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고등 왕중왕전 우승 직후 김민재와 오창식 당시 수원공고 코치. 오창식 제공
2014년 고등 왕중왕전 우승 직후 김민재와 오창식 당시 수원공고 코치. 오창식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김민재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증언은 예상 밖이었다. “민재는 별로 빠른 애가 아니었어요. 왜소했거든요.”

김민재의 몸이 왜소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폴리 동료 알레산드로 차놀리가 “몸만 좋은 줄 알았는데 전술 소화 능력도 좋더라”라고 할 정도로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이미 인정받은 신체가 김민재의 첫인상이다. 그런데 그 몸을 타고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민재가 급성장한 시기에 대해 생생하게 이야기해준 증인은 오창식 전 수원공고 코치다. 오 코치는 김민재를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에 걸쳐 2년 동안 지도했다. 때론 멘토처럼, 때론 한 명의 팬처럼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수원공고 시절 김민재를 지도한 이학종 감독(현 이천제일고)과 오 코치 모두 과거에도 언론에 등장한 바 있다. ‘풋볼리스트’는 빅 리그 데뷔를 눈앞에 둔 김민재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오 코치에게 들어보기로 했다.

▲ 지금의 스피드와 어깨는 훈련의 결과다

현역 시절 센터백이었던 오 코치는 선수 은퇴 후 모교인 수원공고의 코치로 합류했다. 이때 2학년으로 올라온 김민재와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별 것 없었다.

“민재의 실력이 다른 친구들보다 그다지 높진 않았어요. 당시 수원공고 친구들도 다 잘하던 친구들이라 2학년 초반에는 차이가 별로 없었죠. 처음엔 몸이 왜소했어요. 어깨가 유독 좁고, 스피드가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대신 성실함, 영리함, 적극성 같은 덕목을 갖추고 있었죠. 엄청 열심히 하는 걸로 눈에 띄는 친구였어요.”

김민재의 신체능력이 평균 이하였다는 건 뜻밖의 이야기다. 오 코치는 ‘괴물’ 김민재의 모습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 만든 거라고 말했다. “본인의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언덕을 많이 뛰면서 하체 힘이 붙었어요. 그리고 잔발 훈련도 많이 했고. 결국 스피드가 생기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도 이런 어깨는 아니었는데 본인이 그 뒤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죠. 지금은 대표팀에서 민재가 ‘형 저 원래 느렸어요’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는 선수가 없다고 들었어요.”

물론 타고난 신체능력도 있었지만 그건 근력이 아니었다. 김민재는 원래 상황판단과 반응속도가 빨랐다. 달리기는 하체 근력에서 나오는 거라 어쩔 수 없었지만 스타트는 좋은 편이었다. “힘이 없던 때는 치고 나가지 못했죠. 힘만 붙으면 굉장히 빨라질 수 있는 자질을 원래 갖고 있었던 거예요.”

김민재의 타고난 지능은 인터뷰 내내 여러 번 강조됐다. “유소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했어요. 김민재가 뛰는 걸 한 번 보라고. 저 선수가 공을 차단하는 건 빠르고 힘이 좋아서가 아니고,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서 엄청 부지런하게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이 민재에게 온다. 민재가 커트하러 가는 게 아니라고요. 민재는 더 피지컬 좋은 선수와 붙을 때도 볼이 올 것 같은 공간에 미리 가는 능력이 있죠.”

▲ 성공에 대한 의지와 확신으로 가득한 일화들

“민재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할 때면 ‘어느 누구보다 간절했다’고 말합니다. 간절함이 민재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훈련 태도부터 달랐어요. ‘선생님 저는 꼭 성공해서 효도하는 게 꿈입니다’라는 말을 그 어린 나이에도 항상 했어요. 민재가 훈련 후 동료들이 열심히 안 뛴다며 불만을 품고 절 찾아온 적도 있어요. 사실 다른 애들도 열심히 하는데 민재의 기준이 너무 높았던 거죠.”

김민재는 맨 앞자리를 좋아했다. 스스로 ‘농땡이’가 불가능한 곳에 밀어 넣기 위해서였다. 새벽마다 ‘볼 감각 훈련’을 했는데 어두컴컴한 시간이기 때문에 구석에서 하면 코치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럴 때 김민재는 코치 바로 앞을 선호했다.

“3학년 연휴 직전에는 친구들과 놀다가 숙소에 들어올 시간을 어긴 적이 있었어요. 사실 다음날 훈련도 없어서 놀아도 되는 날이었지만 혼나는 건 어쩔 수 없었죠. 그런데 민재가 집에 내려가고 나서 어머님께 전화가 오더라고요. 민재가 축구를 그만둔다는 거예요. 듣자하니 책임감과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본인에게 크게 실망한 것 같았어요. 저는 그저 알았다고만 말하고, 짐 챙기러 올라오라고 했죠. 그리고 숙소에 들어왔을 때 불러다가 잘 타일러서 붙잡았어요. 사실 3학년 하반기면 축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을 때라서 그만두면 큰일 날 시기였죠.”

▲ 전북 입단 전까지 김민재가 주목 받지 않은 이유

오 코치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요즘 김민재는 타고난 천재처럼 묘사되지만 그런 선수치고는 청소년 대표 경력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김민재는 18세 때 U20 대표팀에서 2경기를 소화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세 때는 U23 대표팀에 뽑혔지만 역시 2경기가 전부였다. 청소년 대표 단 4경기 이후 프로에 데뷔했는데, 전북현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곧장 A대표로 소집됐다. U23 대표팀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건 A대표로 자리 잡은 뒤였다.

