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시차에 적응하지 못했고, 제대로 컨디션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3일 정도면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분명 평소 내가 아니었다.”

2014년 9월 29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는 한국과 북한의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4강전이 열렸다. 이날 지소연은 풀타임 출장했지만 1골도 넣지 못했다. 한국은 1-2로 패했고, 지소연은 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대회 내내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성용 오빠와 (이)청용 오빠와 통화하면서 시차 적응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말했다.”

축구는 전 세계적인 스포츠다. 각 국 프로리그는 물론 대륙별 클럽 대항전, 클럽 월드컵,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 등이 세계 각지에서 열린다. 그만큼 선수들은 피곤하다. 해당 선수가 국가대표팀에라도 차출되면 피로는 배가 된다. 이동 거리가 늘어날수록 컨디션 관리가 어렵다. 장시간 비행을 마쳤다고 바로 정상 바이오리듬을 찾는 것도 아니다. 시차 적응으로 낮에 졸고 밤에 깨어있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축구 선수는 필연적으로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된다. 그러나 잦은 혹은 장시간의 비행은 선수로서의 생명을 단축한다. 박지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지성은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직후 유럽으로 날아갔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뛰며 A매치를 치른 것만 70번이었다. 훗날 박지성 아버지 박종성 씨는 아들의 은퇴를 앞두고 “장시간 비행이 잦아 무릎에 물이 차는 일이 빈번했다”고 했다. 박지성은 만 30세의 나이로 대표팀을 은퇴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인 정태석 스피크 재활의학과/퍼포먼스센터 원장은 “장시간 비행은 몸을 쓰는 선수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오랜 시간 축구대표팀의 의무팀장으로 지냈던 최주영 스포츠재활클리닉 원장은 2012년 발간한 저서 ‘300번의 A매치’에서 “2006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축구대표팀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마지막 훈련을 했다. 12시간이라는 길고 긴 비행 끝에 스코틀랜드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 탓인지 몸이 축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느끼고 있을 터였다”고 썼다.

정 원장은 장시간 비행으로 선수가 느낄 수 있는 피로감을 두 가지 원인으로 분류했다. 하나는 비행기를 타며 낮과 밤의 변화로 겪는 시차 적응 문제(Jet lag)고, 다른 하나는 비행척추피로증후군과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과 같은 컨디션 저하다. 비행‘할 수 밖에’ 없는 선수들이 제대로 된 경기력을 내기 위해 잡아야 하는 문제점이다.

# 시차 적응: 현지 시간을 고려해 미리 생체시계와 생활시계를 맞춰라!

시차증은 표준 시간대가 다른 장소 사이를 오가는 장거리 여행 시 몸에 발생하는 증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밤낮이 바뀌어 실제 인식하고 있는 시간과 현지 시간 사이의 부조화다. 이와 관련해 방상식 국군체육부대 체육과학연구관이 2000년 ‘한국체육학회지’에 쓴 ‘국내 및 외국 현지 시차 적응이 선수 컨디션 조절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 “신체는 24시간을 주기로 일정한 리듬을 갖게 되는데, 시차증이 체온, 수면, 심박 수, 신경전도 속도 등 여러 가지를 깨트린다”고 설명했다.

서현교 과학칼럼니스트는 2006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통해 발표한 ‘월드컵 시즌, 시차 적응 해결할 방법 없을까?’라는 기사에서 시차증 증상에 대해 분석했다. “대뇌 아래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마스터 신경세포’는 주기적으로 각각 다른 양의 분비물을 내보낸다. 이 신호를 받는 주변 신경세포들은 분비물이 많으면 아침으로, 분비물이 적으면 저녁으로 인식한다. 생체시계 신경세포들이 이런 교신으로 기상과 취침을 유도하는데, 시차가 나는 곳으로 이동을 하면 현지 시간에 맞추게 된다. 인체가 완벽하게 적응할 때까지 우리 몸은 체온, 심박 수, 호르몬 분비, 전해질 농도 등의 변화를 나타내며, 그 사이 무질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운동선수의 경우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판단력을 상실해 제 기량을 낼 수 없게 된다.

정 원장은 축구 선수들의 시차증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동하기 전 일조량을 조절하고 현지에서 멜라토닌(수면유도제) 또는 카페인을 복용해 생체시계를 생활시계와 동일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이동 일주일 전 현지에 맞춘다면 시차를 빠르게 줄일 수 있다. 물론 비행 중 수면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한국시간으로 낮에 출발해 현지시간으로 밤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럴 땐 비행기 안에서 독서, 음악 감상, 영화 시청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 비행 피로: 충분한 스트레칭과 컴프레션기어(Compressin gear) 착용

정 원장은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은 이동, 환경 변화, 낯선 공간에 따른 심리적 압박 등의 이유로 생긴다. 이는 시차 적응과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서울과 부산 사이에 시차는 없지만 피로함을 느낄 수 있다. 이동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행 시엔 여행 피로감이 더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일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고도 변화로 기압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 원장은 “신경통 환자들이 날씨에 따라 통증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까지 A매치 62경기를 치른 베테랑 미드필더 김두현은 "비즈니스 클래를 탄다고 해도 오랜 시간 비행하면 하체에 피가 쏠려 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착륙한 뒤엔 신발을 잘 신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장시간 비행은 부상 부위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정맥의 혈액 순환이 느려져 혈전을 만들 수 있다. 만약 혈전이 폐동맥을 막으면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남자 성인 대표팀의 경우 누워서 비행할 수 있는 비즈니스 티켓을 제공받지만,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나 연령별 대표팀 선수들은 보통 이코노미 좌석으로 이동하게 된다. 종아리 근육 통증이나 다리가 붓는 증상을 더 쉽게 느낄 수밖에 없다.

정맥혈이 잘 흐룰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는 스트레칭과 컴프레션기어 착용이 있다. 스트레칭은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 비행을 업무로 하는 항공 승무원들이 필라테스로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도 이런 효과 때문이다. 김두현도 "비행 중 틈틈이 스트레칭하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들어 아래로 쏠린 피를 순환시키면 붓기를 막을 수 있고, 다리저림 현상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컴프레션기어는 압박을 통해 피로와 부상을 방지하고 회복까지 돕는 기능성 의류다. 다리 정맥에는 피를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판막이 있어, 근육의 압박으로 피가 순환한다. 탄력 스타킹과 같은 컴프레션기어는 근육을 인위적으로 압박하고, 판막의 작용을 촉진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원리다.

유럽에선 컴프레션기어 제품이 전문적이면서 활발하게 사용된다.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1998 월드컵에서 프랑스 ‘BV스포르’ 사의 압박 스타킹을 사용해 우승까지 이뤘고, 당시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데엔 ‘마법 양말’의 역할도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호주 ‘스킨스’는 호주 농구 국가대표팀을 비롯해 1860 뮌헨, 입스위치타운, 셰필드유나이티드 등을 공식 후원하면서 기능의 효과를 알린 바 있다.

한국에선 이와 관련한 제품 개발이 한창이다. 고려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기업 ‘포티움’ 사는 2015년 유럽의 기능성 신소재 섬유 이마나(Emana)를 연구해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주고 피로 회복을 돕는 압박 타이즈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에게서 효과를 발휘했다. ‘포티움’ 관계자는 “운동선수는 물론 하지정맥류 환자도 착용할 수 있도록 식품의약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이미 인천아시안게임과 국내외 정상급 동계 종목의 선수들이 직접 사용하고 경기력 향상 효과를 봤다”고 했다. 기압 차로 신체에 불편함을 느낄 장시간 비행 선수들에게 ‘꿀 팁’이다.

글= 문슬기 기자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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