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카잔(러시아)] 김정용 기자= 카잔은 그동안 한국 대표팀이 다녔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니즈니노브고로드, 로스토프나도누와는 다른 얼굴을 가졌다. 카잔에도 여느 도시처럼 크렘린(러시아식 요새 혹은 궁전)이 있다. 그러나 크렘린 안에 불쑥 솟은 탑은 러시아정교나 카톨릭 교회가 아니라 이슬람 사원이다.

카잔은 러시아 남부 타타르스탄 자치 공화국의 수도다. ‘스탄’으로 끝나는 이름처럼 카자흐스탄, 우즈베티스타,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문화도 비슷하다. 종교도 이웃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이슬람교다. 카잔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 아시아에 많이 퍼져 있는 몽고 제국의 후예가 타타르인이다. 러시아 내 소수민족에 속하는 타타르인이 서양 사람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타타르스탄에 살아왔다. 카잔의 미녀들은 동서양이 묘하게 섞여 유럽인들이 보기에 ‘신비스럽다’라고 할 만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카잔은 유럽의 끝이자, 조금만 나가면 아시아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런 도시에서 유럽 팀 독일과 아시아 팀 한국이 만나는 건 재미있는 상황이다. 지리적, 문화적, 기후적으로 보면 서아시아 원정을 종종 가는 한국 대표팀에 더 익숙한 곳이다. 대신 독일 대표팀은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카잔 아레나를 직접 밟아봤기 때문에 유리하다.

16세기까지 러시아는 몽고 제국과 그 후예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러시아를 위협했던 마지막 세력이 지금의 타타르스탄 지역에 위치했던 카잔칸국이었다. 모스크바가 카잔칸국을 정복한 뒤에도 몽고식 문화는 러시아 곳곳에 남아 있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제국을 세우면서 몽고식 풍습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과격하게 서유럽 문화를 도입했다. 대표팀 숙소 근처에 있는 여름궁전처럼 프랑스 건물을 연상시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한 건축물들은 카잔의 이슬람 문화에 대항하기 위한 과격한 대응방법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두 도시의 모습은 유독 극과 극이다. 한국은 러시아 성립의 역사를 관통하는 도시들을 거치며 월드컵을 치르고 있다.

카잔 아레나는 세계 어느 경기장과도 다른 독특한 장소에 세워졌다. 카잔카 강이 볼가 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건설된 카잔 아레나는 바로 옆에 큰 규모의 습지를 끼고 있다. 경기장 바로 앞에 정글 한가운데에나 있을 법한 수중식물의 거대한 서식지가 형성돼 있고 새들이 끼룩거리며 강 위를 날아다닌다. 순천만 바로 앞에 축구장이 있다고 생각하면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위도가 낮고 비교적 내륙에 위치한 카잔은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덥고 날씨 변덕이 심하다. 한국은 독일전 전날인 26일(현지시간) 경기장 적응 훈련을 하지 못했다. 이날 갑자기 천둥번개와 함께 도시 일부에는 폭우, 일부에는 우박이 쏟아졌다. 카잔카 강 남쪽에 위치한 크렘린에는 비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겨우 1km 정도 떨어진 ‘강북’은 비가 어찌나 많이 왔는지 도로가 거의 침수될 정도였다.

한국이 경기할 27일 오후 5시는 기온이 29도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하루 전 예보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경기 시간 날씨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한국은 날씨만큼 예측불허가 될 경기 결과를 기대하며 독일을 상대한다. 한국의 러시아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독일전은 흔히 알려진 러시아의 모습과 가장 동떨어진 도시에서 열린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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