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는 정말 자신의 플랜A에 만족하고 있을까?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경기는 이겼지만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을 투입해 고공 공격을 펼치는 플랜B의 성공이 볼 점유를 중시하는 플랜A와 연동된 결과라고 말했지만, 플랜A를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해결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5번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준비한 플랜A는 길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반환점을 돌았다. 5개팀을 모두 상대했고 3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2위로 본선 직행이 가능한 순위를 탈환했다. 그러나 홈에서 치른 세 경기가 모두 1점차 신승이었다. 중국과 첫 경기는 따라 잡힐 뻔 했고, 카타르,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는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원정 두 경기는 0-0 무승부와 0-1 패배였다. 2017년에 이어질 5경기 중 세 경기가 원정이다. 여전히 판세를 유리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즈베키스탄전의 2-1 역전승은 지난 10월 카타르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을 때와 비교해 개선된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수비는 여전히 불안했고, 공격은 김신욱이 들어오고 나서야 활로를 찾았다. 

#통하지 않는 플랜A,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까?

슈틸리케 감독은 플랜A가 작동하지 못한 이유를 숙련도의 문제라고 했다. “마지막 30미터 지역에서 세밀함과 결정력이 부족했다. 개선하기 위해 패스 훈련과 기술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나 슈틸리케호는 출범한지 2년이 지났고, 더 약한 상대를 만난 2차 예선전 당시에도 결과만큼 내용이 따라오지 못해 꾸준히 위기론을 겪어 왔다. 

레알마드리드 선수 출신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살며,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통역관을 요청한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 철학은 스페인 식이다. 축구 팬들이 열광하는 ‘볼 소유’와 ‘패스 축구’다. 수비 라인을 높이고 후방 빌드업을 중시하며, 상대 진영에서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다. FC바르셀로나가 주도한 새 시대의 트렌드다. 

문제는 이를 경기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숙련도를 갖출 수 있느냐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슈틸리케 감독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현실의 벽은 높다. 도전 자체로 가치를 찾기에 최종 예선은 매 경기 중요성이 크다. 준비 시간은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받는 부담이 크다.

아시아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은 높다. 한국의 축구 인프라는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은 한국 선수들의 상황은 리그 일정을 연기하고 대표팀 소집 훈련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타 아시아 국가와 다르다. K리그도 더 이상 대표팀을 위해 희생하는 구조가 아니다. A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란 조차 리그 일정이 진행 중임에도 월드컵 예선 경기를 앞두고 2주 가까이 리그 경기를 비우고 소집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주장 기성용은 이를 한국이 갖는 “핸디캡”이라고 설명했고, 한국 대표팀이 “잘 버텨내고 있다”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을 통해 플랜A의 밀도를 높이겠다고 했지만 냉정히 말해 최종 예선 후반기 일정 중에 그만큼의 훈련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다음 예선 일정은 2017년 3월이지만, 대표팀은 그 사이 별도의 소집 훈련을 할 수 없다. A매치 기간의 훈련 시간은 회복 훈련을 제외하면 하루 이틀에 불과하다. 제한적인 시간이다. 그때까지 현 대표팀이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수준의 기술력과 패싱력을 높일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 수비수들의 연쇄 실수는 기량 보다 전술의 문제다

#수비수들의 연이은 실수, 진짜 문제는 낯선 전술

최종예선 들어 수비수들의 기량에 대한 지적이 많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선수들의 실수를 지적하는 인터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중국화 논란’도 발생했다. 선수 보다 전술에 기인한 문제일 것이라는 지적은 간과되고 있다.

수비 라인이 높으면 후방 수비수들의 부담이 높아진다. 안정된 볼 관리 능력, 고도의 패스 정확성이 필수다. 라인이 높은 상황에서는 패스 미스의 치명성이 크고, 공격이 차단 이후 상대 역습이 전개될 때의 부담도 더 크다. 최종 예선전에서 수비수들의 실수가 잦은 이유는 중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플랜A 전략이 자연스레 담고 있는 위험요소다. 중국슈퍼리그 소속 선수가 아니라 그 누가 수비 라인에 들어와도 광활한 배후 공간을 뒤로 하고 경기를 해야 한다. 

중국슈퍼리그 창춘야타이에서 뛰는 우즈베키스탄 수비수 이스마일로프는 한국전은 물론 최종예선 내내 아주 빼어난 수비력을 보이고 있다. 창춘은 2016시즌 간신히 강등을 면한 팀이다. 이스마일로프는 대표팀의 조직과 전략 속에 자신의 강점을 보일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있다.

