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황인범은 한 가지 특징만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라 전반적인 능력이 고루 준수한 선수다. 축구게임에 빗댄 표현으로 ‘육각형’ 미드필더다. 루빈카잔 진출 후 2경기 만에 팀 승리를 이끌면서 한 차원 높은 축구에서 더 빛난다는 걸 보여줬다.

27일(한국시간) 러시아의 카잔에 위치한 카잔 아레나에서 ‘2020/2021 러시아프리미어리그(RPL)' 정규리그 5라운드를 치른 카잔이 Ufa에 3-0으로 승리했다. 황인범이 후반전에 교체 투입돼 유럽무대 데뷔골을 넣었다.

 

▲ 공격형 미드필더 적임자가 없던 카잔의 고민

레오니드 슬러츠키 감독은 4-2-3-1 포메이션으로 이번 시즌을 시작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시즌 초반에는 이번 시즌 영입한 다르코 예브티치를 기용해 봤으나 공격력이 부족하자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동시켰다. 19세 유망주 주리코 다비타시빌리는 선발로 1경기만 뛴 뒤 로토르볼고그라드로 임대됐다.

최근 2경기 공격형 미드필더는 러시아 대표 출신 스타 올레그 샤토프였다. 샤토프는 2015/2016시즌 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 리그 8골 6도움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낸 바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과 ‘유로 2016’ 러시아 대표팀에 연속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하락세를 겪다 제니트와 계약연장을 하지 않고 카잔으로 온 선수다. 전진 패스와 드리블 등 공격력이 부족했다.

전반전 동안 샤토프의 결정적인 공격 시도는 슛 1회에 그쳤고, 키 패스(동료의 슛으로 연결된 패스)는 아예 없었다. 공격은 주로 좌우 측면에서 진행됐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스루 패스는 라이트백 알렉산드르 주에프가 오버래핑해서 올린 공이었다. 전반 공격은 패스 플레이보다 왼쪽 윙어인 조지아 대표 크비차 크바라츠켈리아의 개인 플레이 위주로 전개됐다.

 

▲ 황인범, 공격 전반에 걸쳐 수준 높은 활약

전반에 기여도가 떨어졌던 공격형 미드필더를 황인범으로, 오른쪽 윙어를 데니스 마카로프로 교체한 뒤 경기는 술술 풀렸다. 황인범은 투입 직후부터 활발하게 움직이며 공을 순환시켰다.

황인범은 투입된 뒤 약 1분 만에 데뷔골을 넣었고, 나머지 2골의 기점 역할까지 했다. 상대 골문에서 튕겨나오는 공을 향해 태권도처럼 몸을 날려 발리슛을 넣었다. 데니스 마카로프의 추가골 때는 키가 13cm 더 큰 상대 센터백 이오누트 네델체아루를 상대로 공중볼을 따내는 투지를 발휘해 기점 역할을 했다. 쐐기골 때는 중앙선 부근에서 왼쪽 측면으로 패스를 전개했고, 이후 크로스에 이은 마카로프의 골이 터졌다.

황인범이 투입된 후 데뷔골을 넣기까지 단 1분 8초가 걸렸는데, 이미 황인범은 플레이의 중심이었다. 후방 빌드업 가담, 전진 패스 시도, 헤딩 경합에 이은 전방 압박으로 공 탈취, 동료의 공격이 무산되자 발리슛으로 마무리해 득점까지 짧은 시간 동안 모두 보여줬다.

공이 잘 돌자 개인기를 쓸 필요가 없어졌다. 카잔의 전반전 드리블은 3회였지만, 후반전에는 황인범 자신의 탈압박 1회를 포함해 2회로 줄어들었다. 특히 전반전 공을 오래 쥐고 수비와 대결해야 했던 크바라츠켈리아는 후반에 황인범의 스루 패스를 받아 질주하기만 하면 됐다.

황인범의 패스와 드리블 기술이 돋보인 장면은 후반 20분 나왔다. 중앙선 부근에서 공중볼을 받자, 전방을 흘끗 본 뒤 침투하는 원톱 조르데 데스포토비치에게 발리 패스를 제공했다. 데스포토비치가 고립되자 접근해 공을 이어받은 뒤 기습적인 돌파를 시도했는데 문전에서 아슬아슬하게 막혔다.

성실한 선수답게 경기 내내 종종걸음으로 위치를 옮기며 상대를 압박하고, 패스 경로를 하나 이상 끊으려 노력했다. 후반 18분에는 무리한 황 패스를 직접 가로채기 해 동료의 득점 기회로 만들어줬다. 후반전만 뛰고도 공 탈취 1회, 가로채기 2회를 기록했다.

 

▲ 황인범 효과로 2연승 거둔 카잔

카잔은 앞선 3경기에서 1무 2패에 그쳤으나, 황인범을 투입하기 시작한 뒤 2연승을 거뒀다. 확실한 공격력 향상 효과를 봤다. 축구 통계 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이 세부기록을 근거로 산출한 최고 평점은 황인범의 8.4점이었다.

황인범은 밴쿠버화이트캡스에서 축구가 힘들었고, 더 수준 높은 축구를 위해 유럽진출을 서둘렀다고 밝힌 바 있다. 전반적인 기량이 떨어질 뿐 아니라 개인기에 의존하는 미국메이저리그(MLS) 문화에서 황인범과 같은 팀플레이어가 빛나긴 힘들었다. 반면 카잔은 RPL 중위권 팀이긴 하지만 러시아 대표팀까지 맡았던 동구권 명장 슬러츠키 감독이 지도하고 있다. 슬러츠키 감독은 단 2경기 만에 황인범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왜 적극적인 구애로 영입했는지 보여줬다. 개인기가 좋은 크라바차켈리아, 득점력이 좋은 마카로프 등 동료 윙어들과의 합도 잘 맞는다.

사진= 유튜브 '러시안 프리메라리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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