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효 광주FC 감독. 서형권 기자
이정효 광주FC 감독.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남해] 김정용 기자= “아뇨. 싫어하는데요.”

이정효 광주FC 감독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확실하다. 27일 광주가 아닌 경상남도 남해에서 만나 ‘전지훈련은 원해서 오신 것 맞냐’고 물었더니 대뜸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 감독은 수십 번 이야기했듯 광주의 훈련시설에 대한 불만이 많다.

시즌 중 휴식기가 주어지면 전지훈련을 선호하는 감독들도 있다. 축구환경을 바꾸면서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 감독은 마음가짐보다는 전술에 몰두하는 감독이다. 스스로 인정했듯 한국에서는 전례 없는 유형이다. 그에게 장소는 중요치 않다. 멀쩡한 잔디만 있다면 이동시간을 최소화해 훈련과 미팅에 쏟아 부어야 한다. 전지훈련을 와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부루퉁한 채 인터뷰는 시작됐다.

고작 3번째 시즌을 맞았지만, 이 감독은 K리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전술가 중 한 명이다. 전술가를 세부적으로 분류해보면, 기존에는 유럽축구를 한 발 늦게 들여오거나 자신만의 전술철학을 자가발전 시킨 감독들이 있었다. 유럽에서도 최신형인 전술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한국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건 이 감독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전술에 대한 이야기는 적었다. 날카로운 입담만으로도 인터뷰가 꽉 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감독 스스로 전술 이야기를 꺼리는 면도 있다. 일단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영업비밀’을 술술 불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감독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의 축구 자체를 소재로 하되, 현재보다 과거와 미래를 자주 화두에 올렸다. 대화 순서는 필요에 따라 재구성했다.

▲ 자존감이 떨어진 지금, 대표팀 간 정호연이 큰 힘을 줬다

마침 전술적인 고민이 깊어진 시점에 인터뷰가 진행됐다. 광주는 K리그 개막과 동시에 2연승을 달리며 선두에 올랐다. 지난해 이 감독을 가장 애먹이고 팀을 옮긴 김기동 FC서울 감독에게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당시 선수들은 “이대로 K리그 최다연승 기록을 경신하는 것 아니냐”(이민기)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박태하 감독의 포항스틸러스가 단단한 수비 후 빠른 정재희의 역습으로 대응하자 첫 패배를 맛봤다. 이 감독은 자존감이 조금 떨어졌다고 했다.

Q 가벼운 질문부터 하면, 어제 저녁 A매치(대 태국, 3-0 승) 보셨습니까?

A 다 봤습니다. 대표팀에 보낸 정호연 선수 때문에 봤습니다. 호연이는 잘했던 것 같아요. 기존 대표팀에 없던 밸런스, 포지셔닝을 확실히 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김민재 선수가 올라갔을 때 내려가서 그 공간을 커버하는 것. 그 다음에 상대가 내려갔을 때 어느 위치에서 공을 받아야 하는지. 그런 모습이 좋았어요.

Q 정식 감독이 누가 되든 계속 뽑힐 것 같던가요?

A 네. 확실하게 경쟁력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올해 대전하나시티즌으로 간 이순민도 그렇고, 대표팀 가는 제자가 늘어나면 보람이 있겠죠?

A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죠. 선수들을 지도할 때 성장의 속도라는 게 있어요. 빠른 선수가 있고 느린 선수가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도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는지, 선수 능력에 맞춰야 되는지, 괴리감이 들기도 하거든요. 자존감 떨어지고요. 우리 이순민, 정호연 선수가 성장해서 나라를 위해 뛰고 광주FC를 알리는 계기가 오면 다시 힘이 나죠. 내가 잘 하고 있구나. 내가 가는 방향이 맞구나.

Q 오늘 인터뷰는 전술 질문을 많이 해보려 합니다.

A 전술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저희가 준비한 걸 미리 이야기하는 면이 있는데 상대가 알고 대처하는 것 같아서요. 저희가 다시 개선하고 발전시키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상대가 이렇게 대처하면 우리가 또 스텝업해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숙제를 주거든요. 그걸 선수들이 힘들어해요. 너무 많은 정보를 준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예전에는 상황마다 3가지를 줬다면 지금은 7~10가지를 주니까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떨 때는 저 때문에 성장이 늦는 건가?