중국슈퍼리그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슈퍼리그의 부름을 받은 수비수들은 모두 한국에서 최정상의 기량을 인정 받고 검증 받은 선수들이다. 이들이 초보적으로 보이는 실수를 돌아가며 반복하고 있는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페인 대표팀이나 FC바르셀로나, 주제프 과르디올라가 지휘한 바이에른뮌헨, 맨체스터시티 등 같은 방식의 축구를 지향한 팀들도 시즌 중 이런 상대 역습 공격에 수비 실수가 발생하며 실점하거나 무너진 경기들이 있다. 볼 관리와 패싱력에서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수비수 조차 90분 내내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

골키퍼 김승규가 거듭 볼처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최종 수비수나 풀백의 패스 미스나 볼 관리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한국 선수들이 지금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높은 수비 라인과 볼 소유, 후방 빌드업을 중시하는 축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향이 달라지고 있지만, 지금 성인 대표팀에서 뛰는 세대의 선수들은 유소년 시절은 물론 현재 각자 소속팀에서도 이런 유형의 경기가 익숙하지 않다. 한국 대표팀에는 낯선 옷이다. 

굳이 밀집 수비를 자초하는 점유 축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안풀리는 공격, 왜 굳이 밀집 수비를 상대해야 하나?

공격 전개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슈틸리케 감독은 “볼을 소유하는 경기를 하면 상대가 뒤로 쳐지고, 그러면 공간이 조금 밖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K리그를 비롯한 한국 축구는 볼 소유를 극도로 강조한 축구를 보기 어렵다. 먼저 수비를 튼튼히 하고 역습 상황에서 속도를 활용해 공간을 공략하는 공격 전술이 더 익숙하다. 

극도로 제한되 공간에서 세밀함이 부족하고, 패스 미스가 잦은 것은 선수의 ‘기량 문제’로 판단할수 있지만, 팀 차원에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선수가 더 잘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하프라인 부근까지 라인을 높이고 상대를 그들의 진영에 가둔 채 공격을 전개하면서 시원시원한 돌파로 소속팀에서 재능을 보이던 많은 공격수들이 무력하고 답답한, 고립된 모습을 보이며 저평가 받고 있다.

FC바르셀로나 조차 과르디올라 감독이 떠난 뒤 상대 밀집 수비에 고전하자 전방 압박 강도를 줄이고 수비 라인의 위치를 조정했다. 상대를 전진시켜 배후를 공략하고, 역습 공격 패턴을 강화해 경기 전략을 바꾸는 시도를 했다. 상대 지역을 지배하는 축구는 공격 패턴이 더 세밀하고 정교해야 한다. 대표팀은 그만한 수준의 완성도를 구축하기에 훈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선수의 개별 역량 역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야 가능하다. 

대표팀 감독의 임무는 선수의 기량을 발전시키는 일 보다 현재 선수를 가지고 최대 성과를 내는 것이다. 대표팀 감독이 “유소년 단계부터 기본기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을 경기가 잘 안풀린 원인, 경기에서 패배한 배경으로 삼아선 안되는 이유다. 대표팀 감독은 당장의 결과를 위해 존재한다. 선수의 개성에 맞는 전술과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훈련 시간이 많고, 입맛에 맞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클럽팀과 대표팀은 다르다.

김신욱을 90분 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는 없을까?

#김신욱은 정말 플랜A가 될 수 없나?

김신욱을 투입해 롱볼과 세컨드볼, 교차 플레이로 공간을 만드는 패턴 공격은 최종 예선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장신 선수를 활용한 롱볼 공격 패턴은 축구계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 만의 신의 한수도 아니다. 

김신욱을 활용한 슈틸리케호의 플랜B 공격 패턴은 ‘2014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던 홍명보호에서 집중 연마한 방식이기도 하다. 현 대표팀 소속 선수 대부분이 홍명보호를 거쳤다. 김신욱은 우즈베키스탄전 역전골 상황에 대해 홍명보 감독이 지휘하던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에서 준비한 패턴이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이 잘라주고 구자철이 들어가는 건 알제리전에도 나왔던 장면이다.”

