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권태정 기자= 한국여자 축구대표팀에서 막내 이소담(21, 대전스포츠토토)과 이금민(21, 서울시청)이 하는 역할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이소담과 이금민은 대표팀 맏언니인 김정미(31, 인천현대제철)와 10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선후배 관계의 딱딱함은 찾기 어렵다. 23명의 선수들 모두 스스럼 없이 지낸다. 여자대표팀의 훈련이 언제나 화기애애한 이유다.

아이돌식 소개를 하자면, 이소담과 이금민은 대표팀에서 '애교'와 '재롱'을 맡고 있다. ‘2014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과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팀을 이끄는 주축선수였지만 성인대표팀에 들어오면 다시 귀염둥이 막내들이 됐다.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여자 동아시안컵’을 참가를 위해 중국 우한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인 28일,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여자대표팀의 막내들을 만났다. “카메라에 잡티 보정 기능 있나요? 잘 나와야 하는데~”라며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막냇동생 같다.

풋볼리스트(이하 풋):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이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동아시안컵까지 큰 대회를 연달아 치르고 있어요. 힘들지 않나요?
이금민(이하 금민): 힘들긴 힘든데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소담(이하 소담): 힘들긴 힘든데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웃음).
금민: 뭐야, 왜 따라해~
소담: 이제 내가 먼저 대답할래.

풋: 매 대회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요?
소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비장한 정도의 차이는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월드컵 때의 비장함이 가장 컸죠. 성인대표팀에서는 언니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에요.
금민: 저는 늘 같은 마음이에요. ‘민폐만 끼치지 말자.’

풋: 성인월드컵은 처음이었는데, 떨리진 않았나요?
소담: 사실 저희는 막내고,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실수만 하지 말고 열심히 뛰자는 생각이어서 그렇게 떨리진 않았어요.
금민: 막내다 보니까 언니들보다는 부담감도 덜하고, 긴장보다는 편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소담: 20세 대표팀에서 고참이었던 거보다 여기서 막내 하는 게 심적으로 나은 것 같아요(웃음). 팀을 리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나거든요. 힘들다는 표현도 할 수 없고요. 지금은 막내니까 언니들한테 기대기도 하고… 저희는 배우는 입장이니까요.
금민: 맞아요. 유니버시아드대회는 정말 힘들었어요. 심적, 체력적으로 다요. 이제야 몸이 힘든 걸 아는구나, 이제 반응이 오는구나 싶었어요. 월드컵 때도 체력훈련을 많이 해서 힘들긴 했어도 견딜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근데 유니버시아드는 정말 힘들었어요.
소담: 부담감도 컸어요. 저희는 늦게 합류해서 호흡 맞출 시간 없이 바로 경기를 했거든요. 아무래도 언니들이랑 뛰던 거랑 대학생들이랑 뛰는 거랑 차이가 있다 보니까 어떻게 맞춰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우리가 좀 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풋: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발표할 때 짐 쌀 각오를 했었다면서요?
금민: 아니요. '각오'가 아니라 정말 '짐' 쌌었어요. 최종 탈락자 발표하는 전날 밤에 이미 짐 정리 다 하고 가방 싸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희가 남게 됐다는 걸 알고 나서도 좋은 것보다 떨어진 언니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더 마음가짐을 굳게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소담: 저는 희영 언니랑 같은 방을 썼거든요. (박희영은 최종 탈락자로 결정됐다가 이후 여민지의 부상으로 재발탁 됐다.) 그날 오전 휴식시간에 감독님께 불려가는 사람이 탈락되는 상황이었는데, 코치님이 저희 방 문을 딱 여시더라고요. ‘나구나’ 하면서 심장이 ‘쿵’했는데 코치님이 희영 언니를 부르셨어요. 언니가 감독님께 다녀와서 먼저 ‘괜찮다’고 말해주는데, 언니의 그 담담한 표정에 제가 먼저 눈물이 나더라고요. 남게 돼서 좋다는 생각보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언니보다 제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또 제일 잘 챙겨줬던 언니였고, 분명히 안 괜찮을 텐데 괜찮다면서 응원해주는 모습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풋: 작년 20세 월드컵부터 올해 성인 월드컵, 유니버시아드대회까지 세 번 다 프랑스에 패했어요. 참 질긴 인연인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금민: 하… 프랑스 잘해요. 성인대표팀이든 20세 대표팀이든 뭐든 다 잘하는 거 같아요. 기본기도 좋고 축구 하는 생각도 좋아요. 실력도 인정, 진 것도 인정. 아쉬워하면 안 되는데 자꾸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예요.
소담: 프랑스는 일단 경기장을 굉장히 넓게 써요. 볼 키핑도 워낙 잘 하니까 우리가 공 잡기도 쉽지 않고요. 그리고 유럽 애들은 아시아를 무시하는 게 살짝 있거든요. 그런 자신감이 이미 차있으니까 심리적인 것부터 차이가 나지 않나 싶어요.
금민: 20세 월드컵 때는 와… 진짜 공을 잡을 수가 없어요.
소담: 맞아요. 120분 중에 115분은 수비만 한 것 같아요. (당시 한국은 8강에서 프랑스를 만나 연장전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금민: 닥치고 수비였어요. 골 안 먹은 게 다행이었죠. 수비해서 승부차기까지 간 거예요.
소담: 그래도 월드컵 때는 0-3으로 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이번에는 언니들도 있으니까 좀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진~짜 잘하더라고요. 아직 세계의 벽은 높다는 걸 실감했어요. 20세 대표팀은 아무래도 어리니까 부족한 면이 조금씩 있는데 성인 대표팀은 그 많은 축구 인구 중에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서 하는 거니까 부족한 면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골 넣어야 할 때 80% 이상 넣어주고요.

