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성남] 김정용 기자= 박경훈 성남FC 감독은 팀 유니폼처럼 검은 옷, 그 위에 새겨진 글씨처럼 흰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이제 성남 감독이라고 선언하는 듯한 복장이었다.

감독실로 올라가 외투를 벗자 특유의 조화로운 옷차림이 드러났다. 니트부터 벨트까지 조금씩 톤이 다른 푸른색이었고, 늘 그렇듯 바지는 복사뼈 바로 아래서 멈췄다. 패션 감각뿐 아니라 이도영 수석코치와 이충호 골키퍼코치, 이번에 영입한 장은규와 김영신 등 제주유나이티드 감독 시절(2010~2014) 그대로인 부분이 많다.

크게 달라진 것도 있다. 박 감독은 제주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성남FC에서 중상위권은 곧 실패다. 지난 시즌 부진으로 K리그 챌린지까지 강등된 성남은 승격만이 성공인 팀이다. 박 감독은 K리그 클래식보다 영광은 덜하고 압박은 더 심한 곳에 왔다. 그는 확고한 목표의식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경훈 감독과 인터뷰 전문. 

- 제주의 클럽하우스는 시설이 좋고 외진 곳에 있다. 성남 숙소, 사무실은 시내 한가운데에 있고 허름하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은 하셨는지.

12월 내내 이 방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뭘. 아주 익숙하다. 구단과 선수 수급을 계속 논의했다. 틈틈이 전주를 오가며 남은 수업(전주대학교 교수)을 했다. 이제 전주 갈 일은 끝났다.

선수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다들 표정이 안 좋았다. 원래 크리스마스 전에 운동을 일주일이든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도 선수들을 좀 알아야 되니까. 그런데 선수들 얼굴을 보자 훈련보다 휴식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쉬기로 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올해 목표는 물론 승격이지만 슬로건은 ‘한 번 즐겨보자’다. 운동장에 나가서 즐기며 에너지와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도록.

 

-제주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2010년과 비슷한 이야기 같다. 그때도 선수들을 편하게 해 준 것이 비결로 꼽혔다. 2009년 15팀 중 14위였던 제주가 1년 만에 우승 문턱까지 갔다.

그때도 선수들에게 잔소리를 별로 안 했다. 코치들에게 많이 맡겼고, 선수들을 지켜봤다. 프로는 좀 그래야 한다.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가 뭔지, 감독의 플레이스타일 철학이 뭔지 인지시켜주면 선수들이 그걸 갖고 스스로 해나가야 된다. 선수들에 맞춘 전술 등이 그 다음에 따라온다.

향후엔 이런 숙소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자유롭게 출퇴근 하고. 감독 요구를 못 맞춰주면 다음 경기는 못 나가고. 그렇게 경쟁하는 게 프로다. 나는 경기 외적인 건 선수들에게 모두 맡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프로 생긴지 1, 2년도 아니고 30년이 넘었는데, 코치가 일일이 관리하는 건 좀 아니다. 다만 선수들은 프로로서 품위를 지키고 공인다운 행동을 해 줘야겠지.

 

-전신 성남일화 시절부터 감독 스타일을 가르는 화두 같은 것이 있었다. 미혼 선수는 반강제로 숙소 생활을 해야 하느냐, 아니면 자율적으로 나가 살아도 되느냐 여부다. 보시다시피 숙소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성남 클럽하우스는 내년 완공 예정이다)

당연히 나가 살아도 된다. 다만 먹는 것과 생활 습관을 알아서 해야 한다. 축구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미혼자들이 혼자 자취하며 영양섭취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런 걸 걱정해선 프로가 아니다. 영양섭취가 불균형을 이루면 뭐 경기에 못 나가겠지. 술 먹지 말라고 할 필요도 없다. 집에서 먹는 걸 어떻게 막겠나.

 

-계속 자율을 강조하니까 다른 상황을 가정해보겠다. 선수가 흡연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

물론 구단 내규에 벌금이나 처벌이 있겠지. 그런데 그 이상으로 뭐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프로 선수면 알아서 절제해야지. 라면 먹고 싶다고 먹어서야 되겠냐는 거다. 내가 비난할 필요가 없다. 경기력이 안 좋으면 못 뛰는 것뿐이다.

-새로 영입한 선수 중 오장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분명한 건 선수의 의지다. 2010년에 제주로 김은중을 데려올 때도 그렇게 잘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은중이는 기량과 의지가 있었다. 그걸 발휘할 수 있게 신뢰를 주는 게 감독이다. 장은이를 데려오기 전에 통화를 해 봤다. 다시 한 번 축구를 통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싶고, 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와 욕망이 워낙 컸다.

