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왼쪽). 서형권 기자
이강인(왼쪽).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황선홍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강인을 살려줄 수 있는 새 전술을 고안해 왔다. 전술의 힘으로 골까지 터졌지만 경기 내내 통한 건 아니었다.

26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4차전에서 한국이 태국을 3-0으로 꺾었다. 한국은 3승 1무로 승점 10점을 따내며 조 선두를 유지했다. 6월 열리는 싱가포르전 및 중국전에서 승점 1점이라도 따내면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된다.

황 감독은 지난 21일 1-1 무승부에 그친 홈 3차전과 다른 포석을 준비해 왔다. 일부 선수만 바꾼 게 아니라 배치와 작동원리부터 변화를 줬다.

선수 배치가 완전히 4-3-3 혹은 4-1-4-1로 변했다는 게 큰 차이였다. 중원은 백승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고 좌중앙에 이재성, 우중앙에 황인범이 함께 포진한 3인 조합이었다. 공격진은 최전방의 조규성과 더불어 왼쪽 손흥민, 오른쪽 이강인이 호흡을 맞췄다.

4-3-3 대형의 장점 중 하나인 측면의 3인 호흡을 적극 활용했다. 오른쪽에서는 라이트백 김문환, 우중간 미드필더 황인범, 오른쪽 윙어 이강인이 한 유닛이었다. 이때 눈에 띈 건 황인범이 적극적으로 측면으로 이동했다는 점이었다. 황인범과 김문환이 번갈아 측면을 맡아줬기 때문에 이강인은 사이드라인 쪽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면서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윙플레이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뛸 때 위력이 살아나는 이강인이 안으로 들어가며 공을 잡고, 동료들이 상대 수비를 끌어줬기 때문에 견제를 덜 받게 만들어줬다.

왼쪽에서도 조합과 원리가 비슷했다. 이 조합은 지난 홈 경기에서도 잘 작동한 바 있다. 레프트백 김진수, 좌중간 미드필더 이재성, 왼쪽 윙어 손흥민이 한 유닛이었다. 이재성이 측면으로 빠지며 손흥민은 골문과 가깝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공격으로 홈 경기에서 골을 만들어낸 바 있다.

전반 19분 선제골이 포메이션의 장점을 살려 나왔다. 오른쪽에서 김문환, 황인범이 후방 패스 기점과 측면으로의 수비 유인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이강인은 우중간으로 진입해 공을 받을 수 있었다. 이강인이 제일 좋아하는 위치다. 또한 동료들이 상대 선수들을 측면으로 유인해줬기 때문에 이강인을 집중 견제하는 수비가 없었다. 이강인은 특기인 퍼스트 터치 후 곧바로 스루패스를 내줬고, 조규성이 이 공을 받아 문전으로 다시 연결하자 이재성이 침투하며 마무리했다. 이강인과 이재성 두 명의 위치 모두 전술상 한국이 가진 이점에서 비롯됐다.

후반 9분 추가골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이강인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오른쪽 동료들이 대신 측면을 맡아줬다. 이강인이 이번엔 더 깊숙하게 치고 올라가 손흥민에게 스루패스를 줬다. 손흥민이 공수 전환 상황에서 상대 수비 한 명을 앞에 놓고 일댕리 돌파를 하는 건 드문 기회다. 손흥민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황에서 양발잡이라는 장점을 살려 마무리했다.

한국의 가장 날카로운 창 손흥민과 이강인을 명목상 윙어지만 중앙 쪽으로 많이 좁혀 활용하기 위한 황 감독의 포석은 2골을 만들어내며 성공했다. 다만 득점상황에서는 황 감독의 전술이 위력을 발휘했지만 경기 내내 효과를 보진 못했다.

계속 황인범과 이재성 중 한 명만 아래로 내려가 빌드업을 돕고, 나머지 한 명은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올라가는 움직임을 반복했다. 그러나 손흥민, 이강인이 충분히 내려와서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 한국 빌드업은 숫자 부족에 시달렸다. 태국의 압박을 받을 때 잘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는 3차전과 마찬가지였다. 4-3-3 포메이션의 일반적인 장점 중에는 중앙 미드필더가 많기 때문에 중원 장악이 쉽다는 점이 있는데, 미드필더 3명이 너무 넓게 퍼져 있던 한국은 장악할 힘이 떨어졌다.

상대 롱 패스나 지공을 수비할 때 한국 수비대형이 4-4-2로 바뀌었다는 점은 특이했다. 네 명씩 두 줄을 형성하고 그 사이에서 수비형 미드필더가 추가로 자리를 잡는 4-1-4-1 대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 감독은 감독 경력 대부분 고집한 ‘포백 앞 미드필더 두 명’을 그대로 썼다. 한국은 수비할 때 보통 이재성이 조규성과 투톱인 것처럼 올라가고, 황인범이 백승호 옆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통해 4-4-2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전환은 한국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못하고, 장악력을 극대화하지 못한 원인이기도 했다.

이재성(오른쪽). 서형권 기자
이재성(오른쪽). 서형권 기자
황인범(남자 축구 대표팀). 서형권 기자
황인범(남자 축구 대표팀). 서형권 기자
김진수. 서형권 기자
김진수. 서형권 기자

 

4-3-3에서 4-4-2로 전환해 수비하려면 중앙에서만 위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측면의 손흥민, 이강인도 충분히 후퇴해 대형을 갖춰줘야 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대형을 따라가는 속도가 느렸다. 그래서 한국이 수비나 빌드업할 때 후방 대형은 4-4 두줄이 아니라 4-2 두줄에 불과했고, 태국이 더 적극적으로 덤벼들면 수적 열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앞선 3차전보다 나았던 점은,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상대가 거칠게 덤벼들면 당황햇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백승호를 빼고 더 수비적인 박진섭을 교체 투입했다. 수비에 중점을 둔 교체였는데 의도가 명확한 만큼 효과도 분명했다. 후방을 안정화한 한국은 이후 2골을 더 만들어내면서 급해진 태국의 배후를 뚫고 대승을 완성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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