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이상기의 블로그 세계와 4.5차원 정신 세계

서울이랜드FC 이상기가 블로깅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청평] 김정용 기자= #분명_골키퍼를_뽑았는데_블로거가_뽑혔네

서울이랜드FC가 골키퍼 이상기(29)의 블로그(http://blog.naver.com/sanggi6505)를 소개하며 페이스북에 남긴 한 마디다. 이상기는 최근 경기장에서의 모습보다 블로그 활동으로 더 많이 알려지며 축구팬들 사이에서 조금씩 화제를 모으고 있다. 훈련장 분위기부터 자신의 일상까지, 전형적인 휴먼블로그체(?)와 블로그식 글 구성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팬들에게 전달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소개될 때마다 관심이 빠르게 늘어났다.

파워블로거를 꿈꾸는 이상기를 만났다. 이상기는 축구 선수가 자신처럼 취미를 가질 때 삶이 더 윤택해질 거라며 동료들에게도 동참할 것을 권했다. 비록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친구가 많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만화 <원펀맨>의 사이타마가 취미로 히어로 활동을 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해진 것처럼, 때로 취미는 본업보다 위대할 수도 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블로거 이상기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부업은 축구선수라고 들었어요

아하하하.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블로그를 통해 이미 공유했어요. 제가 파워블로거 유망주인지 축구선수인지. 욕심쟁이처럼 둘 다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11일) 아침에도 글을 하나 올리셨던데요

어제 써 놓고 8시 정각에 나가도록 예약을 걸어 놨죠. 월요병이라고 있잖아요. 주말에 축구 재밋게 보고 출근하기 싫은 사람들 위해 월요일 아침에 자주 올립니다. 경기 다음날이라 피곤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피로를 풀기 위한 취미가 블로그니까요. 경기 끝나고 여유 있을 때 짬짬이 써 뒀다가 월요일에 내보내죠.

-글을 올리는 패턴까지 갖고 계시네요?

월요일엔 꼬박꼬박 올리려고 해요. 그 외엔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올리죠. 제 블로그 콘셉트에 맞게 4.5차원 느낌을 유지하며 파바박 써요. 한 30분이면 되거든요. 느낌이 안 오면 올렸다가 지울 때도 있어요. ‘아, 이렇게 평범한 건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때론 팬들이 메시지를 보내 주세요. ‘빨리 올려 주세요. 애탄단 말이에요’라고. 팬들을 위해 강제로 쓴 적도 있지만 역시 그러면 4.5차원 안 나와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블로그에서 4.5차원이라는 '기믹'을 잡으셨더라고요

출정식 때, 축구 파워블로거인 한 팬 분께서 ‘블로그 하는 이상기가 당신 맞냐’고 질문하셨거든요. 그러면서 4.5차원이라고 불러 주셨어요. 제 블로그를 정의하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서 만족해요.

요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같은 거,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갖고 있다면서요. 근데 축구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만 했으니까 그런 자격증이 아무도 없어요. 블로그를 하며 세상과 소통하다보니 나도 자격증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쯤 있으면 은퇴하고 나서 뭘 하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아… (다른 차원으로 튀는 대화 패턴에 당황하고 있다), 블로그를 꾸미기 위한 컴퓨터 활용 능력이 아니고요?

그건 필요 없어요. 제 블로그 느낌은 ‘아마추어틱’한 선수 느낌인데 그걸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고요. 더 아마추어 느낌으로. 너무 잘하면 ‘약 빤’ 느낌이 안 날 것 같아서.

-그럼 블로그 작성 실력이 너무 좋아지면 오히려 위기가 오겠네요?

그래서 가끔 변화를 주려고 해요. 어느 정도 패턴이 만들어지면요. 그동안 반말로 올렸는데, 오늘 아침에 올린 글에서는 존댓말을 조금씩 하겠다고 했어요. 블로그 포스팅이 많아지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늘어났기 때문에 이제는 오해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금씩 분위기를 바꿀 거예요. 그래야 지루하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약 기운’을 쭉 빼고 쓸 일도 있을 것 같고.

이상기 블로그의 한 게시물. 캡처= 이상기 블로그(http://blog.naver.com/sanggi6505)

-블로그를 통해 일관되게 다루는 주제가 있다면?

