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주헌 MBC 축구해설위원이 떠났다. 축구의 본고장이 유럽에서 직접 그 분위기를 느끼고, 그곳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해설위원은 첼시와 마카비텔아비브 경기를 시작으로 토트넘홋스퍼와 카라바흐, 스완지와 에버턴, 토트넘과 크리스털팰리스, 호펜하임과 보루시아도르트문트 경기를 관람한다. 이 글은 이 해설위원의 솔직한 발자국이다. <편집자주>

#금요일
스완지와 에버턴의 경기가 있기 전날 기성용선수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런던에서 차를 렌트해 스완지로 떠났다. 다들 알다시피 잉글랜드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모두 한국과 반대로 운행한다. 게다가 차는 수동이다. 오토메틱 차량은 전혀 구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수동에다가 왼손으로 기어를 변속하는 게 부담됐다. 다른 차량을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잉글랜드에서 운전 좀 해본 남자가 되고 싶었기에 수동도 괜찮다고 차를 빌렸다. 런던과 스완지와의 거리는 200마일로 꽤 긴 거리다. 형욱이 형이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오지 않는 바람에 3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나 혼자 운전해야 했다. 나보고 국제면허증 빨리 안 만든다고 닦달했던 형인데 본인이 면허증을 가지고 오지 않다니. 그래도 형욱이 형 덕분에 기성용을 만날 수 있었기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시동을 10번이나 꺼트리면서 꾸역꾸역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성용과의 만남
만나자 마자 런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얘기와 함께 수동차량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푸념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기성용 선수가 ‘너무 힘드셨겠네요~어휴’ 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운전으로 쌓인 피로감이 싹 사라졌다. 카디프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었다.양념치킨, 파전, 김치찌개 돌솥비빔밥.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보니 반가웠다. 기성용 선수는 양념치킨을 매우 맛있게 잘 먹었다. 저렇게 맛있게 치킨을 먹는데 한국에 있는 다양한 맛들의 치킨들이 얼마나 먹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념치킨을 특히나 맛있게 먹었다. 사석에서 처음 만난 기성용 선수는 이전에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하면서 갖고 있던 내 작은 편견을 날려주었다. 매우 친절하고 솔직했던 언행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매우 순수한 소년 같았다. 워낙 시골에 있는 스완지기에 외로움을 토로했지만 겨울이면 아기와 아내가 온다고 했다. 내가 두 달 먼저 아이를 본 선배로서 아이가 오면 절대 외롭지 않을 거라고 외로운 시간이 없을 거라고 얘기했다.

다음날 화창한 날씨 속에 스완지와 에버턴의 경기를 관전했다. 참 작은 도시지만 경기장의 관중들의 열기는 런던에 있는 첼시, 토트넘 팬들과 다름이 없었다. 마치 응원을 하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렸던 사람들처럼 선수들의 움직임, 심판의 판정하나하나에 뜨겁게 반응했다.

이날 경기에서 기성용은 후반에 출장했다. 상대인 에버턴이 워낙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다 보니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스완지였다. 경기는 0-0으로 끝이 났다. 경기 뒤 기성용을 잠시 볼 수 있었는데 아쉬운 표정이었다. 아마도 좀 더 긴 시간을 뛰었으면 기성용 선수나 나도 만족할 수 있었을 테지만 스완지의 감독인 몽크 감독은 기성용 선수가 대표팀 차출과 출산문제로 장시간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기성용의 출장시간을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완지는 특이하게도 선수들이 믹스트존을 통과하게 만들어 놓지 않고 하나의 방처럼 만들어 놨다. 그래서 선수들은 기자들이 특별히 선수들을 잡지 않으면 그냥 한 바퀴 돌아서 퇴장한다. 스완지의 모든 선수들은 무조건 이 공간을 들렀다 가야 한다. 웃기고도 특이한 장면이었지만 팬들과 언론에 대한 책임감을 선수에게 요구하는 것 같아 보였다.

스완지의 유니폼만큼이나 깔끔한 외관을 자랑했던 스완지의 리버티 스타디움을 뒤로하고 다시 5시간동안 혼자 운전해 런던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오늘은 손흥민의 토트넘이 이청용의 팰리스와 경기를 갖는 날이다. 그래서 아침에 서둘러서 일어났다.

지난 목요일 손흥민은 유로파리그 카라바흐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했고, 이 골은 결승골이었다. 잉글랜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래서 오늘이 더 기대되었다. 지난 스완지 경기장에서도 그렇고 이번 토트넘 화이트 하트레인으로 가는 길에서도 느낀 거지만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가지 전까지는 매우 차분한 모습이다. 거칠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경기장 안에서는 어떤 팬보다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매우 얌전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손흥민의 등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토트넘의 메가스토어에 들르려고 했지만 이미 줄이 길게 서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입장하는 사람들을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매주 경기가 열리지만 이렇게 본인들의 응원하는 팀의 용품을 사려고 줄까지 서가면서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손흥민은 에이스
다들 알다시피 손흥민은 이번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직접 본 손흥민의 모습은 화면으로 본 것 이상으로 ‘파워풀’ 했다. 손흥민이 볼을 잡고 뛰어갈 때 상대팀 선수들이 당황하는 표정을 가까이서 볼 때는 통쾌하기 까지 했다. 단지 결승골을 넣었기 때문에 손흥민을 토트넘의 에이스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포지션 경쟁자인 샤들리는 부진하고 토트넘의 에이스였던 라멜라 역시 이전의 기량을 찾지 못하고 있다. 뎀벨레 역시 지금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토트넘은 손흥민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4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손흥민을 영입했다. 그리고 손흥민에 그에 대한 합당한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유로파리그와 이번 경기까지 손흥민은 너무 많은 양을 과하게 뛰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기장 곳곳을 쉴 새 없이 누볐다. 경기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손흥민의 에너지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포체티노 감독은 이런 선수가 필요했다. 이번 시즌 손흥민이 있기 전까지 토트넘의 공격진은 패기가 없었다. 공을 매우 잘차는 에릭센이 없으면 토트넘의 공격진은 표류했다. 그러나 손흥민의 영입이후 손흥민이 어디로 공격해야하는지 어떤 속도로 팀이 나아가야 하는지 선수들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어느 정도로 평가받는 선수가 될 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유로파리그와 EPL 두 경기를 지켜본 결과 적어도 손흥민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이미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한 외국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냐면서 그렇다고 얘기하니 손흥민이 너무 잘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장난스럽게 400억이면 너무 비싸지 않냐고 물어보니 꽤 인상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다. 손흥민은 볼을 뺏을 줄 아는 선수이고 빠른 드리블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슈팅은 과감하고 강하다’ 라고 매우 구체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벌써 손흥민은 400억짜리 비싼 선수가 아닌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에서 중계방송을 통해 한국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을 봐도 흥분되는데 내 눈으로 직접 손흥민의 세 골을 보는 감격을 느꼈다. 잉글랜드에서 챔스, 유로파 그리고 EPL까지 5일동안 4경기를 봤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경기를 보는 것도 대단한 체력을 요구하는 것 같다. 아직 내 축구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잉글랜드를 떠나 호펜하임의 김진수와 도르트문트의 박주호 선수가 맞붙는 경기를 보러 독일로 떠난다.

글/사진= 이주헌 MBC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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