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와 호나우두 그리고 세스크는 왜 그들의 이름이 됐나?

[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축구는 하나의 문화다. 한 나라 혹은 한 리그의 축구를 보면 그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들 속으로 좀 더 들어갈 수 있는 열쇠도 있다. 바로 성과 이름이다. 멋지고, 조금은 낯선 그들의 성과 이름을 이해하면 그들의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알 수 있다. 앎은 기본이고, 재미는 덤이다. 

 

축구 선수들의 등번호 위, 혹은 아래에는 이름이 새겨진다. 주로 성을 쓰지만 애칭이나 이름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예 본명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흔치 않은 일인데, 주로 브라질 선수들에게 있는 일이다.

 

카를루스 카에타누 블레도른 베히(Carlos Caetano Bledorn Verri)라는 이름을 듣고 떠오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명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브라질 대표팀 감독 둥가(Dunga)의 본명이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 나온 난쟁이 캐릭터 중 ‘도피’는 포르투갈어판에서 ‘둥가’로 불린다. 삼촌이 유년기에 작다는 의미로 ‘둥가’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 평생의 이름이 됐다.  

 

캐릭터에서 따온 별명을 이름으로 삼은 또 다른 사례는 브라질 대표 공격수 헐크다. 본명이 지바니우두 비에이라 지 수자(Givanildo Vieira de Sousa)인 그가 헐크로 불리는 이유는 외모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다만 요즘 영화에 나오는 헐크 캐릭터가 아니라 1970년대 유행했던 TV 드라마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주연을 받은 배우 루오 페리뇨와 닮아서 얻은 별명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 미국 올랜도시티에서 뛰고 있는 카카다. 발음상 ‘카카’는 포르투갈어는 물론 스페인어, 영어로도‘똥(caca)’이라는 뜻이다. 카카의 본명은 히카르두 이젝송 도스 산투스 레치이다. 여기서 이름은 히카르두다. 히키라는 애칭으로 줄여 쓰는데, 카카의 남동생이 발음을 어려워해 카카로 부르다가 별명이 되었다. 똥이라는 뜻으로 쓰이지 않기 위해 스펠링을 ‘C’에서 ‘K’로 바꿨다.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의 본명은 에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Edson Atrantes do Nascimento)다. 에지송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Edison)에서 따왔다. 부친이 에디스처럼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로 지었다. 펠레(Pele)라는 애칭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은데, 유년기에 산투스에서 같이 뛰었던 골키퍼 빌레(Bile)로 착각하고 에지송을 부르던 것이 비슷한 발음의 펠레라는 별명으로 굳어졌다는 가설이 가장 신빙성을 인정 받고 있다.

 

브라질에서 애칭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나오는 것은, 워낙 비슷한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이름이 두 개고, 성도 두개이기에 풀네임이 너무 길다. 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어권 문화가 부모 성을 같이 쓰기(이름 다음에 어머니 성과 아버지 성이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에 생긴 일이다.  

 

선수들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이름 대신 성을 등에 새기고, 성으로 불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성씨를 등록명으로 쓰는데 문제가 없지만, 축구 선수 규모가 워낙 큰 브라질에서는 동명이인이 너무 많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부모성을 같이 쓰니 이름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축구 선수들의 경우 애칭을 그대로 등록명으로 쓰게 됐다. 그래도 애칭보다 이름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팀 내에 동명 이인이 있을 경우에는 접미사를 붙여 구분한다.  

 

호나우지뉴(Ronaldinho)는 호나우두(Ronaldo)에 ‘작다(~inho)’는 접미사가 붙은 것이다. 둘 중 어린 선수에게 붙인다. 둘 중 나이가 많은 선수에게는 ‘크다(~dao)’는 접미사를 붙인다. 이 경우 호나우당(Ronaldao)이 된다. 주니뉴(Juninho)는‘작은’ 주니오르(Junior)이고, 세르지뉴(Serginho)는 작은 세르지우(Sergio)다.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있다. 프란시스코라는 이름은 ‘프란’으로 줄이거나 ‘이스코’로 줄여진다. 카탈루냐 출신으로 발음이 다른 프란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세스크’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어권에서 자주 보이는 ‘페페(Pepe)’라는 이름은 ‘호세(Jose)’ 애칭이다. 호세가 길지도 않고, 발음도 전혀 다른데 ‘페페’를 애칭으로 쓰는 데에는 유래가 있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남편으로 알려진 ‘나사렛의 요셉’을 라틴어로 ‘파테르 푸타디부스(P.P.)’로 불렀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있는데, 실은 이탈리아에서 호세를 뜻하는 주세페(Giuseppe)를 줄인 ‘베페(Beppe)’에서 왔다는 가설도 있다.

 

이밖에 성 프란시스를 ‘파테르 코무니타티스’로 불렀던 것을 기원으로 하는 ‘파코’라는 애칭도 축구 경기를 보면 자주 볼 수 있다. 체마(Chema)는 호세 마리아, 키케(Quique, Kike)는 엔리케, 수소(Suso)는 헤수스에서 왔다. 모두 종교적인 이름이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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