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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지법] 시즌 중 감독 교체는 섣부르다감독 책임론에 대한 소고
한준 기자 | 승인 2016.04.01 01:24

[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경기력이 엉망이야. 감독을 바꿔야 해. OOO를 출전 시켰어야 하는 데. XXX는 센터백 보다는 풀백에 써야지. 저 감독은 축구를 잘 몰라.”

경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팬들은 쉽게 ‘감독 경질’을 말한다. 전 세계 도처에 ‘축구 전문가’를 자부하는 팬들이 많다. 축구계에서 감독은 파리 목숨이다. 한 팀에서 근속년수가 2~3년을 넘기 어렵다. 갓 부임하면 경험이 없다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정체되었다고 비판 받는다.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실망스런 성적에 결과론적 해석이 따라 붙을 뿐이다.

2015년 12월 발렌시아 지휘봉을 잡고 감독계에 발을 들인 게리 네빌은 4개월 만에 사임했다. 1996년부터 20년째 아스널을 이끌고 있는 아르센 벵거 감독도 최근 팬들이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발렌시아는 인연이 그리 깊지 않은 네빌 감독은 정리했지만, 아스널과 벵거 감독의 관계는 다르다. 벵거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다음 시즌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벵거 감독은 "무엇 때문에 그 일을 맡게 되었느냐를 제대로 아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감독이 명확한 방향성을 쥐고 있다면, 일단 보장된 계약 기간까지는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장기계획을 갖고 팀을 운영할 감독은 없을 것이다.

시즌 중 선수 이적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제도라고 여기는 벵거 감독은 시즌 중 감독 교체에 더더욱 부정적이다. 홈 팬들의 시즌 중  비판이 팀의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시즌 도중의 비판은, 특히 우승을 위해 싸우고 있는 시점에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홈팬들, 그리고 구단의 믿음과 지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리버풀은 팀이 지고 있어도 ‘넌 혼자 걷지 않는다(You will never walk alone)’이라는 응원가를 부르는 팬들을 등에 엎고 역전의 명수로 명성을 떨쳐 왔다. 반대로 잘 하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팬들 앞에서는 긴장할 수 밖에 없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부정적인 여론과 분위기에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채 대회에 임했다. 상대방이 야유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홈팬들의 비난이 쏟아지면 선수와 감독은 그라운드 위에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팬들의 열렬한 지지는 없던 힘도 끌어낸다. 반대로 있던 힘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축구경기에서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아무리 좋은 전략과 전술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잘 준비된 채 경기에 임해도 상대가 너무 강하거나,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실수가 발생하거나, 불운이 따르면 팽팽하던 경기 속에 한순간에 흐름을 잃는다.

#감독이 하는 일은 90분 바깥에 더 많다

한국 대표팀 감독은 언제나 비난의 도마 위에 올라 있던 자리다.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역대 한국 대표팀 감독 가운데 가장 여론의 평가가 좋은 인물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 조차 대회 전까지는 끊임없이 비판 받았다. 그런 슈틸리케 감독도 지난 해 연말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감독의 고충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선수는 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동안 자기 실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감독에겐 90분이 전부가 아니다. 경기 결과 이면에 굉장히 많은 것이 이뤄진다. 성적을 내기 위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 많은 세계적인 팀들이 공개 훈련을 없애고 비공개로 훈련한다. 그 밖에 팀 미팅, 개별 면담 등 무수히 많은 요소가 합쳐져서 좋은 지도자가 만들어진다.”

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가깝다. 지휘자의 역할은 실제 공연 보다 연주 연습이 이뤄질 때 더 중요하다. 축구 감독도 마찬가지다. 일단 경기 휘슬이 울리고 나면 직접 경기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크지 않다. 선수 교체와 몇몇 전술적 변화를 내릴 수 있지만, 훈련장에서 준비되지 않은 시도는 도박에 불과하다. 경기 중의 지시도 모두 훈련장에서 준비된 성과가 구현될 뿐이다.

