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복고 음악이 유행한다고 해서 1990년대 스타일을 완전히 복제했다면 브루노 마스는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옛 장르와 2016년이 만났을 때,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즐긴다. 스리백이 다시 유행이라지만 과거의 스리백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작동 방식과 선수들의 역할 모두 새로운 스리백이다.

스리백의 전술적 의미에 대한 이야기는 유행이 시작된 5년 전 이탈리아부터 최근 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쏟아졌다. 이번 글에서는 다루는 범위를 좁혀 스리백 각 구성원들에게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 시대인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미드필드까지 전진하는 ‘스토퍼’

과거 스리백은 스토퍼 두 명, 스위퍼 한 명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거칠게 말하면 ‘수비 담당’ 두 명과 ‘경기 운영 담당’ 한 명으로 구성된 조합이었다. 2010년 이후엔 세 명 모두, 최소 두 명 정도는 공격수를 막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때 스리백은 미드필더 숫자가 부족하므로 경기 장악에 약점이 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수비수가 직접 공을 몰고 전진하는 플레이가 효과적이다. 스리백은 상대의 전방 압박에서 빠져나가기 쉽다. 수비수 세 명을 모두 압박할 정도로 극단적인 전방 압박을 하는 팀은 드물기 때문에 후방에서 어느 정도 공을 돌리면 스리백 중 한 명이 견제에서 벗어난다. 이 선수가 짧은 패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공을 몰고 상대 진영까지 진출할 수 있다면, 팀은 빌드업의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단번에 득점 과정으로 돌입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엔 스위퍼만 전진을 도맡았다면, 최근엔 좌우에 있는 선수들이 더 자주 올라간다. 스리백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해 중요한 플레이다. 지난 2015년부터 꾸준히 스리백과 포백을 병행하고 있는 대구FC의 손현준 감독(2015년 당시 코치)은 “스리백은 선수들이 능동적,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수비수 세 명이 후방에 모여 상대 원톱을 막고 있으면 미드필더들이 수적 열세에 놓인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선 상황에 따라 한두 명이 앞으로 전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풀백 출신이거나 미드필더 출신인 선수들이 스리백에 자주 포함되는 이유다.

K리그 팬들에게도 익숙한 플레이다. 지난 시즌 전반기, 서울 스리백의 전술적 중심은 오스마르였지만 위치는 한가운데가 아니라 세 명 중 왼쪽이었다. 오스마르는 이 자리에서 패스를 뿌렸고, 상대 미드필더들이 자신을 압박하지 않을 땐 페널티 지역까지 단번에 공을 몰고 올라가 곧장 데얀이나 아드리아노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2) 측면까지 커버하는 스리백, 마음 놓고 전진하는 윙백

스리백은 흔히 비대칭 형태로 구성되며, 특히 한쪽 윙백이 유독 공격적인 팀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럴 땐 윙백이 윙어처럼 전진하고, 바로 뒤에 있는 수비수가 풀백처럼 측면까지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풀백과 센터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라면 스리백에 가장 잘 맞는다. 이들은 센터백의 제공권과 풀백의 활동 반경을 모두 갖고 있다. 수비와 빌드업 두 측면 모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스리백을 유행시키기 시작한 유벤투스에서 조르조 키엘리니가 좋은 예를 보여줬다. 키엘리니는 포백에서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모두 소화하는 선수다. 스리백에선 넓은 활동반경과 대인방어 능력을 동시에 활용해 상대 오른쪽 속공을 일찌감치 끊었다. 직접 공을 몰고 오버래핑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벤투스 왼쪽 윙백은 키엘리니의 지원을 받으며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었다. 파올로 데 첼리에, 콰드워 아사모아가 기량 이상으로 맹활약할 수 있던 건 키엘리니 덕분이기도 했다. 스리백의 윙백은 체력적 부담이 매우 큰 포지션이다. 풀백 성향의 센터백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최근 가장 화제를 모은 예는 첼시의 빅터 모지스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의 조합이다. 원래 윙어인 모지스는 공격 상황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하는 대신 수비 상황에선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풀백 출신 아스필리쿠에타가 오른쪽 수비 커버를 돕는다.

더 분명한 예는 지난해 1~2월 AS로마가 시도했던 스테판 엘샤라위의 윙백 기용이다. 엘샤라위는 공격수라는 이미지가 강한 선수다. 윙어로 배치될 때도 크로스가 아니라 문전 침투를 통한 득점이 특기였다. 그런 선수를 왼쪽 윙백으로 배치한 건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의 파격이었다.

이때 엘샤라위의 뒤를 보완한 주카노비치 역시 190cm 장신과 왼발 크로스 능력을 동시에 지닌 센터백 겸 풀백이다. 주카노비치는 일반적인 수비 상황에서 스리백으로 뛴다. 엘샤라위가 중앙으로 진출하려 하면 주카노비치가 왼쪽까지 신경쓰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측면으로 이동한다. 주카노비치는 왼발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뛰어난 윙어 중에서 전진 배치하면 오히려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다. 주로 후방에서부터 속도를 살려 상대 진영으로 돌진하는 선수들이다. 엘샤라위, 모지스 모두 여기 해당한다. 이들에게 가속도를 붙일 시공간을 허용하려면 3-4-3의 윙어보다 윙백이 오히려 어울린다. 2015년 대구가 브라질 출신 윙어 레오를 윙백으로 기용했는데, 이영진 당시 대구 감독은 “레오가 체격이 작아(160cm) 상대 진영에서 견디기 힘들어 했다. 압박이 적은 윙백 자리에서 상대 진영으로 파고드는 플레이가 잘 맞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3) 롱 패스가 뛰어난 선수를 중앙에 배치한다

옛날 스위퍼의 역할을 수비수 세 명이 고루 분담한다지만, 롱 패스를 날리는 건 여전히 한가운데 배치되는 선수의 몫인 경우가 많다. 모범답안은 역시 유벤투스가 제시했다. 키엘리니와 안드레아 바르찰리 중 한 명이 앞으로 올라가면, 레오나르도 보누치는 나머지 한 명과 함께 후방에 남아 새로운 수비진을 형성하게 된다. 세트피스가 아닌 이상 보누치가 전진할 일이 가장 드물다.

