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지난 16일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은 비공개 임원회의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발표하는 것과 함께 전력강화위원회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일에는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이끌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으로 정해성을 선임하고, 전력강화위원들도 전면 새 얼굴을 개최했다.

21일에는 새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1차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후에는 정 위원장이 내용을 종합해 브리핑했다.

정 위원장의 첫 브리핑은 부실했다. 신임 감독의 자질과 요건으로 전술적 역량, 취약 포지션 육성, 기존 성과, 풍부한 대회 경력, 소통 능력, 리더십, 최상의 코칭스태프, 향후 성과를 낼 가능성 등 여덟 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그러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가득 차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수준이었다.

3월 안에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정 위원장은 “재정비를 위해 감독 선임을 6월까지 미루는 건 맞지 않다. 현실적으로 임시 체제를 꾸려가기에는 여러 장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식 감독보다 임시 감독을 선임하기 쉬운 건 자명하다. 정식 감독에 비해 고려해야 할 요소도 훨씬 적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일본이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하고 니시노 기술위원장을 감독 대행으로 앉힌 것처럼 P급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정 위원장이 임시로 3월 A매치를 지휘하는 안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정 위원장은 그밖에 질의응답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국내외 감독을 가리지 않겠다고 언급하더니 답변을 거듭할수록 국내 감독으로 결정된 듯이 말했다. 이강인과 손흥민의 화해에 대해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처럼 흥분되고 기뻤다”고 언급한 걸 제외하고는 알맹이가 없는 발언들만 가득했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서형권 기자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서형권 기자

두루뭉술했던 브리핑조차 앞으로 보기 힘들 예정이다. 축구협회는 오는 24일 있을 제2차 전력강화위원회의부터 비공개로 진행되며, 결과 브리핑과 보도자료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 업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향후 회의를 통해 최종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에만 각 차수별 회의내용 경과보고를 포함한 결과 발표 간담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는 정 위원장이 지난 브리핑에서 ”오늘 발표에 대한 내용은 위원장을 단일 창구로 하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다.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들에 대한 취재를 거부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와 비교해 전혀 나아진 게 없다. 정 위원장은 “감독 선임에 있어 거수로 해서 외부의 압력에 의해 결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허울 뿐인 단언보다 더 확실한 건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고, 언론의 취재에 꺼림직한 게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갈수록 밀실로 숨는다면 ‘제2의 클린스만’이 언제나 나올 수 있다.

이대로라면 전력강화위원회 개편은 허례허식이었을 뿐이다. 선임 과정과 선임에 고려할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과가 나온 뒤에 모든 걸 발표한다는 건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감독 선임 후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우려를 만회할지도 미지수다. 현재까지 협회 차원에서 언급된 요소들로는 논리적으로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충분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모든 의혹이 해소될 가능성도 낮다. 구체적인 경과 보고 및 진행 과정에서 구체화된 고려 요소, 접촉한 후보들의 거절 사유와 최종적으로 해당 감독을 선임한 이유 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이는 불투명한 선임 프로세스와 양립할 수 없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서형권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전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서형권 기자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선임 당시 불투명한 감독 선임 프로세스와 이에 따른 우려를 해소시키지 못하는 기자회견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그 병폐를 제대로 보여주며 부임 1년도 안 돼 쫓겨났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외압을 제거했다는 명분 아래 지난해와 같은 행보를 이어가려 한다.

회의에 대한 스케치와 일체 취재를 막는 건 지난 13일 녹음돼 문제로 떠오른 이석재 축구협회 부회장의 발언에 대한 반응처럼 보인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정해성 신임 위원장과 국내 감독을 선임하자는 발언을 했는데, 진짜로 정 위원장이 임명되자 '다 알고 말한 것'이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해소하고 절차를 정상화하는 게 아니라, 회의 중 문제 발언이 있더라도 새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겠다는 식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보안을 강화하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이미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한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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