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축구의 나라다. 주말 밤이면 남자들은 펍에 모여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프리메라리가를 본다. 베트남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럽 인기 팀의 ‘짝퉁’ 유니폼을 파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20대 남자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유럽 축구다. 월요일에 모여 주말에 열렸던 유럽축구 이야기를 한다. K리그는 ‘유럽축구의 나라’ 베트남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유럽축구를 사랑하는 나라에서 K리그라니.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첫 걸음은 중계권 수출이었다. K리그가 베트남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해외 마케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궁금했다. K리그가 베트남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떠났다. ‘풋볼리스트’는 K리그 생중계 의미와 그 경제적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정치수도 하노이로 향했다.<편집자주>


[풋볼리스트=하노이(베트남)] 김환 기자= 베트남 현지 시간으로 11월 21일 토요일 오후 1시.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내려 급하게 짐을 찾아 시내로 향했다. K리그 경기가 이미 현지에서 생중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시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전북현대와 성남FC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37라운드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하노이 시내의 푸쿠카페(PUKU CAFE)로 향했다. 1층은 커피숍, 2층은 펍이다. 주말 저녁 축구를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다가 알게 됐다. 미리 섭외를 해둔 곳이다. 카페에 들어서자 한 직원이 “한국에서 축구 보러 왔으면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안내했다. 카페 2층에 걸려 있는 TV 두 대에는 전북과 성남의 K리그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K리그가 베트남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났다.

카페 관계자는 “한국 축구가 베트남에 중계되고 있는지 몰랐다. 보통 주말 낮에는 TV를 꺼뒀다가 저녁 시간에 EPL이 시작하면 켠다. 특별히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TV를 켜주겠다”고 했다. ‘K리그’가 아닌 ‘한국 축구’라는 단어를 썼다. 하노이에서 축구보기 가장 좋은 장소에서 K리그를 모른다는 건 일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카페에는 10여 명의 손님이 있었으나 TV에 관심을 갖는 건 1~2명뿐이었다.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커지면 힐끗 TV를 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카페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K리그 생중계는 실패했을까? 단지 이 카페에서만 무관심한 것일까? K리그가 베트남 내에서 스포츠 컨텐츠로서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풋볼리스트’는 베트남 하노이의 곳곳에서 축구와 관련된 관계자를 만나 목소리를 담았다.

내수 시장 침체에 찾아온 ‘황금 기회’
K리그는 지난 10월부터 베트남 국영방송국 VTV 계열의 24시간 스포츠 채널 ‘테타오TV(TheThaoTV)’와 ‘봉다TV(Bongda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스플릿시스템 이후 10경기가 대상이었다. K리그가 해외 생중계 되는 건 2011년 미국 ‘아메리카원’ 채널 이후 4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K리그의 해외 생중계는 4년 전과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컨텐츠 수출에 그쳤다면, 베트남의 경우에는 수출뿐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계권 판매 이후 뒤따라오는 산업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베트남이 K리그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할 수 있는 가까운 나라인데다가, K리그와 베트남이 아시아라는 같은 시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K리그의 내수 시장 자본은 점점 말라가고 있다. 매 시즌 투자 규모가 줄어들면서 모든 팀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대부분의 팀은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부족하다. 축구단의 기본 요소인 자생력을 갖춘 팀은 거의 없다. 모기업 또는 시∙도에서 돈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구단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팬들을 경기장에 모은다는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다. K리그 구단이 생각하는 돈 버는 방법은 선수를 해외로 이적시키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현지 생중계는 놓쳐서 안 될 기회다. 동남아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물론 J리그는 이미 2012년부터 베트남과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 7개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K리그엔 한류라는 무기가 있다. 베트남이 J리그 대신 K리그를 선택한 것도 한류의 유행이라는 시대적인 흐름과 함께 한다.


