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범석(포항스틸러스). 풋볼리스트
오범석(포항스틸러스). 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포항] 허인회 기자= 오범석(포항스틸러스)이 프로 데뷔 19년 만에 축구화를 벗는다. 올해 최종전이자 마지막 홈경기에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는 은퇴에 앞서 덤덤하게 현역 시절을 되돌아봤다.

오는 4일 FC서울전은 오범석의 마지막 경기다. 앞서 본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 결정을 알렸고 홈팬들이 모인 곳에서 은퇴식이 열릴 예정이다.

길었다. 2003년 포항에서 데뷔해 요코하마FC(일본), 크릴리아소베토프사마라(러시아), 울산현대, 수원삼성, 항저우그린타운, 강원FC를 거쳐 다시 포항으로 돌아왔다. 정조국, 이호, 백지훈, 김진규, 황진성, 박원재 등 37세 동갑내기 친구들은 이미 은퇴했다. 오범석은 2일 ‘풋볼리스트’와 인터뷰를 통해 “친구들은 거의 다 은퇴했다. 나도 따라간다. 앞으로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점도 있네”라며 웃어보였다.

오범석은 아쉬웠던 순간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고 돌아봤다.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가 팀 사정으로 인해 도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에 대패한 뒤 심각한 비난을 받은 일, 프로 통산 400경기에서 딱 3경기 모자란 채 은퇴하게 된 상황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도 “다 내 운명이겠거니 한다”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오범석 인터뷰 전문

- 길고도 긴 선수 생활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겠다고 선언했다. 인생의 마지막 한 경기를 앞둔 심정이 궁금하다.

“솔직히 아무 생각 없다. 은퇴는 누구나 하는 거다. 단지 조금 더 빨리 하냐, 늦게 하냐 정도의 차이 아니겠나. 나는 그냥 늦게 하는 것뿐이다. 언제부터였지… 나도 은퇴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청 큰 심경의 변화는 없고 시원섭섭한 정도다. 더 이상 운동장에서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과 땀 흘릴 수 없다는 게 아쉬운 것 같다. 승부의 세계에 선수로서 남을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 무려 19년 동안 현역으로 뛰었다. 남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똑같을 것 같다.

“맞다. 당연하다. 못했던 경기는 다 아쉬웠다. 우리는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매경기가 그랬다. (특별히 생각나는 순간이 있나) 없다. 전부 내가 걸어온 길이었기 때문에 다 똑같다. (동료들과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 동료들은 수고했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가족들은 최근 5년 정도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내심 좋아하는 것 같다. 더 이상 선수가 아닌 건 서운해하는 것 같고. 반반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다. 3학년 때 ‘6학년이 될 때까지 뛰어달라’고 하길래 약속했다. 지켜줘서 굉장히 뿌듯하다.”

- 딱 3경기만 더 채웠으면 프로 통산 400경기를 달성할 수 있었다. 1년만 더 뛰면 20년 경력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400경기를 못 채운 건 조금 아쉽더라. 이것도 내 운명 아니겠나. 좀 더 잘했으면 이미 달성했을 텐데. 부상도 있었고, 실력도 모자랐기에 내가 부족해서 400경기를 못 채웠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약간 부족했다. 아내도, 아들도 400경기 채우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더라. ‘6개월만 더해라’ ‘1개월만 더해라’고 하더라. 안 한다고 했다. (조원희 사례처럼 아쉬움에 경기장으로 복귀할 일은 없나) 다시 돌아올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이제 쉴 때다.”

- 은퇴하는 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준우승도 대단하지만 아쉬움도 남았을 것 같다.

“19년 동안 프로 생활하며 아챔 결승전이 처음이다. 당연히 아쉬웠다. 상대가 정말 강하더라. 그리고 첫 실점이 너무 빨라 위축된 게 느껴졌다. 또한 모든 불리한 조건을 안고 갔다. 사실상 알힐랄의 홈구장이었다. 우린 선수들이 많이 떠났고, (이)승모와 (강)현무도 함께 가지 못했다. 최악이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잘한 시즌이 아닌가. 마지막에 우승을 한번 해보지 못한 건 다시 생각해도 아쉽긴 하다.”

- 이제 은퇴하니 용기 내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만나 대패한 뒤 질타가 쏟아졌다. 강상우는 한 라이브방송에서 ‘범석이 형이 메시 얘기만 하면 화낸다’고 하더라.

“사실 주변에서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이제는 그냥 별 얘기 안 하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욕을 하실 수도 있다. 이제는 덤덤하게 넘긴다. 운명 아니겠나. (아직도 까부는 후배들이 있나) 많다. 그럼 그때 진짜 욕 많이 먹었다고 말해준다.”

- 포항에서 데뷔했고, 포항에서 은퇴한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하게 됐는데 특별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서 더 영광스러운 은퇴식이 될 것 같다. 데뷔했던 팀에서 은퇴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내가 설 자리 자체가 굉장히 영광스럽다. 다만 예전에 이적할 때 문제가 있었기에 다시 돌아왔을 때 팬분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열심히 뛰다 보니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더라. 말이 아닌 실력으로 응원을 받고 싶었다. 인터뷰가 아닌 운동장에서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좋은 은퇴식을 치르고 싶어 인스타그램에도 글을 썼다. 날 아껴주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팬분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 지난 19년을 돌아봤을 때 생각나는 아쉬운 점이 더 있나.

“러시아에서 허무하게 돌아왔을 때. 팀 사정으로 월급이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복귀했다. 솔직히 거기서 축구를 더 해보고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던게 아쉬웠다.”

- 홈팬들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한 번에 몰려올 것 같다. 눈물을 쏟을 것 같나?

“지금은 안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가면 그럴 것 같다. 형들 이야기 들어보니 울컥한다고 하더라. 나 역시도 그러지 않을까.”

- 현역 오범석을 돌아보자.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머리가 좋았던 선수, 영리하게 축구를 했던 선수로 기억하셨으면 한다. 나는 재능이 별로 없었던 노력파였다.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 재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운동량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다. 팬들은 어떻게 판단하실지 궁금하다. (은퇴 후 계획이 있나) 아직 특별히 없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후에 결정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까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신 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축구선수로서 사랑을 받을 때도, 욕을 먹을 때도 있었다. 전부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응원해주신 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번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 거의 다 은퇴했다. 정조국, 이호, 백지훈, 김진규, 황진성, 박원재까지. 이제 선수가 아니기에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편하게 보자.”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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