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유지선 기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FC서울이 최용수 감독의 깜짝 기용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24라운드에서 서울이 대구FC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뒀다. 두 팀은 최근 나란히 2연패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대구에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서울이 또 승리를 챙기고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서울은 대구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뒷문 단속이 시급했다. 7월에 치른 5경기에서 무려 13실점을 기록 중이었기 때문이다. 센터백의 중심을 잡아줬던 김원균이 지난 5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후 실점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구전을 앞두고 긴장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이날 서울은 결정력이 뛰어난 세징야, 힘과 높이를 겸비한 박기동을 동시에 견제해야 했다. 최용수 감독이 꺼내든 묘수는 정현철의 센터백 기용이었다. 최 감독은 이날 미드필더 정현철을 센터백 가운데 자리에 세우는 모험을 했다. 불안했던 수비에 변화를 주는 동시에, 박기동의 높이를 경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최 감독은 “홀딩 미드필더에 주로 섰던 정현철을 센터백으로 내렸다. 박기동의 제공권이 상당히 위협적인데, 정현철도 제공권에서는 쉽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정)현철이가 그 자리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면, 본인 땅이 되는 것”이라며 선택의 옳고 그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선수의 몫이라고 했다.

센터백으로 깜짝 기용된 정현철은 우려와 달리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수비 라인을 안정적으로 조율했고, 비어있는 공간도 곧잘 메웠다. 전반 24분 프리킥을 내주긴 했지만 세징야를 향하는 패스를 태클로 가로막는 등 위험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최 감독도 경기 종료 후 “기대 이상이었다”고 흡족해하면서 “한 번의 실수가 치명타가 될 수 있는데도 차분하게 리딩 역할을 잘해줬다. 오늘 새로운 도박을 한 것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며 합격점을 줬다.

이번만이 아니다. 최 감독은 올 시즌 수비수 박동진을 공격수로 깜짝 기용하기도 했다. 박동진은 “공격수로 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감독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며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박동진의 포지션 변경은 올 시즌 서울의 히트상품 중 하나가 됐다. 벌써 6골을 터뜨리면서 페시치(9골)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를 기록했다. 박동진은 이날 경기에서도 전반 12분 조영욱의 부상으로 몸을 풀지도 못한 채 교체 투입됐지만, 보란 듯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서울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단 한명도 영입하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팬들은 ‘0입’이라고 말하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기존 살림에 나름대로의 변화를 꾀하면서 위기를 타개해나가고 있다. 흩어져있는 퍼즐 조각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숱한 고민을 해야 하지만, 퍼즐이 딱 맞춰졌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도 상당하다.

최 감독은 지난주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 코치 자격으로 함께해, K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지도하고 돌아왔다. K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대거 보유한 팀들이 내심 부럽긴 하지만, 지금처럼 변화를 통해 팀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도 충분히 만족스럽단 생각이다. 

“K리그 올스타를 모아놓으니 좋더라. 다양한 전술이 가능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난 포기도 빠르다. 현실은 미생들을 데리고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뒤도 안보고 가겠지만, 난 실험 정신이 있어 지금은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그래서 올 시즌이 재밌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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