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인천] 유지선 기자= 인천유나이티드와 대구FC가 빗속에서 90분 동안 혈투를 펼쳤다. “팬들의 응원 덕분에 후반전에 없던 힘도 나는 게 우리인데”라고 곱씹던 인천 임완섭 감독의 말처럼, K리그에서 열정적인 팬들로 대표되는 두 팀의 맞대결인 만큼 관중석의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졌다.

9일 오후 4시 30분 인천 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1라운드 개막전에서 대구와 인천이 0-0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 세징야 가는 길에 마하지가 있다?

5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펼쳐진 K리그 6경기(K리그1, K리그2 포함) 중 유일하게 단 한 골도 나오지 않은 경기다. 하지만 경기 내용까지 심심했던 것은 아니다. 인천의 빈틈을 찾으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대구와 그런 대구의 파상공세를 악착같이 버텨내는 인천의 모습은 이날 최고의 볼거리였다. 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두 팀의 경기가 9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 이유다,

인천은 대구를 상대로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김정호, 문지환, 김연수로 이어지는 3백이 꽤 견고했고, 윙백 김성주, 김준엽까지 깊숙이 내려앉아 사실상 5백에 가까운 형태를 보였다. 인천의 짠물 수비에 정점을 찍은 건 마하지였다. 3백 앞에 선 마하지에게 세징야를 밀착 마크하라는 특명이 내려졌고, 마하지는 90분 내내 세징야를 꽁꽁 묶었다.

임완섭 감독은 “마하지가 훈련을 하면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서 세징야 마크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하지의 활약이 큰 도움이 됐다”며 마하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100% 소화해냈다고 평가했다. 대구의 이병근 감독대행도 경기 종료 후 “마하지가 세징야를 맨투맨 마크했는데, 볼 간수 능력, 패스 등 세징야의 능력이 평소처럼 발휘되지 못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마하지는 공의 위치와 상관없이 틈틈이 세징야의 위치를 확인했고, 세징야가 측면으로 달아나면 덩달아 측면으로 빠지는 등 세징야 마크에 충실했다. 세징야로선 짜증이 날 법한 상황이었다. 세징야가 가는 곳엔 어김없이 마하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팀의 경기가 0-0 무승부로 끝이 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 두 팀에 나란히 과제 남긴 개막전...대구 ‘세징야 막힐 땐?’ 인천 ‘수비만 할래?’

두 팀 모두 개막전 무승 징크스를 깨진 못했다. 하지만 소득이 있는 경기였다. 대구와 인천 모두 대장정의 시작을 앞두고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구는 세징야, 데얀, 에드가, 김대원 등 공격 쪽에 다양한 득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세징야 의존도가 적지 않다. 문전에서 직접 마무리하는 것은 물론이며, 이타적인 플레이로 공격의 윤활유 역할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을 상대로 세징야가 만능카드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인천의 짠물수비에 곤욕을 치른 대구는 ‘세징야가 막혔을 때 대처하는 법’이란 중요한 숙제를 안았다. 이병근 감독대행도 “대구다운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대구답지 않은 경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히도 대구는 데얀이 어느 정도의 방향을 제시해줬다.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데얀은 후반 18분이 돼서야 그라운드에 나섰다.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 데얀은 인천의 밀집수비 속에서도 공간을 시기적절하게 찾아들어갔고, 그 덕분에 세징야, 에드가 등 주변 동료들도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이병근 감독대행은 “데얀이 들어가면서 경기 조율, 운영, 박스 안 움직임 등이 좋아졌다. 골은 없었어도 가능성은 봤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데얀의 투입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천도 공격 쪽에 큰 숙제를 안게 됐다. 인천은 올 시즌 야심차게 꺼내든 3백이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과거 명성을 떨쳤던 ‘짠물 수비’가 부활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줄만했다. 하지만 90분 내내 수비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유효슈팅 3회를 기록한 인천은 대구가 힘이 빠진 후반전 막바지가 돼서야 몇 차례 위협적인 장면이 나왔을 뿐,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임완섭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수비는 만족스럽다. 하지만 공격 전술은 부족했다.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난 시즌 몸이 무거워보였던 케힌데의 몸놀림이 이전보다 유연해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수비 후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은 인천이 풀어가야 할 과제다.

# 팬들로 가득한 축구장이 그립다

평소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은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인해 더 썰렁한 분위기였다. 물론 2주 전, 개막 예행연습이라 할 수 있는 수원FC와의 시범경기 때보다는 한결 나았다. 고요한 적막 속에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고함 소리만 오갔던 당시와 달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팬들의 응원 소리가 경기장을 채워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응원소리는 경기장 내 적막을 깨울 뿐, 선수들에겐 그리 큰 힘이 되지 못한 듯 하다. 임완섭 감독은 “벤치에서는 녹음된 응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병근 감독대행은 “선수들이 60분 이후 좀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팬들이 없어 아쉬웠다. 팬들의 유무에 따른 차이를 오늘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 시간대에는 팬들의 응원이 선수들을 한 발 더 뛰게 하는데”라며 직접적으로 아쉬움을 내비쳤다.

“팬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라는 말은 선수 인터뷰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다. 그라운드 위 선수들도, 벤치의 감독들도 축구장에는 역시 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K리그 개막, 축구를 향한 팬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됐을지 몰라도, 팬들을 향한 선수들의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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