장은이는 부상이 완쾌됐다. 충분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챌린지에 와서 하겠다는 그 의지를 높게 봤다. 그래서 데려왔다. 다시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김은중은 2010년 13골을 기록했고, 제주 준우승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K리그 MVP를 수상했다)

 

-김은중을 살린 비결은 뭐였나? 오장은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나?

신뢰다. 그때 은중이가 5경기 동안 득점을 못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경기에 투입했다. 그러면서 연속 득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현범, 배기종 같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에서 그 선수들의 잠재력을 뿜어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과감하게 강민수와 트레이드로 두 명을 데려와서 우리 팀의 훌륭한 선수로, 기량을 펼치게 만들어 줬었다. 그 선수들이 있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오장은의 기량은 다들 안다. 단지 부상과 병마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완쾌된 상태다. 의지를 볼 때 얼마든지 재기, 성장, 도약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선수 변화를 최대한 줄일 거라고 했는데, 막상 선수단을 보니 반 정도 바꾼 것 같다

반 정도 변했다. 그런데 기존 핵심 선수들은 잡고 간다. 황의조, 김두현, 김동준처럼. 그러면서 변화도 줘야 한다. 그래야 기존 선수들도 변화하며 함께 성장한다.

 

-작년과 많이 달라진 부분은 어디인가

안재준, 김영신, 배승진, 장은규 등이 합류했다. 박진포(제주) 자리에 이지민 선수를 데려왔다. 60% 정도는 준비가 됐다. 외국인 선수를 얼마나 잘 보강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게 되면 작년보다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름이 있는 선수는 우리 팀으로 데려오기 쉽지 않다. 우리가 클래식 최하위만 유지했어도 영입이 쉬울 텐데 현실은 챌린지에 있다. 클래식 선수는 누구도 챌린지로 내려오려 하질 않는다. 돈을 더 주거나, 전 소속팀에서 경쟁이 너무 심해서 챌린지로 올 생각을 하거나,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핵심 선수는 유지해야 한다고 구단에 말했다.

전체적으로 포지션 균형을 잡기 위해서 나간 자리에 선수를 채웠고, 나이 든 선수가 나가면 신인을 잘 키워서 메울 수 있도록 짜고 있다.

 

-국내 선수 영입은 얼마나 남았나

마지막 퍼즐이라고 판단되면 한 명 정도는 영입할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 선수가 과연 될지는 아직 잘…. 영입한다면 윙어 한 명 정도? 좋은 선수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다. 선수들이 외국으로도 벌써 나갔고. 김동찬을 데려오고 싶었는데 내가 조금 늦었다. 태국을 이미 결정한 상태더라.

외국 선수들이 가장 중요하다. 여유가 있다면 검증된 선수보다 새로운 외국인을 키우는 게 내 스타일인데, 지금 그럴 수 없다. 우리 목표는 승격이다. 만약 클래식이면 상위 스플릿을 목표로 삼되 잘 풀리면 3위를 노릴 수 있다. 우린 그게 아니다. 우승만 목표다. 검증 안 된 선수 한 명을 써서 실패한다면 데미지가 크다. 그래서 검증된 선수를 찾고 있다.

아시아쿼터 센터백 한 명, 나머지 외국인 두 명은 공격 쪽 포지션이다. 이미 영입한 파울로가 섀도 스트라이커를 소화해 준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두 명은 윙어나 측면 미드필더가 되어야 한다. 외국인 선수들과 황의조가 공격에 잘 배합되는 게 중요하다. 미드필드는 기존 선수와 영입 선수 모두 좋으니까.

 

(성남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K리그 클래식 경력이 있는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계약 성사 단계라고 전했다)

 

-2년 쉬고 돌아온 K리그다. 그런데 K리그 클래식이 아닌 챌린지로 복귀했다

솔직히 ‘왜 내가 챌린지에 와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다. 클래식보다 관중이 적고 관심도 떨어지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 분명한 목표가 있기에 여기 온 거다. 승격이라는 목표. 이 성남이라는 구단은 생각지도 않게 챌린지로 떨어져 있다. 승격이 유일한 답이다. 사실 감독으로서 굉장한 승부수다. 만약 내가 클래식에 있었다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정도 성적만 내도 인정받고 연장계약을 할 수 있다. 반면 여기선 승격시키지 못하면 성공을 말할 수 없다.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진 팀에 나 자신을 던졌다. 클래식에서 어영부영 하는 것보다 여기서 나의 축구를 걸어보고 싶다. 그런 목표가 필요했다. 강등된 팀을 다시 구성해 승격을 이룬다면 굉장한 가치가 있을 거다. 내가 축구 안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이건 내게도 도전이다, 도전.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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