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대전] 한준 기자= 현역 시절 ‘비운의 천재’로 불린 대전시티즌 감독 조진호(41)의 이미지는 여전히 지도자 보다 선수에 더 가깝다. 올드팬들의 기억에 조진호의 거침 없는 드리블링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감독 조진호의 이미지는 그 보다 흐리다.

조 감독은 2013시즌 후반기 김인완 감독이 대전을 위기에서 구하지 못하자 대행 꼬리표를 달고 부임했다. 마지막 6경기에서 5승 1무를 기록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끝내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2014시즌에도 대행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수원FC와 개막전에서 패했으나 내리 연전연승을 거두며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4시즌 대전은 시즌 내내 챌린지 선두를 달렸고, 끝내 우승하며 1부 승격을 이뤘다. 아드리아노의 골 폭풍과 ‘레전드’ 김은중의 귀환, ‘슈퍼루키’ 서명원의 이름이 중심에 있었다. 여전히 조진호의 축구가 어떤가에 대해선 안개 속에 있다. 그 자신도 축구 그 자체를 말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12년 간 코치 생활, R리그 감독 5년의 교훈

축구 선수 조진호는 이른 나이에 빛을 봤다. 만 18세에 1991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했고, 만 19세의 역대 최연소 나이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했다. 1994 미국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고작 만 21세였다. 한국의 마라도나로 불렸다.

지도자 조진호는 먼 길을 돌았다. 2002년 부상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11년 동안 코치 생활을 했다. 부천SK, 제주유나이티드, 전남드래곤즈, 대전시티즌을 거쳤다. 2013시즌 말 감독 대행직을 맡을 때 까지만 해도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5승 1무로 첫 시즌 마지막을 장식했고, 2014시즌에 대전을 압도적인 챌린지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조 감독은 기나긴 코치 시절이 인내를 배우고 공부를 하는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에는성취욕과 승부욕이 강했다. 지도자는 선수 때와 다르다.. 참는 것을 배웠다. 인내를 많이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쌓는 시간을 보내고 조 감독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여러 감독님 장단점을 많이 보고 내가 하면 어떻게 접목할까를 생각하고 메모하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감독 기회가 온다면 두렵지 않았다.”

코치 생활을 11년 동안 보낸 조 감독은 부천과 제주에서 5년 동안 2군팀 감독을 맡으며 벤치의 수장 역할을 경험했다. 당시 K리그에는 2군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위해 R리그가 운영되었다. 열악한 조건 속에 보낸 R리그 감독직은 조 감독에게는 가장 큰 경험과 자산이 되었다.

“2군 선수들은 불만도 많고, 2군리그 자체가 동기부여가 없다. 2군은 1군에 대비하기 위해 운동량도 많다. 하루 4회 훈련을 하라는 지시가 오기도 했다. 저녁에 선수들의 웨이트도 시켜서 몸을 만들게 해야 했다. 잠자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감독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도 어려웠다. 1,2군을 오가는 선수들도 많고, 선수가 다 빠져나가 균형이 안 맞는 때도 많았다.”

악조건 속에도 2005시즌 부천 2군을 R리그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 조 감독이다. “딱 필드 선수10명을 데리고도 경기 해봤다. 다리에 쥐가 나도 교체를 못한다. 그래서 선수의 포지션을 바꿔가며 뛰게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올 시즌 대전에서도 막판에 부상 선수가 속출해도 걱정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R리그에서의 경험은 조 감독을 누구보다 변화 무쌍한 포메이션 변화와 포지션 파괴를 시도하는 전술적인 감독으로 키웠다.

시즌 내내 시도한 포지션 파괴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바이에른뮌헨은 현대 축구 전술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선수들은 정해진 포지션 없이 뛰고, 경기 도중 수 차례 포메이션이 바뀐다. 조 감독의 축구도 이와 비슷한다. 세 가지 포메이션이 경기 중 자유자재로 바뀐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최소한 두 개, 많게는 세 개의 포지션을 소화한다.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맡아도 무리 없이 경기에 녹아든다.

