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호정] 한일전(韓日戰). 어떤 스포츠 종목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승부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한일전은 누가 뭐라 해도 축구다. 패배가 곧 치욕이고 충격이며 감독의 입지를 벼랑 끝에 서게 만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특별한 경기 한일전이 올림픽축구에서 성사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동메달이 걸린 3, 4위전에서 말이다.

숙명 혹은 운명과 같은 이번 대결은 한일전 역사상 절대로 져서는 안 될 명분과 이유가 충분하다. 이 경기를 앞두고 눈길을 모으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인이다.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대표팀에 몸 담은 일본인 스태프다.


세이고 코치는 일본 최고의 피지컬 전문가다.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후루가와 전공(현 제프 이치하라)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9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이후 당시로선 일본에서도 생소했던 피지컬 분야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모라시 산타나(브라질), 빈첸조 빈코리니(이탈리아) 등 세계 최고의 피지컬 코치 아래에서 수학했고 1994년 미국월드컵 때는 산타나 코치를 따라 브라질 대표팀과 동행하기도 했다. 남미와 유럽의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양인의 피지컬적 특징에 맞는 자기 노하우를 완성했다.

홍명보 감독은 처음 세이고 코치를 영입했을 때 ‘모셔왔다’는 표현을 썼다. 2009년 U-20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은 삼고초려 끝에 당시 세이고 코치가 소속돼 있던 우라와 레즈를 설득시켰다. 3개월 간 대표팀에 합류했던 세이고 코치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다시 합류해 도움을 줬다. 이후 전임 코치로 대한축구협회와 계약을 맺으며 올림픽대표팀에 완전히 합류했다.

세이고 코치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피지컬 훈련을 위한 시간 확보와 다양한 방법론에 대해 세이고 코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전력 분석과 팀 운영을 위한 여러 의견 등에서도 조언을 구한다. 비교적 젊은 코치들로 구성된 올림픽 대표팀에서 경험을 채워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박주영의 컨디션 회복을 도맡았다. 올림픽대표팀이 소집되기 2주 전 박주영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개인 훈련을 실시했고 이후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J2의 반포레 고후에 합류해서 경기 감각 끌어올리기에 집중했다. 그는 “감독이 연출하고자 하는 작품을 위해 무대를 설치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는 소신을 강조했었다.

세이고 코치 합류 후 U-20 대표팀부터 현재의 올림픽대표팀까지 꾸준히 나타나는 공통점은 대회 준비 과정에서 부상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다. 과거의 대표팀에는 준비 과정에서 선수들이 근육 계통에 각종 부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대표팀은 실전 경기 중 벌어지는 외상(김창수, 정성룡) 외에는 다른 부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경기가 치러지는 간격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빠르다. 치명적인 팔 골절 부상을 입은 김창수는 힘들지만 정성룡은 회복 후 한일전을 준비 중이다. 이틀 간격으로 다섯 경기를 치렀고 이동도 많았지만 경기 중에 선수들로부터 심각한 체력 저하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이고 코치는 홍명보 감독을 보좌하며 목표로 삼았던 메달 획득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세이고 코치에겐 너무나 당황스러운 관문이기도 하다. 바로 자신의 조국 일본을 꺾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고 있지만 그는 일본 축구와 절대 연을 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과거 일본축구협회의 기술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선배인 오구라 준지 축구협회장은 그가 홍명보 감독의 제안을 받고 한국행을 고민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 주변을 설득하며 도움을 준 인물이다. 세키즈카 다카시 일본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그와 함께 대학생활을 한 절친한 후배다. 한국이 올림픽 축구에서 사상 첫 메달을 꿈꾸는 것처럼 그의 조국도 1968년 멕시코올림픽 이후 44년 만에 동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흥미로운 것은 세이고 코치 자신이 홍명보호에 합류한 출발과 끝 모두 한일전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홍명보호를 위해 일을 시작한 뒤 처음 치른 공식적은 바로 2009년 수원컵에서 벌어진 일본 U-20 대표팀과의 대결이었다. 바로 현재의 홍명보호처럼 일본 올림픽대표팀의 근간이 되는 팀이었다. 당시를 회상한 세이고 코치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한국의 벤치에 서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이 든 경험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마지막 공식전이 될 올림픽 3, 4위전에서 또 다시 조국을 만났다. 일각에선 그에게 이중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나는 일본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시선, 반면 또 다른 하나는 역시나 심정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일본인이기에 느끼는 거리감이었다. 두 시선 모두 세이고 코치를 단순히 대표팀 승리를 위한 도구적 역할에 국한시킨 평가고 의견들이다.

하지만 세이고 코치는 진심으로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고 이기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홍명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 남자의 원대한 꿈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늘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를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세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며 자신을 믿고 기회를 준 홍명보 감독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표현을 썼다.

특히 마지막에 남긴 세이고 코치의 말은 인상 깊다. “일본은 조국이다. 하지만 지금 내 정체성은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과 유니폼이 말해준다. 나는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승리를 위해 내 위치에서 전력을 다할 것이다. 내 역할은 라이벌인 동시에 발전을 위해 가장 협력해야 할 한일 양국의 축구를 잇는 작은 다리가 되는 것이다. 이 승부는 가장 치열한 한일전이겠지만 동시에 양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출발이 되어야 한다.”

8월 10일, 카디프시티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복잡한 감정의 밤을 맞게 될 한 남자. 이케다 세이고 코치의 특별한 한일전은 곧 시작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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