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감각에 대한 실체적 접근

[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6개월 이상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하는 것은 어렵다.” 울리 슈틸리케 국가 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 A매치를 치른 뒤 유럽에서 활동하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진 것에 대한 위기 의식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조편성 결과가 나온 뒤 경기 감각이 떨어진 선수들에게 뛸 수 있는 팀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고 구성할 수 있는 클럽 팀과 달리, 대표팀은 소집 훈련 일정과 경기 일정이 제한적이다. 선수의 경기 감각 유지를 대표팀 차원에서 만들어갈 수가 없다. 실전 경기를 뛰지 못하는 대표 선수에 대한 고민은 비단 슈틸리케 감독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16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는 신태용 올림픽 대표팀 감독, 2017 FIFA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안익수 청소년 대표팀 감독의 고민도 같은 지점에 있다.

독일 U-19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르고 돌아온 안 감독도 ‘풋볼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소년 단계에서 유럽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는 실전 경기 경험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U-19 대표팀의 경우 주말 마다 치르는 U-19 리그 경기 경험을 통해 기량 발전 및 경기 감각 지속성이 좋다는 것이다.  핵심은 경기 감각이다.

#훈련은 왜 실전을 극복할 수 없나

물론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팀 훈련을 소화하고, 연습경기도 정기적으로 치른다. 실전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큼의 운동량을 보충한다. 그러나 실전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경기 감각과 경기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박건하 국가대표팀 코치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들의 훈련으로 비유할 수 있다. 실제로 총도 쏘고 실전 같은 훈련을 하지만 전쟁과는 전혀 다르지 않겠나? 축구의 실전과 훈련도 그 정도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축구 선수로 실제 경기에 나서면 온 몸에 짜릿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모든 것을 쏟아내며 부딪힌다. 그러나 훈련이나 연습 경기는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실전과 같은 강도가 나오지 않는다. 경기 체력이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실전 경기를 안 뛴 선수가 경기에 나서면 꼭 쥐가 난다. 평소에 훈련을 열심히 했어도 그렇다. 실제 경기에서 쏟아내는 만큼 훈련에는 나오지 않는다.”

“전력을 쏟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실전에서 본능적인 움직임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경기 감각이 올라오면 몸이 공을 이쪽으로 돌려 넣거나, 몸은 저쪽으로 움직이고, 이동하는 플레이들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오래 안 뛰었어도 공을 잘 잡아 놓는 것은 할 수 있다. 경기 감각이 좋아도 패스 미스는 한다. 그런 기술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근육에 피가 돌고, 의식을 집중하고, 전력을 다해 뛰면서 몸이 올라오는 것이 있다. 이것은 훈련과 연습으로 채울 수 없다.”

경기 감각에 대해선 운동생리학적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다. 크로아티아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리그 10경기 이상을 풀타임으로 출전한 선수, 그렇지 못한 선수의 KPI(키 퍼포먼스 인덱스)를 비교했더니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 근력을 비롯해 익스플로시브 액션(Explosive Action)으로 불리는 폭발적인 동작, 스피드 지구력, 스프린트 횟수 등 피지컬적인 지표들이 떨어진다. 

대한축구협회 미래기획단 소속이자, 기술위원으로 활동 중인 스포츠의학 전문가 정태석 박사는 “학계에는 경기 체력이라는 말이 없다. 현장에서 말하는 경기 체력은 익스플로시브 액션, 스프린트와 점프, 태클 등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지속력과 회복력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역시 “아무리 고강도 훈련을 하더라도 실전 경기를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실전 경기를 하는 시즌 중에는 운동을 짧고 강하게 한다. 실전 경기를 뛰는 것 자체가 체력 훈련이 되는 상태다. 회복과 실전을 반복하는 패턴이다. 실전만큼 체력을 소진하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갖고 여러 동작을 할 수 있는 훈련은 하기가 쉽지 않다. 연습 경기를 모니터링해보면 최대 심박수의 80~85%에 달하는 운동 강도가 나온다. 실전은 92, 93%에 달한다.”

