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쎄오도 늙는구나.”

축구계에서 동안으로 유명한 서정원(46) 수원삼성 감독은 2016시즌에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세월이 가져온 노화라기 보다, 축구 감독직 수행이 가져온 노화다. 수원삼성 프런트와 팬들은 2016시즌을 보내며 부쩍 세월이 느껴지는 서정원 감독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축구 감독직 수행이 주는 스트레스는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도자 데뷔 후 겪은 변화상을 통해 잘 드러난다. 머리숱이 급격히 줄었고, 그나마 남은 머리 뿐 아니라 수염까지 하얗게 샜다. 주름도 깊어졌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모습을 보며 “자기 일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정원 감독은 하위 스플릿 추락 등 수원 지휘봉을 잡은 이후 최악의 시간을 보낸 2016시즌에 FA컵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8일 축구회관에서 인터뷰를 가진 서 감독은 20여개 매체를 상대해야 하는 고된 일정에도 “이렇게 즐겁게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특유의 환한 미소를 보였다.

감독 경력 최대 위기와 최고의 영광을 한 해 안에 겪은 서 감독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 동안 자신이 겪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선수 시절 우승해본 것과 감독으로 우승를 한 것은 차이가 있나?
차이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내가 선수할 때 우리 팀(수원)에서 우승컵을 많이 들었다. 14번이나 들었는데, 그때 당시의 기쁨도 엄청났다. 그때 생각으로는 ‘이것만큼 좋을리 있겠어’라고 생각 했는데, 막상 감독이 되어서 처음 우승컵 들어보니 이게 가장 기쁜 것 같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쁜 우승이다. 당연히 올해가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기쁨이라 배가된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하자면, 1994 미국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을 때 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좋았던 것 같다.

-부임 후 첫 세 시즌 동안은 FA컵에 비중을 많이 두지 않았다.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올해는 정작 리그에서 부진으로 FA컵에 집중하게 되면서 전화위복이 됐나?
여러 가지가 공존했다. FA컵 같은 경우에는 그전에 아쉽게 떨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AFC챔피언스리그(ACL)와 K리그에 초점 많이 뒀다. 리그에서 두 번 준우승 할 때도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올해는 처음부터 FA컵에서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고 시작부터 했다. 집중력이 FA컵에서 결실을 만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마 8강전인거 같다. 성남과 8강전에서 두 명이 퇴장 당하고 후반부터 견뎌 승부차기까지 갔다. 선수들의 투혼이 나온 것이다. 4강도 그렇고, 힘들게 올라와야 우승하는 것 같다. 

-인천과 경기에서 2-2로 비겼을 때의 표정이 화제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얼굴은) 거짓말을 못한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아픔이고, 표현이다. 다시 돌아서서 생각하게 됐다. 이런 모습 선수들에겐 보이지 말아야지. 내 스스로 주문했다. 아픈 것은 내가 다 아파야 하고, 내가 가져가야 한다. 선수들과 똑같이 하면, 그 여파가 더 커지니까. 안하려고 노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팬들이 버스를 막고, (염)기훈이가 나가서 울었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김호 감독니부터 차범근, 윤성효 감독도 버스를 가로 막힌 적이 있다. 수원삼성 감독이 되는 통과의례 같다. 그 상황에 내가 선수로 다 있었다. 다 지켜봤다. (감독으로 경험하니) 그때보다 배가 아니라, 상상 초월하는 만큼 힘들었다. 그럴 때 누구나 다 (사퇴를) 생각할 것이다.

-사퇴를 생각했나?
그 생각을 솔직히 많이 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시즌 중에 그런 생각을 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정말, 더 강하게 생각했다. 아, 그만 둬야겠다. 그 때 생각한 것은, 이 팀이 수렁에 완전히 빠지면 안되니까. 이런 큰 자극을 주는 것이 어떨까. 어떻게 보면 내가 그만두고, 새로운 감독이 와서 선수들한테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반전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은 했다. 그래서 할까 생각을 했다가, 또 한쪽으로는 내가 너무 비겁한거 아닌가. 우리 선수들 때문에 솔직히 (사퇴) 못했다. 이런 나하고 몇 년간 고생 했는데, 이렇게 힘들다고 내가 놓고 나가면. 이건 진짜 비겁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내가 분명히 다시 돌려놔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그때가 9, 10월 쯤이었다.

-선수들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했나?
많이 힘들더라.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만약 내가 술을 먹을 줄 알았으면 우승 못했을 거다. 그러면 망가졌을 것 같다. 양주를 한 잔 마셔봤는데 너무 독해서 한 잔만 먹고 선물했다. 잠도 잘 못 잤다. 아내가 일거리를 줬다. 청소하고, 화단 정리하고, 잔디 깎기, 풀 뽑기. 축구를 잊게끔. 꽃도 사러 가고, 같이 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경기 비디오는 끼고 살아야 했다. 이런 힘들 때, 놓을 수는 없다. 더 뵈야 한다. 더 보고 준비해야 한다. 그런게 더 힘들었다. 힘들 때 그냥 다 잊으라고 다들 이야가하는데. 뭘 잊나. 어떻게 잊나. 그러면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고 만드나.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야, 잊어.’ 그런 말을 들으면 말도 안된다는 생각뿐이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축구 감독들이 굉장히 보통 늙고 머리도 빠지는데. 머리 숱은 많은 것 같다.
흰 머리도 엄청 나고. 시력도 안 좋아진 것 같다. 내가 원래 시력 되게 좋다. 작년까지 양 쪽 다1.5, 1.5를 유지했다. 계속. 올해 건강검진 받았으면 시력 많이 떨어져서 나왔을 것 같다.

-이제 감독으로 5년차가 된다. 처음과 뭐가 바뀌었나?
처음에는 자신감이 많았다. 의욕이 강했다. 그런데 깊이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난 할 수 있을거 같다는 의욕과 자신감이 컸는데, 이렇게 5년간 하면서 아픔을 겪고, 힘든 상황을 겪어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깊이라는 게 그런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왜 아파봐야 한다고 얘기하는지, 이해할 것 같다.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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