조 감독의 파격적인 기용은 기행이 아니다. 시즌 내내 훈련과 연습 경기를 통해 준비한 결과다. “지금도 선수를 보다가 이 선수가 다른 자리에 가능성 있는지 없는 지 계속 관찰한다. 송주한도 마찬가지고 유성기나 공격수 김찬희도 연습 경기에서 중앙 수비수를 시켜봤다. 된 선수도 있고, 안된 선수들도 있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를 서로 다른 자리에서 뛰게 했을 때 더 잘하는 경우도 봤다.”

대전 선수들은 대부분이 멀티 플레이어다. 송주한은 왼발잡이 풀백이다. 임창우가 아시안게임에 처출되자 라이트백으로 뛰었다. 풀백은 물론 중앙 미드필더와 센터백까지 소화했다. 21세 이하 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원동력이다. 레프트백 장원석도 측면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 임영규는 중앙 수비수지만 스트라이커로도 뛰었다.

주전 미드필더 김종국은 측면과 중앙을 모두 뛰고, 풀백 김한섭은 시즌 말미에는 거의 윙으로 나왔다. 조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느 자리든 처음은 헷갈릴 수 있으니 믿으라고 했다. 불만 갖지 말고, 믿고 하면 그 자리에서 더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즐겁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다독였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대전 선수들은 멀티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변화로 인해 대전은 분석하기 어려운 팀이 됐다. 중요한 것은 경기 중에 선수들의 위치가자연스럽게 변한다는 점이다. 조 감독은 “경기를 뛰던 선수들은 경기 흐름에 적응이 되어서 포지션을 바꿔줘도 잘 한다. 중앙 수비와 스트라이커 바꿔도 된다. 그래서 경기 전에 미리 4-4-2나 스리백 수비, 4-3-3 포메이션 중 세 가지를 어느 때곤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해둔다. 상황에 따라 준비하라고 미팅 때 인지시키고 나간다.”

전술 패턴 훈련에 집중, 공격적인 터치가 핵심

변화무쌍한 전술 변화를 위해 조 감독의 훈련은 대부분 볼을 갖고 진행된다. 공격 전술 패턴 훈련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조 감독은 “서로 경합이 강하게 훈련하면 부상자가 많이 나온다. 패턴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이 경기의 길을 알게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베스트11과 나머지 팀으로 구성해 압박을 강하지 않게 하고 패턴을 익히게 한다. 수비부터 패스 연결로 길을 찾게 한다. 이 훈련을 몇몇 선수가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다른 역할이 익숙하도록 하면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조 감독은 “이 훈련으로 부상과 체력 소모를 피한다. 볼이 오기 전에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수비가 빠르게 붙는다고 가정해 길을 찾게 한다. 템포는 실제보다 느리지만 길을 알고 움직이는 패턴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 이 훈련 외에 기본적인 코어 트레이닝과 웨이트만 시킨다. 공을 가지고 패턴 훈련을 시킨다. 동계 훈련 때가 아니면 90분 이상 하지 않는다. 만족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바로 멈추고 쉬게 한다”며 체력을 많이 쓰는 훈련 보다 전술에 집중한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퍼스트 터치의 방향이다. “무조건 공격적으로 공을 잡아놓게 한다. 수비 쪽으로 잡으면 바로 바로 지적하고 멈춘다. 그렇게 공을 잡으면 백패스 밖에 할 수 없다. 바이에른뮌헨을 보면 절대 뒤로 공을 잡아두지 않는다. 세계적인 팀은 다 그렇다. 나는 유럽 축구 유학을 가지 못해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구준히 유럽 축구 빅리그 경기를 많이 보고, 편집해서 선수들에게 보여준다.”

챌린지에서 보낸 1년이 준 교훈

챌린지에서 보낸 1년은 이제 막 장도에 오른 감독 조진호에게 큰 경험이 됐다. 당장 수원FC와의 개막전에서 당한 대패가 깨달음을 줬다.

“사실 잘 준비했다고 생각해서 개막전에 상당히 기대를 많이 했었다. 나 자신도 급했고, 선수들도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데 자신감이 도취됐다. 나는 무조건 공격하자고, 선수들에게 져도 상관없다고 했는데 상대의 슈팅이 때리는 족족 들어가더라. 반면 우리 기회는 다 맞고 나왔다. 선수들에게 내가 다 잘못이라고 말했다. 가진 반도 못보여줬으니 희망이 있다고 했다.” 희망은 거짓이 아니었다. 대전은 뒤 이어 치른 고양Hi FC와의 홈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뒀고, 이를 기점으로 14경기 연속 무패로 창단 후 최다 연속 무패 신기록을 달성했다.