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죠. 팬들이 궁금해하시는 걸 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니고 제가 직접 미디어가 돼서 더 빠르게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비슷한 생각을 한 선수들은 많은데, 대부분 SNS를 활용하잖아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쓰면 무조건 오해의 소지가 생기거든요. 그러지 않으려면 제 마음을 길게 잘 설명해야 돼요. 그래서 ‘SNS는 똥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제게도 블로그 같은 거 하지 말라는 조언이 많았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글을 올리면서 오해를 산 적은 없어요. 인간미 넘치게 길게 쓰면 욕을 안 먹어요. 그래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팬들께 혼날 수도 있으니까요.

전 팬들이 선수를 공격할 땐 이유가 있으며, 선수도 굳이 공격을 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K리그 발전을 위한 길이고 장차 경기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블로그는 언제부터 왜 시작하신 건가요?

이번 프리시즌부터 했죠. 동계훈련을 마치고 쉬는 날이었는데, 집에서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우연히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봤는데 그냥 저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일기처럼 써 보면 어떨까? 와 주는 몇몇 분들과 소통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포털 사이트에서 걸어 주시더니 빵 터져서 깜짝 놀랐어요.

-블로그를 너무 많이 하시면 현실 세계에 친구가 없다는 오해를 받으실 수도 있는데?

친구 많은데요! 블로그를 하는 건 K리그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요즘엔 블로그 때문에 약속을 미룬 적도 많아요. 포스팅은 해야 하니까. 아하하하핫. 거꾸로 블로그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해요. 포스팅하려면 아이템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축구선수의 쉬는 날을 보여드린, 제가 한강에서 조깅하는 내용, 그거 대박난 건데(자부심 표출), 그 뒤로 포스팅 거리를 만들려고 밖에 나가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서울이랜드 팬들께 자부심을 드리기 위해 시작했어요. 다른 팀보다 더 선수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요즘엔 욕심이 생겨요. 자꾸 방문자가 늘어나면서 이젠 축구를 안 보시는 분들도 꽤 되거든요. 그 분들께 K리그에 대해 알리고 싶어요. 경기장으로 끌어들이고 싶고.

-블로그 초창기엔 글을 올릴 때뿐 아니라, 하루 종일 댓글이 얼마나 달렸나 기웃거리게 되기 마련인데요. 그러다보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는 아니고 일상이 붕괴될 수 있지 않나요?

집착하지 않기로 마음을 딱 먹고 시작했어요. 블로그를 하는 게 축구를 알리고 애착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인데 자칫 잘못하면 블로그가 목적이 되고, 그럼 전 바보가 되잖아요.

운동에 전혀 방해되지 않아요. 오히려 도움이 돼요. 이 취미생활로 기분이 좋아지고 생각도 깊어지고 팬들이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아니까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고요. 우리 팀 어린 선수들에게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전해진다고 생각해요. 포스팅 때문에 R리그 경기에 팬들이 좀 많이 오신 적이 있거든요. 그러면 팀 후배들에게 ‘팬들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죠.

-블로그의 영향력을 현실 세계에서 느끼신 적은?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누워 있었어요. 그런데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상기 씨 거기 누워 있으면 입 돌아갑니다’라고 온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소오름 돋고. 데이트 하다가도 팬이 알아본 적이 있고요.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요? 1) 서울이랜드편

처음엔 선수들한테 커밍아웃을 안 했어요. (그걸 커밍아웃이라고 부르세요?) 네. 저의 정체성이니까. 하하. 그러다 아까 말씀드린 출정식 때 들통이 났고, 그 뒤로 선수들이 저의 카메라를 피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고맙게도 응원해 줬어요. 너무 잘 썼다. 나 넣어주라 하는 선수도 있고. 내 글은 언제 올려주냐 묻기도 하고요.

윤성열 선수는 노래를 잘 하거든요. 자기 노래방 영상 좀 올려달라고 저한테 민원을 넣었어요. 김동진 선수는 자기가 샴푸 요정인지 도둑인지 이야기한 적이 있죠. 그리고 김영광 선수는 애독자 1호 수준으로 매일 제 글을 봐 줘요. 둘이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영광이 형 이야기는 일부러 빼는 편이예요.

