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서형권 기자
김민재.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투지와 정신력을 구분하지 못했던 20세기로 퇴화해버렸다.

2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3차전을 가진 한국이 태국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한국은 2승 1무로 여전히 조 1위를 지키고는 있지만, 다가오는 26일 태국 원정이 굉장히 부담스런 처지가 됐다.

또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시절 시작된 슬럼프가 황선홍 임시감독 체제까지 이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부터 90분 내 승리가 6경기 째 없다. 이 6경기 전적은 1승 4무 1패지만 한 차례 승리는 연장전에서 거둔 것이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관중들이 내건 걸개, 경기 후 손흥민의 인터뷰를 통해 ‘대가리 박고 뛰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아시안컵에서 불거진 내분 논란을 종식시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달 초 김민재가 소속팀 바이에른뮌헨 경기 후 ‘풋볼리스트’ 등 국내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민재가 쓴 표현은 정확히 “머리 쳐박고 뛰어야 한다”였는데, 과거 구자철이 “박지성은 대표팀에서 대가리 박고 뛰었다”라고 한 말과 섞이며 유행어가 됐다. 손흥민은 태국전 후 인터뷰에서 “민재가 얘기했듯이 대가리 박고 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마음가짐을 다잡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술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분석적인 발언이었다. 표현이 투박했을 뿐이다.

발언 당시 김민재는 아시아 팀을 상대로도 선수 각자의 재능에 의존하는 축구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시안컵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민재는 정확히 “아시안컵 보셨겠지만 솔직히 아시아 팀들이 너무 상향평준화가 많이 됐고, 강팀이라던 팀들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냥 머리 처박고 뛰어야 될 것 같다. 누가 어디서 뛰고 그런 거 다 상관없는 것 같고, 실력이 좋고 다 상관없는 거 같고. 그냥 누가 한 발짝 더 뛰고 누가 더 희생을 하면서 뛰느냐에 따라 팀의 퀄리티가 정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즉 클린스만 감독 시절처럼 뛰어난 선수들의 개인기량에 의존하는 축구는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민재는 그 이유를 상향평준화에서 찾았다. 아시아 국가들조차, 개인기량은 떨어지더라도 수비 조직력과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모두 올라왔다. 이들을 뚫고 이득을 보려면 한국 역시 조직력과 판단력을 극대화해 경기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태국전을 보면, 아시안컵에 이어 다시 한 번 조직력 측면에서 한국이 뒤쳐지는 양상이 자주 보였다. 특히 경기 초반에는 태국이 확실히 더 나은 경기운영 능력을 보여줬고 한국 선수들은 경기 흐름에 녹아들 때까지 20분 정도가 소요됐다. 홈에서 일방적인 응원과 더 익숙한 날씨라는 이점이 있음에도 한국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기까지 더 오래 걸렸다. 전반전 막판에 완전히 통제권을 틀어쥔 듯 보였는데 후반전이 되자 다시 태국의 경기운영에 말리더니 동점골을 내주기에 이르렀다.

김민재가 던진 메시지의 가장 구체적인 부분은 지역방어의 보편화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아시안컵에 나가는 팀은 일자 포백 앞에 미드필더들로 한 겹을 더 세워 두 줄로 수비벽을 갖추고 간격을 유지할 줄 안다. 그리고 상대 미드필더가 공을 잡았을 때 적절히 압박하면서도 수비진의 조직은 깨뜨리지 않는 법을 익혔다. 한국은 개인기량만 좋을 뿐 이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손흥민. 서형권 기자
손흥민. 서형권 기자
이강인. 서형권 기자
이강인. 서형권 기자
설영우. 서형권 기자
설영우. 서형권 기자

한국이 빌드업을 할 때 공을 가진 선수에게 패스 경로를 여러 개 열어줄 수 있도록 적당한 간격으로 접근해주는 플레이가 전혀 나오지 않아 태국이 쉽게 압박에 성공하는 대목도 있었다. 공을 받으러 가는 움직임, 미끼가 되는 움직임, 수비시 위치를 잡아주는 움직임 등 티나지 않아도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는 많이 뛰는 선수조차 비효율적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컸다.

득점 기회를 만드는 상황, 수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티가 나지 않는다. 큰 의미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 점이 쌓여 손해로 이어진다. 실점 장면은 대표적이다. 태국의 스로인 상황에서 받는 선수가 가만히 서서 받지 않고 기습적으로 움직이며 공격을 전개했다. 정우영, 황인범, 설영우 사이에서 공을 받았는데 이 순간적인 움직임에 1초 정도 한국이 늦게 반응했다. 설영우가 달라붙으며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태국은 모든 공격자원이 이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국 수비를 한 쪽으로 몰아놓은 뒤 득점했다. 사소해 보이는 스로인 상황의 집중력 차이였다.

‘대가리 박고’ 뛴다는 건 원래 가진 전술지능보다 멍청해지라는 게 아니었다. 개인기만 믿고 전방에서 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팀에 가장 도움되는 플레이를 90분 내내 고민하며 한 발 더 움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그 진짜 의미를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단순히 신체능력과 발기술만 좋아서 빅 리그로 진출하는 건 아니다. 축구지능과 전술 소화능력도 좋고, 특히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평소에도 더 지능적인 축구에 대한 훈련을 늘 받고 있다. 하지만 대표팀에만 오면 그 능력을 다 잊어버리고 공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고리를 끊는 게 경기력 회복을 위한 가장 큰 과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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