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한국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황선홍 한국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A대표팀 감독이 잠깐 공석이라 연령별 대표팀 감독이 대신 맡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가 되는 타이밍이 딱 하나 있다.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A대표팀 임시감독으로 세운 지금이 바로 그 나쁜 타이밍이다.

27일 대한축구협회의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은 3차 위원회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을 가졌다. 3월 21일, 26일 태국과 갖는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은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지휘한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아시안컵 이후 경질한 축구협회는 당장 정식감독을 뽑기보다 임시 감독으로 시간을 버는 편을 택했다.

연령별 대표팀과 일정만 겹치지 않는다면, A대표팀에 잠깐 다녀오는 건 세계적으로도 흔한 일이다. 지난해 한국과 국가대표 평가전을 치렀던 우루과이도 카타르 월드컵 후 감독이 공석이라 마르셀로 브롤리 U20 감독을 대행으로 삼은 상태였다. 축구협회는 한국에도 허정무 감독, 핌 베어벰 감독의 겸직 사례가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황 감독이 지휘해야 할 더 중요한 경기가 없을 때의 이야기다. 황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을 치러야 하는데, 딱 그 준비기간에 A대표팀으로 불려가게 됐다.

황 감독이 A대표팀을 지휘해야 하는 3월 21일과 26일(모두 상대는 태국) 언저리에 올림픽대표팀도 경기 일정이 있다. 올림픽대표팀은 3월 18일부터 26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서아시아축구협회 U23 챔피언십에 초청됐다.

올림픽대표팀 일정은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일종의 중동 전지훈련을 통해, 올림픽 예선 전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추고 멤버를 가려뽑을 수 있는 자리다. 4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이 올림픽 남자축구 예선을 겸하는데 3위 이내에 들어야 본선에 직행할 수 있다. 한국은 일본, 중국, 아랍에미리트(UAE)와 ‘죽음의 조’에 속해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8강행도 장담하기 힘들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가장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황 감독을 A대표팀으로 빼간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우디아라비아 일정은 황 감독 없이 기존 올림픽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지휘하게 된다.

눈앞의 일정만 비교하면, 올림픽대표팀 경기가 A대표팀 경기보다 더 어렵고 중요성도 크다. A대표팀의 월드컵 2차 예선은 나쁜 성적에 그치더라도 추후 복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2승을 거둔 상태인데다 태국전 이후에도 만회할 기회가 2경기 더 있다. 한국은 최근 두 차례 2차 예선을 통틀어 13승 1무, 29득점 1실점을 기록했다. 그 정도로 난이도가 낮은 단계다.

황선홍 감독. 서형권 기자
황선홍 감독. 서형권 기자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 서형권 기자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 서형권 기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서형권 기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서형권 기자

반면 올림픽 예선은 탈락하면 그대로 끝이다. 한국 축구에서 올림픽 남자축구 본선이 갖는 비중을 생각해볼 때, 예선탈락이 현실화된다면 ‘참사’ 수준이다. 한국은 올림픽에 U23팀이 나가기 시작한 1992년 이래 8차례 대회에서 모두 예선을 통과한 바 있다. 상대가 약체인 경기를 의미하는 과거의 참사들에 비해 이번 참사는 원래 일어날 확률이 꽤 높았고, 축구협회가 직접 그 확률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황 감독은 여론이나 언론에서 후보로 고려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축구협회에서 그 이름이 나왔지만 올림픽대표팀 일정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는 분석이 주류였다. 그런데 K리그 감독 빼가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갑자기 옵션은 황 감독 뿐이었다는 듯 급선회했다. 3월 2경기 감독대행만 놓고 본다면, 차라리 K리그 감독에게 겸직을 시키는 게 황 감독보다는 낫다.

이번 임시감독 선발은 황 감독에게 두 마리 토끼를 쫓으라고 명하는 도박이다. 그런데 실패할 경우 판돈을 잃는 도박보다 더 좋은 경우가 많았는데, 축구협회는 얻을 것 없는 판에 뛰어들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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