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랜드 꺾은 설기현 매직의 비밀

[풋볼리스트=잠실] 한준 기자=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잠실종합운동장에 들어선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FC의정부와 인천대를 꺾고 32강에 오른 성균관대에게 서울이랜드FC와 경기는 부담 없는 한 판이다.

“대학 선수들의 목표는 프로 진출인데, 프로 선수들과 실전 경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는 FA컵에 있다. 이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다. 서울이랜드는 챌린지 소속이지만 클래식 같은 팀이다.”

지난해 성균관대를 U리그 왕중왕전 준우승으로 이끈 설 감독은 올 시즌 대행 꼬리표를 떼고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FA컵 무대에서의 돌풍은 지도자 설기현을 검증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설기현 감독에겐 FA컵에서 어디까지 올라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울이랜드와 만나게 된 것은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배우겠다던 설기현이 가르쳐준 경기

배우러 왔다던 설기현 감독은 잠실에서 FA컵 16강 티켓을 가져갔다. 정규 시간 90분 동안에는 선제골을 얻었고, 연장전으로 접어든 이후에는 1-2로 역전을 허용한 상황에 따라 붙었다. 기어코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2라운드 일정에 FC의정부를 상대로 0-3 열세를 4-3 역전극으로 뒤집었던 성균관대의 돌풍은 우연이 아니었다. 

설 감독은 경기 전에 “우리 팀은 이미 올라올 만큼 올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더 올라가기 어렵다는 얘기다.하지만 선수들에게는 다른 메시지를 줬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선수들에게는 “주눅들지 말고 플레이 하라”는 점을 가장 강조했다.

“이 선수들이 프로이긴 해도 긴장해서 우리 경기를 못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다. 너희가 대학생이지만 너희 또래거나, 그 보다 어린 선수도 프로에서 뛰고 있다. 프로에 가겠다는 생각이라면 아마추어적인 플레이를 해선 안된다. 프로에 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를 스스로 느껴봐라. 밖에서는 너희들이 일대일 싸움에서 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겠지만, 너희 자신은 그래선 안된다. 절대 그런 부분에서는 지지 말아라.”

설 감독은 승패 보다 경기를 대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빠른 시간에 실점하지 않는 것을 강조했지만, 내려서서 수비적인 축구를 하겠다는 계획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내려선다고 골을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수비적으로 내려오면 상대에게 쉽게 슈팅을 허용한다. 우리가 공격을 해야 상대도 체력적으로 힘들어 지고 기회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

성균관대 골키퍼 최영은은 경기 시작 단계부터 목이 쉬어 있었다. 쉬지 않고 라인을 올리라고 소리쳤다. 설기현의 팀은 공격과 수비 상황에서 모두 철저하게 패턴 플레이로 움직였다. “작년에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조직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이랜드를 상대로 개인전술로 나간다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도전적인 축구는 의식이 아니라 훈련에서 나온다

성균관대의 경기를 비디오로 분석한 마틴 레니 서울이랜드 감독은 성균관대가 용감한 팀이라고 설명했다. 

“페너트레이션이 좋다. 영국에서도 선수로 그런 축구를 했던 설기현이 감독으로도 공격 작업을 잘 만들었다. 돌파를 할 때, 치고 들어가는 상황에 내주는 패스와 움직임이 좋다. 특히, 상대 수비 뒷 공간으로 찔러주는 패스와 움직임이 좋다.  한국 선수들은 실수를 두려워해서 공을 안전하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설기현은 그런 부분에서 성균관대를 잘 지도했다. 아주 흥미롭고 인상적인 팀이다.”

