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권태정 수습기자= '한국 축구의 상징' 박지성(33)이 23년 간의 선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박지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영웅이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클럽과 대표팀을 오가며 꾸준한 활약을 펼쳐 우리나라의 위상을 알리고 한국축구를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됐다.

박지성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박지성은 6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차범근 어린이 축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오기 전까지 그리 조명받지 못한 커리어의 보유자였다. K리그 입성이 좌절된 적도 있고, 일본에서는 2부 리그에서 뛴 경험도 있다. 본격적으로 대중의 눈에 들기 시작한 것은 명지대학교 재학 중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처음 태극 마크를 달았을 때다. 이후 만 스무 살이 되기 전 일본 J리그의 교토퍼플상가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 선수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박지성이 본격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것은 2002년 FIFA 한일월드컵이다. 당시 21살로 대표팀의 막내 급이던 박지성은 주전 윙포워드로 맹활약하며 4강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대회 개막 직전까지만해도 최종 엔트리 합류가 불투명해 보이던 박지성은, 대회가 임박한 상황에서 치러진 잉글랜드-프랑스 평가전에서 연속 골을 터뜨리며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전까지 풀백이나 미드필더로 인식되던 박지성을 공격수로 전진 배치한 히딩크 감독의 결단은 박지성에게 큰 복이 됐다. 박지성은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골을 넣어 전국을 열광시켰다.

2002 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황태자로 거듭난 박지성은 이영표와 함께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서 뛰게 된다. 이적 후 초반에는 슬럼프를 겪으며 제 기량을 보이지 못했으나 차차 팀내 주축 선수로 발돋움 해 ‘2004/2005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우승에 공헌했다. 또한 ‘2004/200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AC밀란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한국선수로서는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은 세계적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이적으로 이어진다. 2005년 8월 13일 에버턴FC와의 원정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치른 박지성은 7시즌 동안 205경기에 출전해 27득점을 올리며 맨유의 주축선수로 자리했다.

박지성은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10년에는 주장을 맡으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뤘고, 월드컵 3회 연속 골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2011년 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11년간 활약했던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박지성은 2012년 퀸즈파크레인저스로 이적해 주장을 맡았고, 2013/2014시즌에는 PSV에인트호번으로 임대되어 8년 만에 네덜란드로 복귀했다. PSV는 박지성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다음시즌 유로파리그 진출을 이뤘다.

유럽 무대에서 한국축구의 위상을 알린 박지성은 그 시작점이던 네덜란드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 됐다. 이렇게 선수 생활을 마감한 박지성은 이제 인생의 다음 장을 써내려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전망이다.

<박지성 프로필>
1981년 3월 30일 전남 고흥 출생

◆학력
수원 산남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 시작
수원 세류초등학교 전학
화성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
명지대학교

◆프로 경력
2000~2002 교토퍼플상가
2002~2005 PSV에인트호번
2005~2012 맨체스터유나이티드
2012~ 퀸즈파크레인저스
2013~2014 PSV에인트호번 임대

◆국가대표 경력
2000년 4월 5일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에서 A매치 데뷔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4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2011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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