Q 과부하를 줘서요?

A 네. 그런 생각도 많이 들어요. 어제도 상당히 많이…. 네. 어제 훈련에서도 많이 들었어요. 여기서 중앙대와 연습경기를 뛰었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내려섰을 때에 대해서 한발 두발 바디포지션, 공간활용, 포지셔닝에 대해 제가 너무 디테일하게 잡아준 거 아닌가, 그래서 과부하가 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선수들은 운동장 안에서 구현을 하고 싶은데 ‘감독님이 말하는 게 정확히 이게 맞는 건가?’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어요.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보면 저도 힘들어요.

Q 힘들어서 안쓰럽다는 측면도 있겠고, 선수들이 헷갈려하다 결정이 늦어지면 전술의 구현이 안 될 수도 있겠죠?

A 그렇죠. 어제 훈련하다가도 두현석 선수에게 팁을 줬죠. 단순하게 생각하고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그러고 나서는 또 플레이가 갑자기 좋아지더라고요. 그런 면이 힘들어요. 단순하게 가면 플레이를 받아들이는 게 쉬울 때도 있는데. 또 너무 단순하게 가면 경기장에서 그것만 하려고 하나 생각도 들고. 어떻게 선수들을 이해시키고, 어떻게 더 자신감 있게 이끌어줄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끼죠. 네. 많이 느껴요. 현실과 타협하기는 절대 싫거든요. 선수에 맞추다보면, 또 상대방에 맞추다보면 현실과 타협하는 거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라지는 거니까. 근데 또 너무 앞서 가 버리면 선수들이 힘들어하고. 그래서 항상 저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 국내에는 없다, 나와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감독이

Q 같은 길을 먼저 간 선배가 있으면 보고 따를 텐데 국내에서는 사실 전례가 없는 길을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참고할 만한 자료가 좀 없어서 감독에겐 힘든 면도 있을 듯 하네요.

A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래서 해외 축구를 많이 봅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있어서는요, 예 맞아요. 국내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해외의 좋은 영상들을 선수한테 보여주는 거죠. 현실이죠. 우리 축구 지도자분들이 갖고 있는 퀄리티를 높여야죠. 그래야 국가대표 레벨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을 해요.

Q 나라마다 축구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축구를 잘 하는 이탈리아의 경우도 남들보다 정교한 축구를 하려는 문화보다는 상대의 수에 대응해서 그날그날 잘 풀어내려고 하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전술적으로 정교하게 앞서가는 팀이 이탈리아에서 나오더라도 또 끊기는 일을 반복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는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정효 광주FC 감독. 서형권 기자
이정효 광주FC 감독. 서형권 기자
이정효 감독(광주FC). 서형권 기자
이정효 감독(광주FC). 서형권 기자

A 네. 저도 인테르밀란의 (시모네) 인차기 감독 가끔 보거든요. 라치오에 있다가 인테르밀란 왔죠. 그분도 쭉 자기 색깔대로 뚜렷하게 가고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왜 그러냐면 상대가 대응하기 시작하게 되면 쉽지가 않거든요. 대응을 잘하는 감독님들이 있어요. 이탈리아도 더 많겠죠. 국내에서도 대응은 다들 잘 하시는데 그러면 감독으로서 생각을 하게 되죠. 우리 팀에 맞추기보다는 상대에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결과를 내는 데는 쉽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죠. 이번 경기는 한 번 상대의 대응에 한번 맞춰볼까, 상대가 내려서면 우리도 같이 한번 내려서 볼까? 우리가 차라리 내려서서 역습을 할까? 근데 한두 번 맞추다 보면 나중에 선수들한테 제가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감독을 시작하면서 선수들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갈등은 하지만 결국은 제 방향으로 갈 것 같긴 해요.

