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권태정 기자= 하와이가 미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국제 경기 개최 기회를 맞았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형편없는 잔디 사정 때문이었다. 해프닝의 이면엔 여자축구대표팀에 대한 미국축구계의 푸대접이 있다.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우승 기념 투어를 진행 중인 미국여자축구대표팀은 6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트리니다드토바고와의 친선전을 경기 하루 전날 취소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경기가 열리기로 한 하와이 알로하스타디움의 잔디 상태가 심각하게 훼손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투어 도시에 하와이가 포함된 것은 현지인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와이가 국제 축구 경기를 유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와이는 미대륙 서쪽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쪽으로 약 4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섬이다. 미국여자대표팀 골키퍼 호프 솔로는 “하와이에서 경기를 하게 된 것이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하와이안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오는 날을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열릴 현장에 와보니 도저히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알로하스타디움에 깔려 있는 인조잔디는 질도 나쁘고 낙후돼 있었다.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알로하스타디움의 인조잔디는 수년간 관리 없이 방치돼 있는 듯 보이며 곳곳에 틈이 벌어져 있었고, 작고 날카로운 돌도 흩어져 있었다.

앞서 4일에는 베테랑 미드필더 메간 라피노가 훈련을 받는 도중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다. 훈련장 역시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잔디 상태가 엉망이었다. ‘2016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주축 선수를 잃은 미국여자대표팀은 부상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결국 미국여자대표팀은 하루 전인 5일 그라운드 상태를 확인한 뒤 경기 취소 의사를 밝혔고, 친선전 상대인 트리니다드토바고 여자대표팀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티켓을 예매한 팬들에 대한 환불이 진행됐고, 선수들은 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갑작스런 경기 취소는 이번 우승 투어를 기획하고 진행한 미국축구협회(USSF)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경기장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투어 10경기 중 8경기가 인조잔디가 깔린 경기장에 배정됐으며, 인조잔디의 질이 떨어지는 곳도 다수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남자대표팀과의 형평성 문제로도 이어졌다. 올해 미국에서 열린 남자대표팀의 15경기 중 10경기가 천연잔디 구장이었고 나머지 5경기도 USSF가 임시 천연잔디를 깔았다. 반면 여자대표팀은 14경기 중 6경기만이 천연잔디 구장이었다. 나머지 경기는 인조잔디에서 진행됐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조잔디는 일반적으로 천연잔디에 비해 위험한 것으로 인식돼 왔다. 미끄럼 저항이 약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쉽게 미끄러진다. 근육과 인대 등에 물리적으로 손상을 줄 위험이 높다.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도 떨어지며, 마찰로 인한 찰과상과 화상의 위협도 있다. 지난 캐나다 여자월드컵 전 경기가 인조잔디에서 치러진다는 결정에 여러 여자 선수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미국여자대표팀 선수들은 ‘더플레이어스트리뷴’을 통해 “단순히 인조잔디냐 천연잔디냐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장의 상태와 선수들의 안전에 대한 것이다. 선수들이 뛰는 경기장은 국제 기준에 맞게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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