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민심은 솔직하게 반응한다.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보여준 결과, 내용은 김학범호를 향한 시선을 불신 쪽으로 한발 옮겨 놨다. K리그의 희생이 요구된 기나긴 소집 훈련, 와일드카드(김민재) 선발에서의 미스 등 대회 시작 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들이 생각보다 조용히 넘어간 건 지난 3년 간 성과로 쌓은 신뢰의 자산 덕분이었다. 

침묵에는 3년 전 기억에 대한 반성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언론, 일부 정치인까지 나서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향하는 김학범호를 공격했다. 지금은 성공한 유럽파이자 A대표팀의 1번 스트라이커가 된 황의조의 와일드카드 발탁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의 의리축구 프레임에 맞먹는 인맥축구로 의심받았다. 이번 올림픽에서 황의조의 재발탁은 조롱이 아닌 진짜 의리로 평가받는다.

지나친 의심과 비난, 조롱은 대표팀을 흔들지만 적절한 견제, 비판이 작동하지 않으면 방관이 된다. 맹신이 대표팀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던 슈틸리케호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3년 동안 두 대회(아시안게임, U-23 챔피언십)에서의 성과로 증명된 김학범 감독의 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으로 오는 과정에서 그 능력을 맹신함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 경기에서 패배한 원인은 실점 장면의 불운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경기 컨셉에서 김학범 감독의 보수적인 운영이 기저에 있다. 

뉴질랜드의 헤이 대니 감독은 한국에 대한 대응을 훌륭히 했다. 윈스턴 리드를 중심으로 황의조로 향하는 연결을 차단했고, 2명의 윙백을 내려 이강인, 권창훈이 공략하려는 하프 스페이스의 공간을 지웠다. 측면에서 파괴가 이뤄지며 중앙을 흔들어야 했지만 엄원상 혼자서는 그 역할을 다 해주지 못했다. 이 패턴이 후반 중반까지 이어졌고, 뉴질랜드는 이날 온 유일한 찬스에서 크리스 우드의 골이 터졌다. 

첫 경기의 중요성은 김학범 감독도 인지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거나, 가볍게 봤을 리 없다. 김학범 감독은 경기 전 감독과 선수 다수가 연령별 대표팀을 함께 올라오며 만든 뉴질랜드 수비 조직력의 완성도를 경계했고, 그것은 실제 경기에서 드러났다. 

 

관건은 우리의 대응이었다. 출발은 김학범 감독의 플랜A인 4-2-3-1로 갈 수 있지만, 상대의 수비적인 전략에 대한 반응이 너무 늦었다. 공격이 풀리지 않자 김학범 감독의 선택은 3명의 2선 라인을 통째로 바꾸는 것(권창훈, 이강인, 엄원상->송민규, 이동경, 이동준)이었지만 공격하는 한국이나, 수비하는 뉴질랜드나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는 역시 3선 미드필더 숫자를 과감히 줄이고 중앙 쪽에 공격수가 들어가 황의조에 대한 고립을 풀어야 했다. 1차적으로 김학범 감독은 송민규가 왼쪽에서 중앙으로 더 움직이게 하며 방법을 찾았지만 뉴질랜드의 수비는 변함없이 견고했다. 2차적인 변화는 후반 42분 정태욱의 전진 배치였다. 오세훈, 조규성을 공격진에서 일찌감치 뺀 만큼 높이를 통한 파괴가 필요할 때는 정태욱이 나오는 시나리오였지만 타이밍도 늦었고, 위력도 약했다. 

정태욱의 전진 배치는 이번 올림픽에 대한 김학범 감독의 플랜에 실책이 있음을 드러낸 장면이다. 만 19세까지 정태욱은 소속팀(아주대)이나 연령별 대표팀에서 수비수를 보다가 전방으로 전진해 공격수를 소화했지만 무려 4년 전 얘기다. 전문 수비수를 194cm라는 신장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전방에 세우는 건 1차전부터 볼만한 장면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 대표팀이 선발할 수 있었던 공격 자원에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을 뽑지 않은 건 김학범 감독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김학범호의 전문 스트라이커는 황의조 1명이다. 이동준, 송민규가 소속팀에서 펄스나인(제로톱)을 소화한 만큼 그 옵션도 가동할 수 있지만, 높이를 책임질 선수가 너무 없었다. 1차전에 대한 결과론이지만, 왼발잡이 2선 중앙 자원은 이강인, 권창훈, 이동경 3명으로 과포화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우려는 너무 이른 시점에 현실이 됐다. 김학범 감독이 2차 소집도 아닌 1차 소집 후에 오세훈과 조규성을 일찌감치 제외시킨 것에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토너먼트에 들어가서 전력상 우위인 팀들을 상대할 때의 전술적 이점, 속도와 연계 쪽에 초점을 맞춘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림픽에 들어와 펼쳐진 현실은 조별리그 상대들이 한국전에서 매우 수비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이다. 루마니아, 온두라스도 뉴질랜드와 비슷한 전략으로 나올 것이다. 황의조를 고립시키고, 2선에서 침투하는 선수들이 기술을 발휘할 공간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그것을 기량의 우위로 타개하지 못하면 해결책은 세트피스 정도로 급격히 좁아진다.

1차전 패배로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조별리그는 2경기가 남았고, 과거 각급 대표팀 중 1차전 패배를 극복하고 조별리그를 통과해서 토너먼트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례도 있다. 김학범 감독 본인도 2018년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일격을 맞았지만 극복한 경험을 지녔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김학범호의 입장이다. 1차전 결과를 놓치며 남은 조별리그 2경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김학범호의 생각 모두 바꿔야 할 타이밍이다. 한번 더 넘어지면 그때는 끝이다. 이제부터는 저 멀리 메달이 아니라 눈 앞의 돌뿌리부터 살피면서 매 경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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