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국인 유럽파 선수들의 역사적인 경기와 시즌을 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에서 ‘유럽 축구’가 해외 야구, 해외 농구를 뛰어넘는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자리잡을 수 있었다. 유럽파의 한 시즌을 골라 가장 중요한 경기를 리뷰하고, 그 시즌의 파급효과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박지성의 첫 시즌 활약상은 오히려 이후 시즌들에 묻히는 느낌이 있다. 박지성이 맨유에 안착한 2005/2006시즌 당시만 해도, 박지성의 입지는 꽤 탄탄했다.

라이언 긱스는 확실한 스타지만 노장이라 매 경기 풀타임 출장은 힘들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아직 풋내기였다. 그래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호날두 선발 24경기, 박지성 선발 23경기, 긱스 선발 22경기를 기록했다. 교체 출장 횟수를 더하면 박지성 34경기, 호날두 33경기, 긱스 27경기로 박지성이 가장 많다. 박지성은 엄연한 주전급 로테이션 멤버였지 누군가의 후보가 아니었다.

당시 맨유는 전술을 확립하지 못하고 다소 표류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4-4-2를 쓰기에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너무 약했다. 중앙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의 파트너도 확실치 않았다. 가장 확실한 포지션은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웨인 루니의 투톱 정도였다. 그러나 판니스텔로이도 전성기에서 하락하는 중이었고, 이 시즌 21골로 마지막 활약을 한 뒤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시즌 개막 전 에드빈 판데르사르와 박지성을 영입했고, 시즌 도중 네마냐 비디치와 파트리스 에브라를 영입하며 두 시즌 뒤 찾아올 새로운 전성기를 준비하던 과도기였다.

박지성은 4-4-2 포메이션을 쓸 경우 90분 내내 공수를 오가며 활약할 수 있는 유일한 윙어였다. 크게 빛나는 경기가 아니더라도 전술적인 가치는 준수했다. 이때까지는 운동능력도 살아있었기 때문에 박지성의 움직임이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대목도 많았다. 2라운드 애스턴빌라전에서 박지성의 과감한 돌파에 이은 슛이 골키퍼 손과 크로스바를 연달아 맞고 아깝게 무산된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후 두 시즌 동안 연달아 부상을 겪으며 폭발력이 감소했지만, 2005/2006시즌에는 충분히 적극적이고 과감한 선수였다.

박지성은 초반부터 꾸준히 선발로 기용됐고, 10월 풀럼을 상대로 세 골을 모두 이끌어내는 맹활약을 하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릴을 상대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는 교체돼 나가는 긱스의 완장을 건네받으며 잠시나마 맨유의 첫 아시아인 주장으로서 뛰었다.

맨유를 일시적으로 1위에 올려놓았던 12월 빌라전 승리 당시에도 박지성은 훌륭한 경기력으로 판니스텔로이, 루니의 득점을 뒷받침했다. 또한 2006년 2월 열린 후반기 풀럼전에서도 박지성의 슛이 카를로스 보카네그라에게 맞고 자책골로 처리되며 사실상 선제골을 기록, 풀럼 상대로 유독 강한 면모를 이어나갔다.

박지성은 4월 아스널전에서 EPL 데뷔골을 넣으며 ‘아스널 킬러’의 행보를 시작했다. 이어 토트넘홋스퍼의 이영표와 맞대결할 때 이영표의 실수를 틈타 공을 빼앗아 루니의 득점을 이끌어냈고, 이날 유명한 ‘몰래 손을 잡은 박지성과 이영표’의 명장면이 나왔다. 박지성은 EPL과 리그컵에서 각각 1골씩 넣으며 총 2득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14년 전 EPL은 지금과 전술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공식 오프닝 영상에 무려 앨런 시어러가 나오던 시절이다. 아직 철저한 전술보다 ‘막싸움’ 식으로 전개되는 경기가 잦은 리그였다. 박지성은 비록 힘이 약했으나 리그 전체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한 지능과 성실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퍼거슨 감독에게 힘을 보탰다. 당시 EPL은 그 지능적인 움직임을 알아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박지성은 동료들만 아는 ‘언성 히어로’였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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