Q 그런 맥락에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흔히 쓰는 말 중 하나가 ‘경기력이냐 결과냐’인데 그 말은 경기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오늘 결과를 저버린다는 뜻처럼 들리잖아요. 근데 경기력을 개선한다는 건 결과를 내려고 하는 거지, 결과랑 상관없이 개선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A 그렇죠. 그 얘기를 하게 되면 제가 선수들한테 삶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결과만 좇는 사람들에게 결과란 곧 성공이겠죠. 그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남을 해하고 속여요. 근데 좋은 경기력이라는 건 내가 정당하게 내 능력만큼 살아가는 거죠. 내가 능력이 좋으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그러니까 삶도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빗대서 얘기를 하거든요. 내가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듯이, 경기력이 좋으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잠깐 결과만 바라보면 성과는 한두 번이겠죠. 그렇지만 경기력이 좋으면? 한 시즌 38경기를 다 치렀을 때는 우리는 항상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다 보면 성장하면서 우승할 수 있는 구단 팀 선수 그리고 지도자가 되겠죠.

▲ 광주는 내가 맡은 2년 동안 5번 전술 변화를 겪었다

Q K리그2에서 역대 최고 성적으로 우승, K리그1에서 돌풍, 올해 3경기째 좋은 스타트. 이 과정은 좋은 경기력을 추구하는 동시에 상대팀에 간파당할 때마다 우리도 경기력 저버릴까 싶은 유혹과 싸우는 과정이었을 것 같네요. 예전 전술 이야기로 조금 돌아가보면요. 이정효식 광주를 몇 개 기간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외적으로 보이는 건 K리그2 시절 스리백, K리그1에서는 포백이라는 점이 있고요.

A 2부에서 시작할 때는 3-4-3으로 했어요. 스리백을 해서 수비적으로 안전하게 탄탄하게 했고 동시에 공격적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제 축구는 공격적이에요. 스리백을 쓰건 백포를 쓰건. 1부에 올라와서 과감하게 백포로 바꿨던 건 더 많은 전술을 구현하고 싶었고, 선수를 좀 더 성장시키고 싶었고, 광주 시민들이 경기장에 더 찾아오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 과감하게 더 공격적으로 가자. 그리고 밸런스는, 무게 중심을 뒤에 둘까 앞에 둘까? 차라리 슈팅을 세 번 줄 걸 한 번만 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좀 공격적인 수비를 지향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백포로 바꿨어요. 지금까지 한 5번은 바꿨어요.

Q 그럼 지금이 5기 정도 됩니까?

A 5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데 지금은 약간 정체기라고 해야 되나. 어쨌든 상대가 대응을 잘해서 거기에 저희가 파훼법을 못 찾은 거잖아요. 그 답답함이 저한테 왔죠.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연습한 대로만 했어도 됐는데 다시 선수들이 그 안에서 해법을 못 찾으니까 솔직히 약간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해야 되나.도대체 어떻게 하면 상대가 대응을 해도 잘 경기를 풀어갈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이죠.

Q 같은 포백을 쓰는 기간 동안 상대의 대응에 어떻게 재대응하셨는지 짐작해 보면, 지난 시즌 초반에 4-3 승리(대구전)와 같은 경기들이 있다가 상대가 내려서면서 일시적으로 성적이 떨어진 시기가 있습니다. 그 뒤에 다시 성적이 향상됐는데요. 이때를 기점으로 풀백을 덜 전진시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안정감을 가미하면서도 이정효 축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신 걸로 보이는데요. 어떻게 하면 공격가담을 덜 시키는데 공격적인 성향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요?

A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공격 숫자가 많다고 해서 골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선수들한테 좀 디테일하게, 볼 터치 하나, 그다음에 이제 첫 번째 터치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우리 경기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어디를 보는지 선택에 따라서 경기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 그다음에 우리 동료가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는 거에 대해서 경기 스피드가 달라지고 찬스가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슈팅 찬스가 생긴다는 점. 뭐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좀 디테일하게 갔던 것 같아요.

Q 그럼 5기라고 하셨으니까 현재까지 다섯 가지 시기를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A 2부 때는 3-4-3이었고 나중에는 포백이 됐으니 크게 구분이 되죠. 그리고 2부 때 3-4-3 안에서 어떻게 공격했는지로 구분되고요. 1부에서 백포를 쓰되 어떻게 공격했는지에 따라 또 구분됩니다. 그리고 파이널 서드(경기장을 셋으로 나눴을 때 상대진영)에서 숫자를 어떻게 분배를 시켰는지 문제로 한 번 더 나눠집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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