그들은 왜 K리그를 선택했나
베트남 국영방송사 VTV의 유료 채널 계열인 VTVcab 본사를 찾아갔다. 호앙 은옥 후안 대표를 만났다. VTVcab은 K리그를 중계하는 스포츠 채널인 테타오TV와 봉다TV를 운영한다. 특히 봉다TV는 EPL은 기본이며 이탈리아세리에A, 독일분데스리가, 스페인프리메라리가, 프랑스리그앙의 중계권을 가지고 있다.

호앙 대표의 인터뷰 내용은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K리그 생중계를 결정한 것에 대해 “베트남 젊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하다. 패션,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많은 분야에서 한국의 컨텐츠를 좋아한다. 베트남 문화는 일본보다 한국 문화와 더 가깝다. 축구에 있어서도 일본의 컨텐츠보다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어 “베트남에서는 한국과 일본 축구를 아시아에서 최고로 생각한다”며 “두 나라 중 누가 낫다고 평가할 수 없다. 다만 한국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고 했다.

K리그의 흥행 가능성보다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보고 중계를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K리그를 축구로 보는 게 아니라 한류의 하나로 보고 있었다.

물론 K리그를 중계하는 이유가 한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VTVcab의 축구 컨텐츠는 모두 현지 시간으로 저녁에 몰려 있다는 특징이 있다. 2013년부터는 주말 낮에 일본 J리그가 중계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 여름 베트남의 축구영웅 레콩빈이 J2리그 콘사도레삿포로에 입단하면서부터는 그 열기는 매우 뜨거워졌다.

하지만 2014년 레콩빈이 자국리그로 돌아오자 J리그의 열기는 차갑게 식었다. 컨텐츠에 대한 관심도도 크게 떨어졌다. J리그를 통해 생성되는 이야깃거리가 사라지자 VTVcab도 중계를 중단했다. 그리고 2015년 가을, K리그가 손을 내밀었다. K리그 중계는 주말 낮 컨텐츠라는 시간적 특징과 한류가 어우러져 이뤄진 셈이다.

베트남에서의 K리그 ‘성적표’
K리그 10경기는 큰 사고 없이 베트남 현지에 생중계됐다. 반응이 궁금했다. K리그를 중계한 응우엔 레 후위 해설위원을 만났다. 현지에서는 3대 해설위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응우엔 해설위원은 “아직까지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내 주위에서는 K리그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 축구보다 수준이 높은 건 핵심적인 이유가 아니다. 시간대가 좋은 게 최대 강점이다. 주말 낮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있다”고 했다.

응우엔 해설위원의 말을 이해하려면 베트남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단체 생활을 좋아한다. 같이 보고, 같이 먹고, 같이 움직인다. 특히 K리그가 중계되는 주말 낮은 집에서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시간대다. 더운 날씨 때문에 아침이나 저녁에는 주로 외부 활동을 하며 점심 시간대에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노이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우예진씨는 “베트남 친구들은 새벽 6시부터 나가 축구를 한다. 대낮에는 활동하기 힘든 더운 날씨라서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다. 점심때는 낮잠을 자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고 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주말 생활 패턴을 봤을 때 K리그가 중계되는 오후 1~2시는 TV보기 최적의 시간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시청률이다. VTVcab이 제공한 시청률에 따르면 전북과 성남의 경기의 평균 시청률은 0.1%, 최고 시청률은 0.2%였다. 다음날 열린 수원삼성과 포항스틸러스의 시청률은 최고 0.4%까지 올랐다. 같은 시기에 분데스리가가 0.1~0.2%, EPL이 0.2~0.3%,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가 0.3~0.4% 정도를 기록했다는 걸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는 결과다.

베트남의 스포츠 채널은 국내처럼 시청률에 집착하는 구조가 아니다. 축구 채널에서 집행되는 광고의 종류도 많지 않은 편이다. K리그의 베트남 진출에 있어서 현지 대리인 역할을 한 팜 호아이 남 G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스포츠 채널에 들어가는 광고는 맥주, 자동차 정도다. 나머지 광고는 모두 예능 채널로 가기 때문에 스포츠 채널 시장의 광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고 전했다.