실제로 설기현이 만든 팀의 무게중심은 앞에 있었다. 중앙 지역으로 과감하게 파고 들었고, 도전적인 패스를 찔렀다. 두 골이 나온 과정도 문전 위험 지역을 공략한 결과였다. 설기현 감독은 어떻게 이런 팀을 만들었을까? 평생 살아온 의식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설기현 감독은 감독이 만들어 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격적인 패스, 전략적으로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는 방법은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독들은그런 것을 선수에게 요구하지만, 확실한 목적을 갖고 반복적으로 훈련한다면 의식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 조직이 갖춰져 있다면 패스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팀을 맡고 나서 선수들에게 자신있게 하라고 했다. 실수해도 괜찮다. 나는 막 선수를 마치고 지도자가 됐다. 나 역시 프로 경험이 많지만 경기에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실수해도 지적하지 않는다. 훈련을 통해 만들어줄 수 있다.”

성균관대 선수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공간을 채우는 움직임과 빈 공간으로 내주는 공의 움직임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었다. 수비 상황에서도 3명의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뒤에서 공간으로 빠져나오는 공이나 사람을 경계했다. 많은 운동량을 요했다. 전반 30분쯤으 흐른 뒤부터는 정확성이 떨어졌다. 경기 초반 점유율을 내주고 역습 공격을 펴던 서울이랜드가 경기 흐름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왼쪽 측면에 배치된 발 빠른 김민제를 중심으로 공격에 나선 서울이랜드는 전반 중반 이후부터 경기를 지배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슈팅이 번번이 중앙으로 쏠렸다. 후반전에도 경기 양상이 비슷했다. 그러나 성균관대가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 12분 오인표가 문전 왼쪽에서 돌파에 성공했고, 마무리 패스를 이진현이 밀어 넣었다. 

실점 직후 타라바이를 투입한 서울이랜드는 2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었다. 조우진이 얻은 페널티킥을 타라바이가 성공시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서울이랜드는 후반 30분 김재성을 투입하며 공격에 박차를 가하려 했다. 그러나 김재연이 빠지면서 오히려 중원에서 지배력이 떨어졌다. 후반 막판에 오히려 성균관대에 득점 찬스가 나왔다.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자율 강조하는 설기현, 내용 없는 결과는 의미 없다

연장전에서 기세를 올린 쪽은 서울이랜드였다. 연장 후반 16분 타라바이가 역전골을 넣었다. 성균관대는 연장 후반 19분 전진수가 문전으로 띄워올린 크로스 패스가 그대로 골이 됐다. 배후에서 침투하는 선수의 움직임이 날카로웠고, 서울이랜드 수비진이 타이밍을 잃었다. 레니 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 들더라”며 성균관대 선수들의 의지를 칭찬했다.

승부차기에서 두 개의 선방을 기록한 골키퍼 최영은은 성균관대의 16강 진출을 이끈 또 다른 주역이다. 설기현 감독은 기자회견에 동석한 최영은의 ‘홍보’를 자처했다. “기자 분들은 처음 보실지 모르지만 대학 대회에서 기본으로 페널티킥을 세 개씩은 막는 선수다.” 지난 해 대회에서 최영은이 펼친 활약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인터뷰가 낯선 최영은이 쭈뼛거리자 설 감독은 “인터뷰도 자신있게 하라”며 웃었다. 

“설기현 감독님이 오시면서 팀이 자유로워 졌다. 강압이 아니라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신다. 설기현 감독님은 우리 팀의 자부심이다. 2002 월드컵의 영웅이신 감독님에게 배우는 것이 자랑스럽다. 감독님을 믿고 했고, 그게 큰 도움이 됐다.”

설기현 감독은 16강 진출이라는 결과 보다 경기 내용에 만족감을 표했다. FA컵에서 어디까지 오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감독으로서 정답을 말했다. 

“크게 목표나 욕심은 없다. 어떤 팀과 경기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경기를 하는게 중요하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너무 결과에 치우 지지 말라는 것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내용 없는 결과 감독에겐 기쁘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축구, 우리 팀이 하고 있는 축구가 경기에 잘 나오는지, 나오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 결과가 안 나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내용이 좋지 않은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기쁘지 않더라. 다음 라운드에 누구와 만날지 모르지만 그런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 좋은 내용의 경기를 한다면 좋은 결과도 따라올 것이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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