볼을 오래 소유하는 것으로 체력 소모를 줄이고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현대 축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됐다. 문제는 볼 소유 지역과 라인의 높이다.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모두 선수비 후역습 자세를 취한다. 그들이 쳐놓은 그물에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아름답지 않고 지배하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우리 진영으로 유인하고,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플레이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을 플랜A로 투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상대가 지쳤을 때 들어가야 효과가 좋다. 처음부터 들어가면 상대 수비가 김신욱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고 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대표팀 공격이 가장 파괴력을 보인 상황은 김신욱 투입 시기이며, 김신욱이 들어가면 상대 수비가 알고도 당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김신욱은 정말 조커로만 활용도가 있는 반쪽짜리 공격수일까? 김신욱은 소속팀 전북현대에서 선발 공격수로 들어가서도 AFC 챔피어스리그 무대에서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울산현대 시절부터 김신욱을 중심으로 한 철퇴 축구는 90분간 지속적으로 상대를 위협했다. 

게다가 김신욱은 포스트 플레이 외에 발로 하는 플레이도 꾸준히 단련하고 연마해온 선수다. 오히려 헤딩 보다는 발로 하는 슈팅이나 패스가 더 돋보이는 경기를 할 때도 많았다. 김신욱은 자신이 들어가면 볼을 점유하기 위한 경기가 되기 어렵냐는 질문에 대해 난처한 모습으로 답을 피했다.

불안요소가 큰 플랜A로 상대에 리드를 내주고 힘겹게 뒤집는 패턴의 경기를 지속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우즈베키스탄이 플랜B 가동 이전에 추가골을 넣고 달아났다면 김신욱 투입 이후에도 경기를 뒤집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는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란과 경기에서는 플랜B를 가동하고도 이미 넘어간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했다.

카타르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플랜B 가동 이후 경기를 뒤집었으나 이 과정에서 운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전략 미스와 개인적인 실수, 체력 저하 등으로 상대가 자멸한 측면도 크다. 개인 기량 면에서 한국 대표 선수들이 아시아에서 월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 골 차의 아슬아슬한 역전승이 다음 경기에도 재현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구조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성용이 없다면 슈틸리케가 원하는 후방 빌드업은 가능할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한 차례씩 한국을 상대해본 상황에서 상대는 한국을 괴롭힐 전략을 더 치밀하게 세울 것이다. 그러나 슈틸리케호는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나설 것”이라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불활실한 플랜A에 대한 도박 보다 더 안정적으로 승리를 확보할 수 있는 플랜A를 찾아야 한다.

최종예선 5경기를 치르며 확인한 것은 현재의 플랜A가 밀집 수비를 뚫지 못하고 상대 역습에 취약하다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역전을 했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통하지 않고 있는 플랜A가 한국 축구의 현실에 맞는 옷인가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냉정하게 말해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플랜A의 후방 빌드업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기성용 뿐이며, 밀집 수비를 혼자 힘으로 흔들 수 있는 선수는 손흥민 뿐이다. 슈틸리케호가 기성용과 손흥민 두 명의 개인 능력에 의존해 승점을 쌓고, 이들의 컨디견에 따라 좌우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만약 이 둘을 기용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슈틸리케의 플랜A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손흥민이 없었던 시리아전의 답답함과, 기성용이 뛰지 않은 경기에서의 무질서함을 목도한 바 있다. 둘이 가진 재능을 십분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둘에 대한 의존도를 극대화시킨 전술은 시간이 갈 수록 불안요소를 키울 것이다. 당장 내년 3월 중국 원정에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한다.

카타르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존재감을 보인 김신욱은 “플랜A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꼭 김신욱이 아니라도 현재 한국 축구가 가진 자원 안에서 가장 효과적인 경기를 할 수 있는 조합과 패턴에 대해 원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감독 개인의 철학도 중요하지만,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중요한 무대에서는 한국 대표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축구와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을 승리로 이끌며 재신임 받았으나, 우즈베키스탄전의 내용은 경질 여론까지 조성하게 만든 이전의 경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술위원회는 5차전까지 진행된 최종 예선을 내용적 측면에서 냉철하게 짚어야 한다. 최종예선 후반 5경기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러시아로 가는 길은 다시 위태로워 질 수 있다. 남은 5경기 중 3경기가 원정이다. 

게다가 한국 축구의 목표는 본선 진출 티켓 그 자체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경기력이 이어진다면 설사 러시아에 가게 되더라도 조별리그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슈틸리케의 플랜A는 지난 6월 스페인과의 소중한 친선전 기회를 아무런 소득 없는 경기로 만들기도 했다. 러시아 월드컵의 밑그림을 위해서라도 확실한 플랜A를 구축해야 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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