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나는 오늘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올림픽대표팀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 치른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이 끝난 뒤 홍명보 감독은 언론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기성용에 대한 숨겨둔 평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뉴질랜드전이 끝나고 기성용은 언론들로부터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후반전에 결승골이 된 남태희의 골을 도운 환상적인 롱패스 덕분이었다. 뉴질랜드의 닐 엠블린 감독이 보낸 “경기를 지배했다”는 극찬은 정말 그날 경기에서 기성용이 히어로였다고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가 아닌 우리 쪽의 감독 기준으로 본, 기성용에 대한 표면 아래의 숨은 평가는 썩 뛰어나지 않았다. 그는 “실점 장면을 천천히 분석해 보면 수비수들보다 기성용의 책임이 컸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전에서 기성용이 보여준 뛰어난 공격력과는 대비된 수비가담과 커버플레이, 2선에서 침투하는 선수에 대한 저지 등 수비적 전술이 미흡했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 영국 스티브니지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마지막 평가전. 기성용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홍명보 감독이 지적했던 반쪽을 채워 나왔다.


■ 뉴질랜드전 기성용이 50점이었던 이유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 본선을 준비하며 일찌감치 수비형 미드필더 둘을 배치하는, 더블 볼란치 전술을 택했다. 그리고 18명이라는 제한된 본선 엔트리 숫자에도 불구하고 필드 플레이오 포지션 중 유일하게 수비형 미드필더만큼은 두배수의 선수(기성용, 박종우, 한국영+유사시 구자철)를 선발했다. 홍명보 감독의 계획은 분명했다. “올림픽 본선 상대들은 우리보다 1대1 상황에서의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 미드필드에서의 1차 저지가 강력하지 않으면 우리 수비라인이 상대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다. 더블 볼란치는 우리 팀의 수비 밸런스를 위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홍명보호에게 있어 수비의 출발이다. 포백 라인을 보호하고 블록 형성과 간격 유지를 컨트롤해야 한다. 홍정호가 부상으로 빠져 중앙 수비의 무게감이 떨어지면서 더블 볼란치의 수비적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뉴질랜드전이 끝나고 홍명보 감독이 기성용에게 박한 평가를 내린 것은 자기 포지션에서의 1차적 역할을 확실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전 전반전에 기성용은 수비 밸런스 유지를 고려하지 않게 지나치게 전진했고 공격에 신경을 쏟았다. 때문에 파트너인 박종우의 부담이 커졌다. 후반 실점 장면에서도 2선에서 파고드는 뉴질랜드 선수들에 대한 압박과 움직임 방해를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기성용의 영향력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기성용은 달라진 모습이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터트린 중거리슛 골과 3분 뒤 박주영에게 배달해 준 완벽한 프리킥의 공격적인 모습은 뉴질랜드전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수비를 의식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 중원에서 세네갈의 공격 전개를 저지하고 무리한 드리블보다는 빠른 패스 연결로 전체적인 플레이를 조립했다.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는 강한 압박과 밀착 마크로 세네갈 선수들의 전진을 방해했다. 후반에 세네갈이 공격 템포를 올리고 저돌적으로 들어오자 기성용은 공격보다 수비에 더 비중을 두고 확실히 내려와 자물쇠 역할을 했다. 190cm가 넘는 키에 유연하고 빠르기까지 한 세네갈 선수들을 상대로 대표팀 필드플레이어 중 최고의 체격을 지닌 기성용은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내내 자신에게 주어진 수비적인 전술을 충실히 소화한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의 활약은 홍명보 감독에겐 1골 1도움 이상으로 반가운 모습이었다. 후반 막판 구자철이 교체돼 나가며 채워 준 주장 완장에 걸맞은 책임감이었다.

■ 박주영, 1년 전으로 시간을 돌리다
세네갈전에서 홍명보 감독이 반가웠던 또 다른 선수는 박주영이었다. 원톱을 가동하는 홍명보 감독의 전술에서 부동의 주전인 박주영의 활약 여부는 올림픽에서의 성공으로 직결된다. 병역논란으로 도덕성이라는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선수를 올림픽으로 데려 가는 결단은 홍명보 감독에겐 양날의 검과 같다. 아스날에서 한 시즌 동안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며 경기 감각을 잃은 박주영이 부진할 경우 홍명보 감독도 함께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박주영의 경기력은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 근 4개월 만의 실전 무대였던 뉴질랜드전에서 감각적인 힐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던 박주영은 영국에서 진행한 1주일 간의 훈련에서 한층 더 팀에 녹아들었음을 세네갈전에서 증명했다. 세네갈의 장신 수비수들을 농락한 기성용과 합작한 세트피스 골은 박주영이 문전에서 보여주는 순발력과 움직임은 아스날 합류 전 대표팀과 AS모나코에서 보여준 모습들이었다. 6월 말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진행한 이케다 세이고 코치와의 특별 훈련을 통해 경기를 위한 체력은 물론 감각, 시야, 문전에서의 자신감 모두 1년 전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증명했다.

세네갈전을 마친 상황에서 시각은 엇갈린다. 스위스는 물론 스페인까지 제압했던 세네갈을 3-0으로 완파한 결과는 무척 고무적이다. 홍명보호의 컨디션과 준비가 본선에 맞춰 제대로 올라오고 있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평가전은 평가전일 뿐이다라는 냉정한 시각으로 보는 것도 일견 타당한 시각이다. 축구는 상대적이고 본선 조별리그에서 우리가 상대할 멕시코, 스위스, 가봉이 세네갈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승리를 담담하게 평가했다. 부상 없이 마무리된 것이 가장 반가운 성과라고 말했다. 선수들 역시 자신감은 환영했지만 자만심은 경계했다. 1주일 뒤 있을 멕시코전에 대한 준비에 더 집중하겠다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가장 믿음직스럽고 반가운 것은 바로 결과에 도취되지 않은 그 모습들이었다.

글=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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