K리그가 방영되는 스포츠채널이 유료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당 채널의 주요 수익원은 광고가 아닌 유료 시청자의 수다. 현재 더타오TV와 봉다TV의 시청 가구 수는 800만이다. 1000만 이상으로 유료 시청자를 늘리는 게 목표다. 다양한 컨텐츠를 해당 채널에 집어넣으면서 시청자를 유입시키는 게 중요하다. K리그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젊은 층들에게 호감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호앙 VTVcab 대표는 “기존 가입자를 위한 또는 새로운 가입자를 위한 컨텐츠 확보 차원에서 K리그를 중계한 것이다. 스폰서가 붙으면 좋으나, 큰 수익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방송국 측은 만족하는 눈치다. ‘우리도 한국 축구 컨텐츠가 있다’라는 점에 있어서 만족도가 높다. 시청률이 성공의 척도가 아니기에 방송국 자체 의견도 굉장히 중요하다. 다오 부 하이 봉다TV 프로듀서는 방송국 내부 분위기를 전하며 “K리그와 J리그의 수준 차이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컨텐츠에 대한 매력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을 사로잡을 ‘스토리’가 필요해
베트남 방송국이 K리그 컨텐츠에 만족했다면, 그 다음 단계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방송국 분위기와 달리 일반 팬들 사이에서 K리그는 그냥 ‘한류’의 현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주말 낮에 축구가 방송되는데, 베트남 사람들에게 익숙한 한국이 나오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K리그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취재 도중 가능성 하나를 발견했다. 호앙 대표와의 만남에 앞서 VTVcab홍보팀 관계자와 미팅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통해 안정환이 인물이 베트남 전역에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안정환이 아직까지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호앙 대표와 인터뷰 도중 전북 공격수 이동국이 출연하는 KBS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이야기를 꺼냈다. 예능과 축구 스타를 엮은 예능이라고 소개했다. 호앙 대표와 홍보팀 관계자는 큰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VTVcab이 단순히 한국 컨텐츠 확보를 위해 K리그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K리그와 관련된 이야기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K리그와 관련된 방송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K리그 생중계에서 나아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호앙 대표는 “최상의 중계를 하고 싶은데 K리그에 대한 정보와 홍보 방법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에는 K리그를 띄울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응우엔 해설위원도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싶은데 한계가 있다. 한국 에이전트 측에서 보내주는 영어로 된 자료만 보고 중계를 하고 보도를 한다. 조금 한계를 느꼈다. 기록적인 부분은 확인이 가능하나 팀의 역사나 최근 스토리는 알기 힘들다”고 했다.

K리그가 직접 나서 해결할 부분이다. 베트남에서 한정된 정보로 K리그 인기를 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프로축구연맹이나 각 구단이 능동적으로 나서 베트남 시장과 협력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선행되어야 하는 건 생중계 외의 다양한 컨텐츠 제공이다. 예능, 다큐멘터리, 문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K리그를 알릴 수 있는 도구를 찾아야 한다. 한국 드라마나 예능처럼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꾸준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K리그를 예능 또는 드라마 스타와 접목시키는 방법도 좋은 예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윤두준은 K리그 홍보대사다. 한류 연예인이 K리그와 만난다면 베트남이 필요로 하던 이야깃거리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다. J리그는 수많은 투자를 하고도 베트남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환경이 너무나도 좋다. 한류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

프로축구연맹과 VTVcab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베트남 생중계를 성사시킨 배지선 IAM 이사는 “베트남 사람들이 인정하는 컨텐츠로 자리 잡으려면 단순히 중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추가적인 스토리가 따라와야 한다. 이번 10경기 중계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오긴 했으나, 잠재성에 비하면 만족 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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