“선수와 지도자의 신뢰는 결국 결과다. 좋은 얘기를 해주고, 잘해주고, 밥을 사주고, 훈련 프로그램이 좋아도 결과가 나와야 선수들이 믿음을 준다.”

조 감독은 결과로 자신을 증명했다. 하지만, 만족은 없었다. “몇 경기 이기고 나서 기쁨 보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기니 좋다가, 허전한 마음이나 고독함이 이기는 경기 후에도 가시지 않았다. 너무 승승장구하다보니 이 승리가 나중에 독이 될 수 있지 않겠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렸다. 이 페이스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집중하고, 초심 잃어선 안된다.”

대전은 8월까지 부상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광진 외에 주전 선수들이 승리를 식량 삼아 지치지 않고 뛰며 승점을 쌓았다. 문제는 주중 경기가 몰리고, 아시안게임과 청소년 대표 소집으로 선수 자원에 이탈이 생긴 9월에 찾아왔다.

“버릴 경기는 버리려고 로테이션을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뛰던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열정 보였다. 대구전에는 쉬게 하려 했는데, 열정을 믿고 보냈다가 이후 부상이 늘었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 쉬게 해줬으면 안 다쳤을텐데. 클래식 가게 되면 더 치열하고, 120%를 하다 보면 부상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로테이션을 해야 하는 시점을 결정하는 측면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조 감독이 2014시즌에 가장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다.

2015시즌 목표, 전 구단 상대 승리

챌린지를 압도한 조 감독은 자만하지 않는다. “지금 스쿼드로 클래식에 가면 1승도 거두지 못한다”며 한 없이 자신을 낮췄다. 더 많은 노력과 보강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우승 잔치가 끝나기 무섭게 2015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현재 대전 선수단 안에는 다음 시즌을 위한 외국인 선수들이 테스트를 받고 있다.

대전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임창우가 임대 복귀로 팀을 떠나고 장원석은 군대를 간다. 좌우 풀백 보강이 필요하다. 조 감독은 풀백 외에 “중앙 수비도 보강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선수다. 아시아쿼터도 구단이 약속했다. 시즌 막판에 겪은 어려움으로 외국인 선수 보강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시겠다고 했다”며 전반적인 팀 강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올라왔다. 10년은 잔류해야 명문구단이 된다. 대전이 풍족하게 돈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알짜배기 선수로 보강해야 한다.”

선수 보강 만으로 좋은 팀을 만들 수는 없다. 조 감독은 해외 축구는 물론 국내의 수준 높은 팀들의 경기를 이미 시즌 내내 지켜보며 연구해왔다. 챌린지를 치렀지만 챌린지의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니었다.

“무조건 잘하는 팀은 다 본다.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첼시, 리버풀, 맨시티 등의 팀을 주로 봤다. UEFA챔피언스리그 등 큰 경기는 영상을 편집해서 선수들과 함께 본다. 우리 대표팀 경기의 좋은 장면도 보여준다. 직접 현장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서 서울, 수원, 전북, 포항 등 클래식 빅팀들의 경기를 시간 있을 때마다 혼자 가서 많이 봤다. 토요일에 우리가 경기를 하고 나면 일요일에 쉬니까 주로 그때 가서 보는 편이다. 보고 느끼고 온다. 시즌 중에도 어느 정도 클래식 간다는 목표가 섰기에 가능했다. 이긴 경기를 하고 마음이 편한 날이면 늘 보러 갔다.”

클래식을 준비하고 있는 조 감독은 2015시즌의 목표를 순위로 말하지 않았다. “11개 구단, 전 구단을 한 번씩 다 이겨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순위도 올라갈 것이다. 그게 목표고 도전이다. 그런 목표를 가져가야 한다. 11승은 하고 싶다.”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대전이 클래식에 잔류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3)편에 계속

사진=대전시티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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