“민재가 연령별 대표팀에 잘 뽑히지 못한 건 U17 대표팀에 소집됐을 때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땐 아직 급성장하기 전이라서 정식 경기조차 소화하지 못했어요. 그 뒤로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계속 외면 받았지만 사실은 우리 팀에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죠. 저는 3학년(18세) 때 민재가 U19 대표팀의 모든 수비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어요.”

10대 때 이미 유럽으로 진출할 기회가 있었다. 김민재의 기량이 많이 향상됐다고 느꼈던 3학년 초, 오 코치가 유럽 스카우트를 초청했다. 그런데 그 날 김민재의 경기력이 최악이었다. “와, 어떻게 저 정도로 못하지 싶었어요. 스카우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하더니 다른 선수를 뽑아갔어요. 체코 팀에 갔던 그 선수는 결국 국내 진학을 택했죠. 그 친구가 유럽에 다녀온 건 다 민재 덕분이라는 농담을 던지곤 했어요.”

2017년 인터뷰에 응한 김민재(당시 전북현대). 김완주 기자
2017년 인터뷰에 응한 김민재(당시 전북현대). 김완주 기자

▲ 난관이 생기면 오히려 강해지는 정신력

유소년 시절의 우여곡절 중에서도 오 코치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건 3학년 말의 일이다. 2014년 10월 한 살 많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대표팀 선발 과정을 밟았지만, 최종 명단에 들지 못했다. 김민재와 동갑인 포항제철고의 황희찬(현 울버햄턴)과 서울오산고의 황기욱(현 안양)이 1년 월반했고, 바르셀로나 유스였던 백승호는 2년 월반해 본선에 합류한 대회다. 내심 선발을 자신했던 김민재에게는 충격적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떨어질 수가 없는 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민재의 반응이었죠. 저한테 ‘뭐 괜찮아요. 왕중왕전 준비나 열심히 하면 되죠’라고 하더라고요. 선발전 직후가 고등리그 왕중왕전이었거든요. 민재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팀을 이끌면서 프로 산하 팀인 대건고(인천), 광양제철고(전남), 현대고(울산), 결승에서는 포철고(포항)를 꺾고 우승했어요.”

김민재는 우승한 뒤에야 오 코치에게 “대표팀에서 떨어져서 엄청나게 화가 났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고 털어놓았다. 오 코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얘는 돌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민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겨내는 걸 보여주겠다는 동기부여로 전환할 수 있는 친구에요. 해외진출 여부가 한창 화제를 모을 때도 그랬어요. 단번에 유럽 명문팀이 거론되던 기사들이 있는데 ‘너 따위가 그 팀에 어떻게 가냐’는 댓글이 잔뜩 달렸거든요. 그때도 민재가 그러더라고요. ‘쌤,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저 댓글을 읽으니까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어요.’ 그 말을 듣고 고 3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죠.”

▲ 라모스에 근접한 스타일

왕중왕전 우승은 오 코치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오 코치 역시 수원공고를 2002년 같은 대회(당시 고교선수권) 우승으로 이끌고 MVP와 수비상을 석권한 바 있는데, 12년 만에 돌아온 모교에서 김민재를 수비상 수상자로 길러낸 셈이다. 오 코치는 스스로 지능은 좋았지만 신체능력이 따르지 않아 롱런하지 못했다고 자평한다. 처음 만났을 때, 김민재는 자신과 겹쳐 보이는 선수였다. 그리고 오 코치는 김민재를 ‘제2의 오창식’이 아니라 피지컬까지 갖춘 선수로 성장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다.

“제가 수비 파트를 맡았는데, 특히 중앙 수비수에 대해 엄격했어요. 훈련 중 실수가 나오면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훈련을 계속 늘리곤 했고요. 오죽하면 민재가 2018년에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쌤, 왜 저한테는 칭찬을 한 번도 안 해줬어요?’라고 묻더라고요. 수비는 완벽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데, 완벽한 수비라는 건 불가능하니까 칭찬을 못 하죠. 사실 잠재력이 다 드러난 선수들에겐 칭찬을 많이 해 줬어요. 반면 민재라는 친구는 빠른 판단력과 계속 성장하고 있는 피지컬이 보였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야 했죠.”

오 코치는 김민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세르히오 라모스를 연상하기 시작했다. 신체능력을 과감하게 쓸 줄 알면서 매우 영리한 수비수라는 뜻이었다. 김민재와 2022년 월드컵 멤버 발탁을 노려보자고 다짐했는데, 사실 성장속도는 2018년에도 선발될 정도로 빨랐으나 부상으로 러시아 대회를 놓치면서 결국 올해 첫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이젠 제가 조언할 게 없어서 피드백은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발전할 여지가 남았다고 생각해요. 큰 키에 점프력까지 대단한 걸 감안하면 헤딩 능력이 아쉽거든요. 신체능력을 헤딩 타점에 활용할 줄 안다면 진짜 라모스가 되는 거죠.”

김민재(나폴리). 게티이미지코리아
김민재(나폴리). 게티이미지코리아

※ 이 인터뷰의 일부는 이탈리아 일간지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에도 제공됩니다.

사진= 오창식 제공,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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