-주위의 반응 2) 타팀편

경기 시작 전에 다른 팀 선수들과 몸 풀며 만나고, 악수하며 얼굴을 보잖아요. 그 진지한 분위기에서 ‘블로그 잘 보고 있다’는 말을 매번 들어요. 심지어 타팀 감독님 코치님들도 연락이 와요. 김태완(상주상무 코치) 선생님과 최근에 통화했는데 ‘어 상기 좋아 보인다. 블로그 잘 보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저희 팀 박상균 대표도 ‘좋아요’를 누르셨어요. (대표이사가 보고 있으니 긴장하며 자기검열을 하겠군요.) 아뇨!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절대. 크하하.

-아까 블로그를 통해 R리그 관중이 늘었다고 하셨는데

개막전이 서울 더비(3월 29일)였잖아요. 그때 관중이 100명 정도 오셨어요. 제가 R리그 세대라서 경기 경험이 엄청 많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관중 많은 경기는 처음이었어요. 심지어 FC서울 서포터들 앞에 인사하러 갔는데도 “이상기 화이팅!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라며 선물을 주시고. 엄청 웃겼어요.

-파워블로그의 필수 코스가 있죠. 바로 이벤트인데요

할 거예요. 경기장으로 오시게 이벤트를 하고 싶어요. 당첨된 사람은 경기장에 강제로 와서 경기를 보고 저랑 소통한다든가. 아니면 제가 드라이브도 해 주고 경기를 보여준다든가. 그리고 나면 그게 또 다음 포스팅 아이템이 되겠죠.

-팬과의 데이트? 여자친구도 있으시면서?

괜찮아요. 여자친구가 많이 도와줘요. 블로그 응원해 주고, 아이템을 알려주고요. 제가 컴퓨터를 잘 못해서 버벅거리면 해 줄때도 있어요. 아까 이야기한 한강편의 영상을 보면 제 뒤에 먼저 뛰어간 사람이 있고, 제가 그 사람을 따라 뛰거든요. 그게 여자친구예요.

처음엔 여자친구 쇼핑할 때 가방 들어주는 내용으로 시작했어요. 축구선수도 팬들과 똑같이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는 내용이었죠.

-부업인 축구 이야기를 너무 안 했네요. 서울이랜드는 김영광이란 강력한 경쟁자가 있죠. 이상기 선수로선 1군 경기에 나가기 힘든 상황인데요. 블로그는 그럴 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좋은 취미생활을 갖고 있으니까, 제 정신이 힘든 상황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요. 선수들은 고민을 계속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거든요. 고민만 하고 있을 시간에 저는 블로그라는 취미가 있으니까 더 긍정적일 수 있죠. 글을 쓰다보면 팬들을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제가 블로그에 올린 내용이 있으니까 행동도 거기 따라야 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다잡게 되죠.

-축구 선수들 중에 이 정도로 열심히 취미생활을 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다른 선수들에게도 완전히 몰두할 만한 취미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으신가요?

당연하죠. 지금 후보라고 해서 우리 인생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야 다음으로 도약을 할 수 있는 건데 축구선수란 틀에 자꾸 얽매이다보면 지금도 잘 안 풀리고,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더 힘들 것 같아요. 지금 사회를 접할 기회를 살려가며 더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이 그 방법이죠. 아, 물론 제일 기본은 열심히 훈련하는 거고요.

블로그를 하며 고민하는 건데, 우리 현실에 안타까운 게 많아요. 선수들이 은퇴하면 다들 지도자를 하게 되는데 사실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판매직에 도전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망하는 경우가 많고요. 은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되죠. 그래서 사회성을 많이 길러야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하지 않고 수업을 들었어야 되는데.

-최대한 덜어낸다고 하셨지만 블로그에 김영광 선수가 자주 등장합니다. 경쟁자인데, 견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라이벌이죠. 그런데 라이벌과 가장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같이 성장해야 하니까. 영광이 형이 경기를 잘 하고 우리 팀 성적이 좋은 것도 제가 라이벌로서 ‘파이팅’을 더해 준 영향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워낙 좋아요. 항상 그렇게 검증돼 온 형이에요.

-마지막으로 블로그 예고를 좀 해 주신다면요

스태프 편. 선수들 말고 운동장에 보이지 않는 분들 있잖아요. 빨래해주시고 마사지해주시고 청소해주시는 분들을 다루는 포스팅도 해보고 싶고요. 제 블로그를 선수들도 보잖아요. 그래서 ‘몸 관리편’도 해 보고 싶고.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심리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조기축구회 골키퍼들을 위한 골키퍼 훈련편도 해보고 싶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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