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21시즌 전남드래곤즈의 슬로건은 독룡(毒龍)이다. 말 그대로 독기를 품은 용이 되겠다는 뜻이다. 2018년 기업구단으로서 두번째 강등을 당하며 2부 리그로 온 지 3년차를 맞은 올해는 승격을 이뤄내고 말겠다는 강한 집념의 표현이다. 

지난 시즌 전남은 K리그2 6위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경남, 대전과는 승점 1점 차였다. 27경기 중 절반이 넘는 14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올 시즌 K리그2 개막 후 초반 5경기에서도 1승 3무 1패로 6위에 그칠 때만 해도 비슷한 패턴을 그리는 듯했다. 하지만 6라운드부터 안산, 김천, 부산을 상대로 3연승에 성공하며 선두 대전(15점)과 승점 차 없는 2위에 올랐다. 3위 안양과 4위 안산이 14점으로 추격 중이어서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K리그2지만 최근 전남의 흐름은 확실한 상승세다.  

기업구단이지만 전남의 시즌 준비는 조용했다. 정확히는 전력 누수가 심했다. 전력의 핵이던 김주원과 이유현이 이적했고, 팀의 중심을 잡아 줄 베테랑 FA는 최효진(플레잉코치)과 이후권 밖에 잡지 못했다. 새로 보강한 선수 중 1부 리그에서 온 이는 수원삼성의 써드 골키퍼 김다솔 뿐이었다. K3 김해시청에 부활을 알린 박희성과 만년 유망주 서명원을 영입했지만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다. 아산과 안산, 수원FC에서 활약하며 눈여겨 본 장순혁과 김태현, 장성재를 데려와 스쿼드를 채웠다. 이유현이 떠나자 제주의 백업 윙백인 김영욱을 간신히 데려왔다. 

대전, 경남, 서울이랜드, 안양 등 승격을 위해 싸워야 할 경쟁자들보다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기업구단임에도 승격 후보로 거의 언급되지 않을 정도였다. 전경준 감독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침착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그는 "2부 리그로 온 뒤 구단의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다. 처한 현실 안에서 최대한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소통 중이다”라며 냉정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전경준 감독이 말한 최대한 좋은 선택은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 이뤄졌다. 승부처에서 결정을 지어줄 수 있는 외국인 공격수 3인방의 잇단 활약은 최근 3연승의 비결이다. 전남은 아시안쿼터인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올렉을 제외한 3명의 외국인 선수를 겨울에 모두 교체했다. 그 중 사무엘만 정상적으로 동계훈련을 소화했고, 알렉스와 발로텔리는 개막 전후에야 팀 훈련에 합류했다. 

지난 시즌 외국인 공격수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전경준 감독은 심혈을 기울였다. 70명이 넘는 리스트 중에서 ‘가성비 좋은’ 선수를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접촉한 발로텔리는 부상이 없으면 수준급 활약을 꾸준히 펼쳐와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전 소속팀과의 계약 문제로 3월 말에야 영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사무엘은 지난 시즌 전경준 감독이 영입하려 했던 팔라시오스(포항), 그리고 K리그2 최고의 솔로 플레이를 펼치는 레안드로(서울이랜드)와 유사한 스타일을 찾다 걸린 케이스다. 알렉스는 1년 동안 무적 신분이었지만 일본과 중국 2부 리그에서 뛴 경험과 적응력을 높이 사 영입했다. 

전경준 감독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적응력, 그리고 몸 상태였다. 지난 시즌 호도우프는 부상으로 1경기도 못 뛰었고, 에르난데스는 팀 스타일에 녹아들지 못해 떠난 점을 떠올렸다. 시즌 중 외국인 선수 교체는 쉽지 않고, 성공하긴 더 어렵다는 것도 감안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동원해 3명의 외국인 선수의 이력 체크를 했다. 팀을 자주 옮긴 저니맨들이지만 자국 리그를 떠나 장시간 해외 무대를 경험했고 자기 관리에 눈을 뜬 20대 중후반, 30대 초반의 선수를 택했다. 