풋: 그래도 월드컵이라는 큰 경험을 통해 성장한 것을 느끼나요?
금민: 대표팀 들어왔다 나가면 항상 자신감을 채워서 가요. 언니들한테 배우는 것도 있고, 훈련도 체계적이니까요. 자신감 차서 다 헤집고 다니는데 그것도 잠깐. 팀에 돌아가 있으면 다시 제자리로 슬슬 돌아가요. 그게 매번 반복돼요. 항상 제자리 같아서 슬퍼질 때가 많아요. 어쩔 땐 허무하기도 하고요.
소담: 여기서 언니들이랑 하다 보면 시야가 트이기도 하고, 템포도 빨라져서 팀에 돌아가면 조금 여유가 생기거든요. 근데 잠깐뿐인 것 같아서 아쉬워요. 더 노력해야죠.
금민: 그래도 월드컵은 정말 큰 경험이었어요. 마르타(브라질), 웜바크(미국) 같은 선수들을 어디서 보겠어요.
소담: 맞아요. 직접 보니 왜 잘하는 선수인지 알 것 같았어요. 정말 달라요.

풋: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금민: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자신만의 개성 있는 플레이랑 창의적인 것? 몸 관리도 잘하는 선수고요. 그런 부분을 많이 닮고 싶어요.
소담: 저는 스티븐 제라드요. 중앙 미드필더로서 중심을 잡고 팀을 리드하는 게 정말 멋있어요. 중거리슛도 강점이고요. 그런걸 따라 배우고 싶어서 연습도 많이 했어요.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라드(이소담+제라드)’라 불러주면 좋아요(웃음). 멘탈적으로는 대표팀 주장 조소현 언니요. 그렇게 멘탈 강한 사람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풋: 월드컵 때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군가요? 막내로서 재롱도 많이 부렸나요?
금민: 저희는 그거 하러 월드컵 갔습니다(웃음). 밥값은 해야 했기에…
소담: 언니들이 웃을 수 있다면 저희는 망가져도 좋아요. 저희가 월드컵에 간 이유예요. 먹고, 자고, 웃겨 주고…(웃음) 근데 얘는 정말 못따라가요. '똘끼'가 충만해가지고… 뭔가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요.
금민: 아닙니다. 저는 평범해요.

