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윤효용 기자= 충남아산FC는 올 시즌 홈 유니폼이 두 벌이다. 전세계 축구를 봐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충남아산은 지난 9일 홈 개막전에서 파란 홈 유니폼이 아닌 빨간 유니폼을 입어 논란이 됐다. 통상적으로 홈팀이 홈 유니폼을 입고, 상대가 이에 맞춰 원정 유니폼을 입는데, 이날은 아니었다. 충남아산은 돌연 빨간색 유니폼을 홈 경기에서 입겠다고 연맹에 보고했고, 부천이 하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축구에서 홈팀이 원정 유니폼을 입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모두 원정팀과 하나라도 겹치는 색 때문에 나온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2009년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을 치를 때, 홈인 빨간 유니폼, 원정인 파란 유니폼도 아닌 흰색 유니폼을 입었다. 빨강과 파랑 조합의 바르셀로나와 색이 둘다 겹쳤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6년 FC서울도 부천FC와 FA컵 4강 홈 경기를 치르며 원정 유니폼인 흰색 상의, 검정색 하의를 입었다. ‘검빨’을 상징색으로 쓰는 서울이 홈에서 원정 유니폼을 입은 이유는 부천의 홈, 원정 유니폼과 모두 겹쳤기 때문이다. 당시 부천은 홈 유니폼이 빨간색, 원정 유니폼이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충남아산의 파란색 홈 유니폼은 부천과 하나도 겹치지 않는데, 굳이 겹치는 빨간색 유니폼을 택했다.

그래서 이 사안은 ‘정치 논란’으로 번졌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의 김태흠 충남도지사, 박경귀 아산시장이 방문했고, 경기장 밖에서 여러 당의 유세 활동이 있었다. 총선이 한 달 남은 상황에, 굳이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하는 빨간색 유니폼을 선택해 ‘정치적 의도’가 섞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유니폼 뿐만 아니라 현수막, 클래퍼, 응원 깃발 등에 빨간색이 많이 섞인 점도 논란의 근거가 됐다. 

충남아산FC 유니폼. 풋볼리스트
충남아산FC 유니폼. 풋볼리스트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준일 충남아산 대표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빨간 유니폼은 국가대표 정신으로 임하자는 심정이었다.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외압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이 대표는 “유니폼은 앞으로도 파랑, 빨강, 하양 세 가지로 그대로 진행한다. 흰색은 원정에서 주로 입을 것이고, 홈에서는 파랑-빨강 유니폼 두 가지를 활용할 것”이라며 '이제 빨간색도 홈 유니폼'이라는 선언을 해버렸다. 

축구에서 팀 컬러는 곧 정체성이다.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맨체스터시티,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맞대결 결과에 따라 ‘맨체스터는 파란색’ ‘맨체스터는 빨간색’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색은 유니폼뿐 아니라 팀의 역사와 문화, 서포터들을 상징한다. 유니폼 색을 인위적으로 정할 때도 구단과 지역의 전통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인터마이애미는 연고지의 상징색인 분홍색을 유니폼에 채택한 바 있다. 충남아산이 갑자기 홈 유니폼 색을 두 가지로 늘리겠다는 건 팀 정체성을 해치는 행위다. 

이준일 대표. 풋볼리스트
이준일 대표. 풋볼리스트

더군다나 빨간색은 충남아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충남아산 엠블럼에는 노랑과 파랑이 들어간다. 구단 홈페이지에도 노랑은 은행나무, 번영, 환희, 파랑은 서해바다, 미래, 용맹을 상징한다고 적혀있다. 상징색은 팀의 정체성이고, 충남아산은 창단 이후 파란 유니폼을 정체성으로 가져왔다. 매번 ‘파랑주의보’를 슬로건으로 썼을 정도로 '파랑 마케팅' 중이었다.

팀 컬러를 바꾸는 건, 사람의 이름을 바꾸듯 많은 이들의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대표의 독단으로 빨간색을 추가하더니, 이제 두 가지 색을 모두 다 쓰겠다는 해괴한 발상을 내놨다. 동의를 얻어 바꾸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색만 슬쩍 끼워넣어 버렸다. 이런 일처리는 정체성을 가지고 팀을 응원해준 팬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킨다.

홈 유니폼 컬러가 두 가지인 건, ‘정치 논란’을 빼놓고 봐도 이상한 결정이다. 축구뿐 아니라 대부분 프로 스포츠의 상식에 어긋난다. 프로뿐 아니라 학교 체육대회의 반티를 맞출 때도 색을 기준으로 맞추고, 유니폼이 없는 친구는 같은 색 티셔츠라도 입고 오라고 하는 게 보통이다. 홈 색을 두 가지로 늘려 스스로 혼란을 초래하고 구단 가치를 저하시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홈에서 빨강을 입는데 규정상 문제는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유니폼 색을 등록할 때는 1킷, 2킷, 3킷 등의 일련번호가 있으며, 대부분 구단이 1킷을 홈, 2킷을 원정, 3킷을 서드(세 번째) 유니폼으로 한다. 충남아산의 경우 빨강이 3킷이지만 '우리는 이것도 홈으로 부르겠다'고 대표이사가 정한다면 막지 못한다. 현재 충남아산은 파랑 홈 유니폼과 빨강 홈 유니폼을 동시에 판매하고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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