이 선택은 맞아 떨어졌다. 알렉스와 발로텔리는 팀 합류가 늦었음에도 빠르게 몸 상태를 만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스카우팅에 애를 먹으며 자금력이 더 우위인 K리그1 팀들도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 고전 중인데 전남은 한정된 자금력 안에서 추진한 새 외국인 선수 영입이 성공적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사무엘(1도움), 알렉스(1골 1도움), 발로텔리(1골)는 최근 3연승 기간 동안 나란히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여기에 플레이메이커 김현욱이 2골 1도움, 이종호가 2골을 기록 중이다. 박희성과 이후권도 1도움을 기록 중이다. 팀의 전체 득점은 높지 않지만 공격 루트가 다변화됐다. 전경준 감독이 상황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옵션이 다양해진 것이다. 8라운드까지 유효슈팅 40개를 기록 중인데 최근 3경기에서는 29개의 슈팅 중 19개를 유효슈팅으로 연결, 공격 내용이 확실히 개선됐다.  

3연승을 달성한 부산 원정에서는 히카르두 페레즈 감독에게 전술적 저격을 당해 논란이 일었다. 전남이 전반에 극단적 수비 축구를 한 것에 대해 페레즈 감독이 공개적인 불만을 표시, 안티풋볼(승리를 위해 극단적 수비와 거친 플레이를 동반하는 방식) 논란이 인 것이다.

전경준 감독 부임 후 전남은 수비 부문의 성과가 가장 눈에 띄는 팀인 것은 사실이다. 2020시즌 K리그2 27경기에서 제주(23실점) 다음으로 적은 25실점을 기록했고, 올 시즌도 8경기에서 5실점으로 최소 실점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그런 성과를 단순히 공격적인 축구냐, 수비적인 축구냐의 이분법으로 폄하하긴 어렵다. 핵심 수비수들을 잃고도 전남이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전경준 감독의 수비 조직력을 위한 준비와 전술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전남의 수비에 대해 전경준 감독은 3백도 아닌 5백 활용임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는 "우리 팀은 수비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지금 전남은 3선에서 경기 운영과 빠른 공격 전환을 이끌어 줄 미드필더가 가장 약하다. 자칫 공수 밸런스가 다 무너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기기 위한 확률이 높은 방식을 택해야 했다”고 말했다. 

리그 상위권 스쿼드가 아님에도 승격이라는 지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경준 감독 스스로 더 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대신 그는 디테일을 늘 강조한다. “수비 숫자만 많다고 실점을 줄일 순 없다. 짜임새가 중요하다.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코칭스태프와 함께 수비에서만 10가지가 넘는 부분 전술을 준비했다. 거기에 매 경기 상대를 분석해 맞춤 전술을 추가한다. 그렇게 해도 실수가 나오면 실패하는 게 승부다”라며 좋은 수비에도 공격 못지않은 노력과 정성이 동원된다고 설명했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우리 같은 팀은 그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걸 안티풋볼이라고 지적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라고 항변한 그는 “보유한 스쿼드 안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축구를 해야 한다. 상대를 알아도 자신을 모르면 백전백패다. 자신의 축구를 한다면서 이도 저도 아닌 내용에 그치고, 결과까지 놓치는 건 프로 레벨의 지도자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며 소신을 보였다. 

정식 감독으로 2년 차, 감독대행까지 합치면 전남에서 3년 차를 맞은 전경준 감독은 올해는 전남 팬들이 염원하는 성과를 안겨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이렉트든, 플레이오프를 거치든 승격 외에 전남의 목표는 없다. 그래서 전경준은 더 독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수 밖에 없고, 전남은 독룡이 될 수 밖에 없다. 전남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면 틈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독한 수비는 디테일이 빚어낸 빗장수비의 매력을 보여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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