대신 보누치는 롱 패스로 빌드업에 기여한다. 직접 올라가기 힘든 위치에 있는 대신 경기장 전체를 조망할 줄 알고 롱 킥이 정확한 편이다. 보누치의 패스가 속공의 기점 노릇을 한다. 포백을 병행하거나 경기 중 유연하게 수비 방식을 바꾸는 이번 시즌에도 롱 패스는 여전히 중요한 무기다. 보누치는 이탈리아세리에A 필드플레이어 중 3위인 경기당 6.7회의 롱 패스 기록을 갖고 있다.

토트넘이 스리백을 도입하면서 토비 알더바이럴트를 중앙에 배치한 것은 얼핏 보기에 의아한 결정이었다. 얀 베르통언과 알더바이럴트는 각각 좌우 풀백까지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두 명을 좌우로 벌리고, 그 사이에 에릭 다이어를 위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포백 위주였던 지난 시즌에도 다이어가 뒤로 내려가며 일시적으로 스리백을 형성하는 전략이 자주 쓰였다. 그런데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스리백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다이어를 오른쪽, 알더바이럴트를 중앙에 배치했다.

알더바이럴트는 경기당 롱 패스 7.1회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필드 플레이어 중 단연 1위다. 에릭 다이어(4.8회), 얀 베르통언(4.7회)도 롱 패스가 많지만 알더바이럴트에 비해선 적은 편이다. 알더바이럴트는 대부분 포백으로 풀레이한 지난 시즌에도 평균 6.3회의 롱 패스를 기록했다. EPL에서 가장 뛰어난 롱 패스를 활용해 스위퍼로 활약 중인 셈이다.

스리백 중에서도 좌우에 있는 선수와 중앙에 있는 선수는 주로 구사하게 되는 패스의 구질이 다르다. 좌우에 있는 선수들은 땅볼로 전진 패스를 자주 하게 되고, 중앙에 있는 선수들은 롱패스의 비중이 높아진다. AS로마가 스리백을 시도할 때 스위퍼를 맡는 선수 역시 롱 패스의 달인인 다니엘레 데로시였다. 지난 시즌 스리백 중 빌드업 리더가 없었던 수원삼성은 왼발 킥이 좋은 풀백 출신 양상민을 가운데 배치하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4) 스위퍼 대신 ‘파이터’를 중앙에

롱 패스가 좋은 선수를 중앙에 배치하는 흐름과 동시에 스위퍼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경우도 있다. 스리백의 중앙에 가장 대인방어가 좋고 원기왕성한 선수를 배치하는 것이다. 첼시 스리백에서 중앙을 맡는 다비드 루이스가 대표적이다.

스리백의 가운데 있는 선수는 차분하게 경기를 읽고 동료들을 지휘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루이스는 실수가 많고, 플레이가 거친 편이다. 일반적으론 스위퍼보다 스토퍼가 어울려 보이는 선수다. 그러나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루이스를 중앙에 배치하고, 게리 케이힐을 오히려 왼쪽 스토퍼로 배치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이후 첼시는 연승을 달리며 단숨에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중앙에 대인방어가 좋고 수비 범위가 넒은 선수를 배치하면 그만큼 속공이 빨라진다. 과거 스리백의 수비는 좌우 스토퍼가 투톱을 제압하고, 스위퍼가 뒤로 흐르는 공을 처리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로부터 직접 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 지키며 실수를 기다린 뒤, 상대 공격이 완전히 무산되면 그때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루이스 같은 스타일의 선수가 수비진 가운데 있다가 과감한 수비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첼시는 곧장 속공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3-5-2 포메이션으로 중앙 미드필더가 3명인 팀들과 달리 첼시의 3-4-3엔 중앙 미드필더가 둘 뿐이다. 수비와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은 루이스, 왼쪽 수비수 게리 케이힐, 미드필더인 은골로 캉테와 네마냐 마티치 등이 협동해서 메우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구식 스위퍼처럼 소극적인 수비를 하는 선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루이스는 딱히 대단한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 패스를 번번이 인터셉트하는 것도 아니다. 눈에 띄는 세부 기록이 없다. 대신 3-5-2에 비해 한 명 적은 수비 숫자에도 불구하고 집중력 높은 수비와 훌륭한 운동 능력으로 빈틈없이 후방을 지킨다. 알더베이럴트가 토트넘에서 한가운데를 맡아 활약할 수 있는 비결 중에는 위에서 살펴본 롱패스뿐 아니라 넓은 수비 범위도 있다.

지난해 서울 수비진에서 중앙에 배치된 김원식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김원식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겸할 수 있는 선수지만 빌드업 과정에서 그리 비중이 크진 않았다. 대신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는 적극성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터프하게 봉쇄했고, 오스마르에게 빠르게 패스해 빌드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글= 김정용 기자

그래픽= 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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