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월드컵 본선 진출국을 48개국으로 확대하는 게 꼭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 FIFA본부에서 평의회를 열어 지안니 인판티노 회장이 제안한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안(32-> 48개국, 2026 월드컵부터)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안은 오는 5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릴 FIFA 연례총회에서 전 회원국 투표에 부쳐진다. 바로 비판이 뒤따랐다. 중국 등 신흥세력이 내놓을 경제적인 이득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같은 ‘제3지역’의 지지를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인 축구 열기 확산과 보급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이 결정을 반겼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일반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이고, 유럽에서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를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FIFA가 중국 등 신흥세력이 지출할 투자금 때문에 결정을 내렸다는 게 첫 째다. 다음으로는 월드컵 본선에 48개국이 나서게 되면 경기 질, 더 나아가 상징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FIFA는 필요 이상으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제프 블래터 전 FIFA회장은 스캔들에 연루돼 축구 자체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수익을 제대로 분배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FIFA가 제대로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불투명함 때문에 월드컵 본선 진출국 확대를 검토해보지도 않을 이유는 없다. 이 문제를 원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 아시안컵, 유럽선수권은 참가국 늘려왔다

월드컵 뿐 아니라 대형 축구대회가 계속해서 참가국을 늘리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초대 대회인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한 나라는 13개다. 이후 네 차례 참가국을 늘렸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16개국으로 확대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24개국으로 늘렸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32개국으로 몸집을 키웠다. 이번 변화는 28년 만에 일어났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과 유럽선수권(유로)도 마찬가지다. 1956년 4개국이 본선을 치렀던 AFC 아시안컵은 2019년 대회부터는 본선에 24개국이 진출할 예정이다. 유로도 초대대회인 ‘유로 1960’에는 4개국만 본선을 치렀다. 계속해서 참가국을 늘려 '유로 2016'에는 24개국이 본선에 올랐다. 

 

우려도 있었지만, 몸집을 불린 AFC아시안컵과 유로는 모두 성공했다. ‘2015 호주 아시안컵’을 치른 호주가 2300만 달러(약 273억 원) 정도 수익을 올렸을 정도로 흥행했다. 평균관중은 22053명이었다. AFC는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리는 2019년 대회에서는 본선진출국을 24개국으로 늘릴 예정이다. ‘유로 2016’은 재미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흥행과 수익을 모두 잡았다.

#월드컵 상징성, 상업성-인기와 분리할 수 있나?

월드컵 참가국 확대 시도로 인한 잡음은 전에도 있었다. 확실한 게 있다면 흥행과 수익은 유럽이 받드는 축구의 본질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대형 축구대회는 초기에 별다른 인기와 상징성을 얻지 못했다. 월드컵 초기에는 유럽 팀들이 남미에 가지 않겠다며 대회 보이콧을 한 일도 있었다. 뱃삯도 치르지 못했던 FIFA는 이제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제공한다.

 

역설적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상업적 성공은 월드컵이 지닌 상징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중계권과 스폰서 계약은 FIFA와 월드컵 성장을 이끈 견인차다. TV에서 월드컵 중계를 볼 수 없는 아이들이 월드컵을 즐기거나 꿈꿀 수 있을까? FIFA가 국제연합(UN)보다 더 많은 회원국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축구가 전세계에 중계되기 때문이다.

 

중계는 중요한 도구지만, 그 자체로는 지속적인 효과를 내기 어렵다. 처음에는 월드컵 본선으로 가려는 꿈을 가졌던 나라도 계속해서 실패하면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AFC와 UEFA가 아시안컵과 유로 본선진출국을 늘리는 이유 중 하나다.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자신과 관련된 팀 혹은 나라가 진출하지 못하면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AFC 한 관계자는 아시안컵 본선 진출국을 24개국으로 늘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인기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축구 열기가 상당히 높지만 아시안컵 본선에 나가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미 시게임에 더 큰 관심과 자원을 쏟고 있다. 전체적인 인기가 없는 월드컵은 그들만의 축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축구공은 정말 둥근가?

월드컵이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가 되려면 본선에 더 많은 나라가 진출하는 게 좋다. 경기의 질 보다 중요한 게 즐거움의 크기 일 수도 있다. 각 나라 협회에서 주관하는 FA컵이 재미있는 이유는 약체가 강호를 꺾는 데 있지 않다. 약체와 강호가 붙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현실세계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FA컵은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다. 참여자들이 꿈꿀 수 있는 구조다.

 

월드컵은 그렇지 않다. 본선에 32개국이 진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월드컵 본선을 꿈도 못 꾸는 나라가 많다. 물론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중국 팬들이 “청화대 정원을 늘려도 내가 들어가란 법은 없다”라고 자조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 꿈을 이룰 가능성은 조금 더 커진다. 그게 월드컵과 축구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공이 둥글어도 공을 찰 기회가 없으면 소용없다. 브라질과 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맞대결한다면 ‘재미 없다’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래서 월드컵이 재미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경기의 질과 의미를 주장하는 이들보다 월드컵 본선 첫 진출과 경기 자체에 의미를 두는 이들이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 축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도구는 월드컵이다.

 

고민과 논란은 계속된다. 48개국이 답인지, 32개국이 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대회 자체를 해치지 않고 참여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수준을 정하기는 어렵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본선 참가국을 늘릴 때마다 FIFA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다만 FIFA가 이번 결정을 내리며 내놓은 설명 중 하나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더 많은 나라가 월드컵을 꿈꿀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 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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