더불어 감독이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관계를 맺는지, 어떤 과정으로 선수를 물색하고 선발했는지. 이 모든 과정에서 발휘되는 판단력과 분석력, 그리고 리더십은 목격도 어렵고 측량도 어렵다.

논란이 된 의사 결정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보도만으로 다 알 수 없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일도 많다. 내부자들의 자체 평가를 듣는 것 외에, 외부에서는 경기 결과 만으로 감독을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국 감독은 결과로 책임질 뿐이다.

다만 책임을 지는 시점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단지 몇몇 경기에서졌다는 이유 만으로 일자리를 잃어야 한다면, 팀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수 영입이나 전술 훈련을 위한 일정이 충분하지 않은 시즌 도중이라면, 일단 기존 감독을 믿어주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골을 먹은 것이 수비수와 골키퍼 만의 잘못이 아니고, 골을 넣지 못한 것이 최전방 공격수 만의 잘못이 아니듯, 과정 중에 있다면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일 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감독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모든 경기에서 이길 수는 없다. 각 팀은 각자의 현실에 맞는 목표치를 세운다. 자리는 한정적이다. 아무리 약한 팀도 ‘꼴찌’를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하는 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그 원인은 90분 경기 안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는, 새로 와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사람 보다 이미 내부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결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 감독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좋지 않은 경기 결과에 기존 계약 기간과 관계 없이 지휘봉을 내려 놓는 것이 명예롭게 퇴진하는 길일까? 그 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팀을 더 발전시키는 것에 매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책임은 아닐까? 빈번한 감독 교체는 비용 손실과 시간 낭비의 악순환을 부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위기 상태에 있는 팀을 잘 정비하고 수습할 수 있는 새 감독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결과론일 뿐이다. 수 많은 감독들이 실패한다. 실패한 뒤에 영영 복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팀에서 새로운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많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문제다. 알면서도 축구 팀들은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감독을 바꾸는 결정을 내린다.

영국 축구 전문 기자 사이먼 쿠퍼는 축구잡지 ‘포포투’에 기고한 글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질타를 받고 경질된 히딩크 감독이 첼시에서 구세주가 된 모습에 대해 “감독교체의 판타지”라 설명했다. 그는 워익 경영대학원의 수 브리지워터 교수가 연구한 프리미어리그 감독 교체 사례를 통해 ‘짧은 허니문 효과’가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일시적으로 성적이 개선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본래 상황으로 돌아간다. “낮은 성적일 때는 개선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새 감독이 오면 자연스럽게 성적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수들의 자세 등 일시적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 감독이 익숙해지는 3개월 뒤면 그 역시 평범해진다고 설명했다.

쿠퍼 기자는 감독 교체에 대해 “상당한 고가(高價)의 ‘취미활동’이다. 잉글랜드감독협회에 따르면 2010/2011시즌 잉글랜드 구단들은 경질 관련 비용으로 약 9,900만 파운드(약 1,685억 원)을 썼다. 보상금, 변호사 비용뿐 아니라 전임 감독과 새 감독에게 이중으로 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 돈으로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거나 경기장을 개보수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었다. 축구계 ‘인간 제물’이야말로 스포츠가 여전히 아둔하다는 증거”라고 질타했다.

감독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감독을 선임한 구단 결정권자에게도 동등한 책임이 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을 해고하는 회사는 없다. 그런데 유독 감독을 해임하는 일은 쉽게 생각한다. 감독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는 위약금만 지불하면, 혹은 상호합의 하에 해지하면 위약금도 없이 유명무실해진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과거 레알마드리드에 부임했을 때 선수단을 향해 “감독이 바뀐 것은 너희 전부를 다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위기가 닥치면 희생양이 필요하다. 가장 손쉽게 책임을 전가하고, 교체할 수 있는 것이 감독이다. 중요한 건 누가 책임을 지느냐 보다 그 다음 결과를 어떻게 개선시킬 것이냐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일종의 예의이기도 하다. 시즌 중 감독 교체는 말 그대로 '극약' 처방이다. 극약은 자주 써선 안된다. 사람이 들고 나는 일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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