풋: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한 이영주 선수에게 보낸 춤 동영상을 봤어요.
금민: 아, 그건 영주 언니랑 원래 같이 하기로 한 거였거든요. 소속팀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는데, 영주언니가 부상으로 들어오지 못한 그 아쉬운 마음을 담아서 찍은 거예요. 저의 영원한 댄스 파트너를 위해…(웃음)

풋: 이소담 선수의 빨간 립스틱 사건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소담: 아, 브라질전 때 악플이 많이 달렸잖아요. 하프타임 때 언니들이 화장을 고치고 나왔다, 립스틱을 바르고 나왔다 그런 것들이요. 제가 청개구리 고기를 먹었는지, 그런 말들에 반응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점심 시간에 일부러 빨간 립스틱을 덕지덕지 바르고 내려갔어요. 선수들 웃으라고요.

풋: 동아시안컵에 임하는 각오는 어떤가요?
소담: 상대들이 워낙 강해요. 뛰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야죠. 항상 같은 마음이에요. 머리 박고 뛰어야죠.
금민: 감독님께서도 저희에게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으세요. 많이 뛰라고 하세요. 열심히 뛰고, 많이 뛰는 것.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감독님도 저희를 많이 뛰는 선수로 생각하시는 것 같고… 이래서 첫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소담과 이금민은 월드컵 전 체력테스트에서 1, 2등을 차지했다.) 처음에 그렇게 뛰어놔서 계속 그러고 있어요(웃음).
소담: 힘든 티 낼 수 없죠(웃음).
금민: 지금 88언니들(대표팀 주축인 1988년생 언니들)이 진짜 잘 뛰어요. 저 나이에 저렇게 할 수 있나 존경스러울 정도로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저 언니들은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든 티를 낼 수가 없어요. 미안하니까.
소담: 언니들 앞에서 나이얘기 못해요. 예민한 부분이라(웃음). 입 꽉 다물고 뛰어야죠.
금민: 쓸모 없는 선수는 안되고 싶어요. 기회가 주어지든 안 주어지든 단 1분이라도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게 첫 번째 각오예요.
소담: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감독님이 좋은 선수들 많은 와중에 저를 선택해 주신 거잖아요. 감독님이 선택 후회하지 않도록 하나라도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풋: 이번 대회에서 꼭 이기고 싶은 팀이 있다면요?
소담: 중국이요. 가장 해볼만한 팀인 것 같아요.
금민: 일본은 당연히 이겨야 하고요. 북한도 이기고 싶어요. 일본은 축구 잘하는 것도 인정하고 깨끗하고 매너 좋은 나라란 것도 알지만 과거의 치욕스런 역사가 있잖아요. 지금도 너무 싫어요. 일본은 당연히 이겨야 해요. 북한은 정말 잘 하는 팀이고 거의 못 이겨본 팀이다 보니 꼭 넘어보고 싶어요.

풋: 앞으로 한국여자축구를 이끌어가야 할 세대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나요?
금민: 그런 말을 들으니 행복하네요(웃음).
소담: 월드컵을 치르면서도 4년 뒤 월드컵을 생각해봤어요. 이것보다 더 잘해야죠. 우리가 많이 느꼈고, 후배들한테 많이 전해줄 수 있고요. 이번 경험을 통해 여자축구는 더 발전할거고, 4년 뒤에는 16강보다는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이 황금세대라고 하지만 어린 친구들도 앞으로 경험이 쌓일 거고요. 그리고 지금 뛰는 언니들 중에 몇몇은 남아있을 테니까요. 88언니들은 저희보다 더 오래 뛸 거 같아요(웃음).
금민: 4년 뒤에는 더 발전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자축구 환경도 환경이지만, 선수들이 갖는 마음가짐이나 노력하는 게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니들은 정말 계속 있을 것 같아요. 있어야 하고요. 그때도 언니들보다 우리가 더 뛰어야죠.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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