시킬 때 산투스를 선발 투입하면서 이 선수가 월드컵 주전이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산투스가 뛴 두 경기에서 브라질은 무실점을 유지했다.

이는 한국의 카스트로프 활용과 차이를 보인다. 스포츠 국적을 바꾼다는 건 선수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대표팀으로 갈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기 때문에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카스트로프의 경우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성장한다면 독일 대표팀에 선발될 가능성이 꽤 있는 유망주였다. 한국 코칭스태프가 그런 선수를 데려왔다면 어느 포지션에서 어떻게 기용할지 복안이 마련된 상태여야 했다. 데려온 선수라고 해서 무조건 주전 보장을 할 순 없지만, 대표팀 전술 속에서 그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 경기를 보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카스트로프 기용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일단 출장시간이 최대 45분이다. 3경기 모두 출장하긴 했지만 자기 기량을 보여줄 시간이 충분히 부여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은 카스트로프를 수비적인 미드필더로 간주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유일한 선발 투입 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더 수비적인 박용우와 나란히 기용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번 브라질전에서는 박용우가 부상으로 이탈해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발 투입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황인범과 동시 기용하는 게 아니라 전후반 나눠서 뛰게 했다.

옌스 카스트로프(왼쪽, 남자 축구대표팀), 호드리구(브라질). 서형권 기자
옌스 카스트로프(왼쪽, 남자 축구대표팀), 호드리구(브라질). 서형권 기자
도글라스 산투스(브라질). 브라질축구협회 홈페이지 캡처
도글라스 산투스(브라질). 브라질축구협회 홈페이지 캡처

 

특히 황인범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하다. 황인범은 한국의 선발 라인업에 꼭 들어가는 선수다. 결국 카스트로프는 한국의 베스트 라인업과 호흡을 맞춘 적이 아직도 없다는 뜻이다. 3경기 모두 투입하긴 했지만 마치 2진처럼 쓰이고 있다.

지금 카스트로프의 포지션과 상황이 애매해졌기 때문에, 더욱더 대표팀 감독의 뚝심과 활용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카스트로프는 원래 수비적인 미드필더로 간주됐지만 최근 소속팀 보루시아묀헨글라드바흐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이미 카스트로프가 뛸 수 있는 자리에 이재성, 이강인, 황인범 등 주전 선수가 다 자리 잡았는데 카스트로프가 그 중 누굴 밀어내고 꼭 선발로 뛰어야 하냐는 반론이다. 하지만 브라질의 사례를 다시 생각해 보면, 세계 최강 대표팀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선수를 설득해서 데려올 때도 바로 다음 경기에서 왜 필요했는지 이유를 보여줬다. 한국은 3경기째 카스트로프를 어떻게 쓰고 싶어서 합류시킨 건지 구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브라질축구협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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