‘연습을 실전처럼 하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선수들의 정신 자세를 다그쳐서 되는 부분은 아니다. 안익수 U-20 대표팀 감독은 “임하는 자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승점이 오가는 경기와 결과에 의미가 없는 경기에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연습경기는 정예 멤버가 나오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은 선수와 나쁜 선수를 컨트롤하며 끌어올리는 플랜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건하 코치는 “연습경기를 할 때 내가 실전처럼 하고자 해도 상대가 느리게 움직이고, 동료가 느리게 움직이면 나 혼자 치열하게 쏟아낼 수 도 없다”고 했다. 정 박사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정신력 문제는 절대 아니다. 상대방이 우리를 대하는 면도 작용한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도 연습경기로 생각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서로 부딪힐 때 실전 느낌이 유발 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스파링 파트너를 만나야 실전 같다는 것은 그래서 나오는 얘기다.”

#경기 감각 문제,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연령별 대표팀의 경우에는 그래서 더 높은 나이대의 선수들과 경기를 통해 높은 운동 강도를 유도한다. U-19 대표팀은 연초 제주도 전지훈련 당시 프로 팀과 평가전을 가졌다. 지난 해 소집 당시에도 대학 팀이나 프로 축구 하부리그 팀, 내셔널리그 팀들과 경기를 했다. 

안 감독은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선수단의 격주 상시 소집을 원하고 있다. 한 단계 높은 단계 팀과 연습 경기로 실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의 감각을 높이기 위해서다. “프로 형들과 경기하면서 적응력이 생기고, 스스로 개선점을 가져가게 된다. 어느새 형들의 공수 전환 스피드, 판단력 등에 맞춰 발전한다. 그래서 그런 상위 팀과 경기가 필요하다.” 

정 박사는 “경기 활동 거리 연구를 보면 전력 수준 높은 팀이 낮은 팀에 비해 뛴 거리가 훨씬 적게 나온다. 열세의 팀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훨씬 높은 강도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안 감독은 지속적으로 경기에 나서지 않고 훈련과 연습 경기 만으로 컨디션을 유지하는 선수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경쟁 환경에서 동떨어진 상황에서 훈련을 하다 보면 이 정도면 내 몸이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모처럼 출전 기회가 와서 뛰어보면 준비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크로이티아의 연구 논문은 한 시즌 10경기 풀타임 출전을 기준으로 차이가 나타난다는 가설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는 피지컬 능력만 두고 평가한 것이다. 실제 경기에서는 기술적 부분과 전술적 부분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소속팀에서 꾸준히 뛰는 선수들을 선발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정답일까? 감독의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K리그챌린지에서는 클래식 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영입해 ‘부활’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올 시즌에는 강원FC의 최윤겸 감독이 공격수 심영성, 미드필더 허범산, 오승범 등 제주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재능 있는 선수들, 서울에서 영입해 풀백으로 전환시킨 정승용 등의 선수들로 좋은 경기력을 끌어내고 있다.

최 감독은 “클래식에서 온 선수들은 아무래도 골을 넣는 감각이나 움직임 등이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떨어진 경기 감각만 끌어올린다면 결과적으로는 본래 좋은 기량을 인정 받은 선수들의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리버풀의 레전드인 빌 섕클리 감독이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한 부분과 상통한다. 다만 앞서 설명했듯, 클래스를 경기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확실히 선수들은 경기를 뛰어야 좋아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날들이다. 아무리 실력 있어도 경기에 못 나가면 떨어진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은 맞는 얘기다. 예전에 재능이 있었다고 해도 한 두 경기만에 살아날 수는 없다. 꾸준히 경기에 출전해야 자기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 허범산, 심영성, 정승용 같은 선수들은 다른 팀에서 못 뛰다가 우리 팀에 온 선수들이다. 동계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도 실전에서 감각을 찾기 위해선 시간이 걸리더라.” 초반 두 경기를 패배로 시작한 강원은 이 선수들의 감각이 살아나면서 3연승을 거두며 반전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장의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실전에 뛰지 못하는 선수가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짧게는 4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꾸준히 경기에 나서야 몸이 완전히 올라올 수 있다고 본다. 정 박사는 “내 개인적 생각으로도 10경기는 적은 편이고, 12경기에서 15경기, 최소한 3개월 정도는 꾸준히 경기를 뛰어야 감각을 최고조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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