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유현태 기자= 수원 삼성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도전은 우려 속에 시작됐지만 희망을 남기며 마무리됐다.

수원은 최근 계속되는 투자 위축 속에 덩치가 줄었다. 이번 시즌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임생 감독과 주승진 감독 대행 체제에서 수원은 1라운드를 9위로 시작해 한 번도 그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박건하 감독이 부임했을 때는 최하위 인천 유나이티드에 승점 3점 차로 추격당하며 강등 걱정을 해야 할 때였다.

박 감독은 빠르게 수원을 안정화했다. 시즌 말에 부임해 특별한 보강이 가능했던 것도 아니었다. 상주 상무에서 전역한 한석종을 영입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8경기에서 4승 2무 2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일단 강등을 피하며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수원의 카타르행엔 우려가 따랐다. 외국인 선수들은 모두 제외됐고 베테랑 염기훈도 동행하지 않았다. 박 감독은 고교생 선수인 손호준, 정상빈까지 데려갔다. 이미 2패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고 광저우 에버그란데, 빗셀 고베라는 만만찮은 상대가 있었기에, 16강 진출이 좌절되면 일찌감치 유망주들에게 경험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박 감독은 카타르로 떠나기도 전에 "정상빈, 강현묵, 손호준, 안찬기 등을 선수 명단에 올렸다. 첫 경기 결과에 따라 젊은 선수들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우였다. 수원은 안정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면서 조별 리그에서 선전했다. 선수 구성이 좋아졌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끈끈한 힘이 생겼다. 장단점을 고려해 선수 구성을 하고 꾸준히 밀고 나간 덕분이다. 

장호익과 양상민은 스리백의 좌우 센터백으로 배치됐다. 원래 풀백으로도 뛰던 선수들인 만큼 활동량이 많고, 양쪽 윙백의 전진에 대비해 커버플레이를 능숙하게 했다.

중원 구성도 달라졌다. 이기제가 왼쪽 수비수로 돌아온 덕분에 김민우는 중앙에 배치됐다. 김민우는 박상혁과 함께 많은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했다. 공격할 때 숫자를 늘려주는 것, 수비할 땐 빠르게 복귀해 1차 저지선을 하는 것이 두 미드필더의 목표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한석종은 수원의 빌드업에서 핵심이 됐다. 원터치패스나 방향 전환 패스는 물론이고, 전방 압박에 대처해 템포를 바꾸거나 적절히 돌아서면서 공격을 풀어나갔다.

공격진엔 전형적인 포워드 대신 임상협과 고승범이 꾸준히 배치됐다. 활동량이 많고 수비 뒤로 파고들 수 있는 저돌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힘이 떨어진 시점부턴 김건희가 교체로 출전하고 고승범이 중원으로 내려가는 교체 방식도 여러 차례 가동됐다. 김건희는 전방에서 공을 지키며 수원이 공격으로 전환할 시간을 벌었다. 또한 측면과 후방으로 자주 움직이면서 공간을 만드는 몫도 충실히 해냈다.

수원은 자연스레 까다로운 팀이 됐다. 수비는 단단했고 역습으로 나서는 과정도 점차 유기성이 생겼다. 요소요소에서 공을 받아주는 선수들이 생긴 덕분이었다. 경기 통계로도 쉽게 수원의 달라진 경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카타르에서 치른 첫 경기인 광저우전(0-0 무)에서 수원은 54%의 높은 점유율로 슈팅 수에서 16-5로 압도했다. 광저우와 리턴매치(1-1 무)에서도 수원은 48%의 대등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슈팅에선 17-9로 앞섰다. 파울리뉴가 빠졌다지만 탈리스카, 엘케송, 굴라트 등이 출전하고 중국 대표팀 선수들이 여럿인 광저우를 상대로 저력을 보인 것이다.

탈락 위기에서 강한 정신력을 발휘한 것도 대단했다. 고베와 조별 리그 최종전에선 2골 차 이상 승리가 필요했다. 수원은 37% 점유율만 기록했지만 상대보다 2배 넘게 많은 16개 슈팅(고베 7개)을 시도하며 2-0 승리를 낚았다. 요코하마전에서도 이른 실점과 연이은 실점 위기로 구석에 몰렸지만, 후반 들어 활동량부터 요코하마를 압도하며 3-2로 역전승했다. 선수 구성은 그대로이지만 팀 구성이 끈끈해지고, 자신감을 채운 수원은 올 시즌 초반과 분명 다른 팀이었다.

수원의 도전은 아쉽게도 8강에서 멈췄다. 수원은 10일 카타르 알 와크라에 위치한 알 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8강전에서 빗셀 고베와 120분 혈투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6-7로 졌다.

탈락했지만 저력을 보여줬다. 전반 7분 만에 박상혁이 득점하며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전반 35분 김태환이 니시 다이고를 따라잡으려다가 발이 엉켰다. 페널티킥이 선언됐다가 VAR 이후 프리킥으로 정정됐지만 김태환은 퇴장을 받았다. 그리고 후루하시 교고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수원은 다시 한번 탈락 위기에 놓였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10명으로 80분 이상을 치러야 했지만 경기 내용에선 대등했다. 점유율에선 어쩔 수 없이 34%로 크게 밀렸지만 슈팅 수에선 16-15로 대등했다. 유효 슈팅도 7개씩으로 같았다. 정규 시간 종료 직전 김건희의 슈팅, 연장 후반 막판에 김건희의 단독 돌파에 이어진 김민우, 고승범의 연속 슈팅까지 매서운 칼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박 감독은 경기 뒤 "선수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정신적으로 잘 극복해줬다. 수적으로 불리하지 않았다면 후반에는 더 공격적인 경기를 보여줬을 것이다. 수비적으로 내려서야 했던 게 아쉽다"고 말했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수원의 탈락에도 비난이 아니라 박수가 쏟아지는 이유가 아닐까. 큰 보강 없이도 박 감독은 확실히 달라진 경기력을 보여줬다. 적절한 선수 보강만 있다면 이제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고승범이 기자회견에서 남긴 마지막 말 자체가 수원의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 "올시즌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희망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년이 더 기대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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