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권태정 기자= 그라운드의 끝과 끝에서, 친구는 함께 뛴다.

“다치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잘 하자!”

지난 2일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이천대교와 인천현대제철의 ‘IBK기업은행 2015 W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시작되기 직전, 김정미(31, 인천현대제철)와 전민경(30, 이천대교)이 나눈 이야기다. 맞대결을 펼치는 매 경기마다 둘은 이렇게 서로를 격려한다.

1차전은 0-0 무승부로 끝났다. 김정미와 전민경은 각각 결정적인 선방을 해내며 무실점을 기록했고, 경기 전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이제 승부는 9일 오후 7시 인천남동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리는 2차전으로 넘어갔다.

둘도 없는 절친이자 피할 수 없는 라이벌인 김정미와 전민경의 관계는 울산 현대청운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전민경은 포지션이 없었던 신입생 시절, 골키퍼를 맡았던 선배가 훈련에 불참하면서 우연히 골키퍼 장갑을 끼게 됐고, 김정미는 필드플레이어로 뛰다 2학년 말부터 골키퍼로 보직을 바꿨다. 두 동급생의 우정과 경쟁이 함께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두 골키퍼의 라이벌 관계는 더 두터워졌고, 현대제철과 대교라는 양강 실업팀에 각각 입단하며 매 시즌 피할 수 없는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주전 골키퍼 경쟁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김정미가 2003년, 전민경이 2004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둘은 여전히 대표팀의 골문을 지키고 있으며, 현재는 김정미가 좀 더 앞서있는 상태다.

친구이자 라이벌로 지내온 16년은 둘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김정미와 전민경은 둘의 관계를 “부부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다투기도 많이 다퉜지만, 결국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이도 서로였다.

W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것만 벌써 다섯 번째. 둘은 또 한 번 서로를 응원하며 진정한 승부를 가릴 준비를 하고 있다. 2차전을 앞둔 김정미와 전민경을 각각 인터뷰한 뒤 재구성했다. 둘은 닮은 듯 달랐다.

내가 말하는 너
김정미가 말하는 전민경 감자(전민경의 별명)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에너지가 정말 많아요. 저는 장난기가 없는 편인데 걔랑 있으면 장난을 많이 치게 돼요. 같이 운동하면 너~무 재밌어요. 심심할 틈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해줘요. 같이 있으면 운동이 즐겁고, 집중력도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가끔 ‘칼로 물 베는’ 싸움도 하긴 하지만...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괴롭히고 싶은 그런 친구예요.
전민경이 말하는 김정미 진짜 많이 싸웠어요. 별 것도 아닌 걸로... 운동장에서도 싸우고, 방에서도 싸우고... 진짜 사소한 걸로요. 밥 먹으러 같이 가자고 말 안 했다고 싸우고요. 캐나다 월드컵 가서도 한 번 싸우고는 함께 몬트리올 시내를 걸으며 다시 화해하고 그랬죠. 그때 “우리 부부 같지 않냐?” 이러면서 같이 사진도 찍고... 제가 정리 같은 걸 잘 못하는데 정미가 제 빨래도 접어주고 그런다니까요. 대표팀에서 같은 방을 오래 쓰면서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속에 있던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니까 힘든 거 이야기할 사람도 걔밖에 없어요.


1차전을 마치고...
김정미 이천대교 홈이었다 보니 그라운드 적응 면에서 우리가 불리했던 면이 있었어요. 2차전은 우리 홈에서 열리는 만큼 우리에게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날씨가 좀 변수일 것 같아요. 비가 오면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드니까요. 팀 분위기는 좋아요. 2차전에서 모든 승부가 나는 상황이니까 다들 이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각오예요.
전민경 1차전에서 득점을 못한 것은 아쉽지만 경기력 면에서는 우리가 인천현대제처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 분위기도 좋았고, 자신감도 더 생겼어요. 저만 긴장 안하면 될 것 같아요. 죽기 살기로 해야죠.

無연락의 속마음
김정미 경기 앞두고 연락 하는 건 그때그때 달라요.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고. 이번에는 안 하고 있는데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냥 경기 날 만나서 “야! 다치지 말고 잘해라!”그런 말이면 됐죠. 경기 끝나면 악수하면서 수고했다고 얘기하고... 실업팀 와서 늘 만나왔기 때문에 챔피언결정전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느끼진 않아요. 리그 경기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전민경 에이, 무슨 연락을 해요.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2차전까지 다 끝나야 편하게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친한 친구지만 조심스럽기도 해요. 사실 제 지금 상태가 그래요. 누구와도 연락 안하고 있거든요. 친구랑 통화하고 웃고 이야기할만한 여유가 없어요. 긴장돼요. 아, 인터뷰하니까 더 긴장되잖아요. 오늘 잠은 다 잤네.

골키퍼는 골키퍼를 응원한다
김정미 감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경기할 때 우리팀 공격 상황이면 우리가 골을 넣기를 당연히 바라기도 하지만, 상대 골키퍼가 잘 막으면 “오!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잘 막으면 잘 막았다 생각하고 킥을 길게 잘 차면 잘 찼다 생각하고 그래요.
전민경 골키퍼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골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공격수가 정말 잘 차서 골이 들어가는 거는 어쩔 수 없지만 골키퍼가 실수로 실점한다던가 하는 것은 싫어요. 상대편이라도 마음 아파요. 같이 힘든 거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실수하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거 아니까... 저는 그렇더라고요. 정미도 그렇고, 모든 골키퍼들이 좋은 경기 했으면 좋겠어요. 다치지 않고요.

서로에게 보내는 2차전 각오
김정미 늘 같은 이야기예요. 실수 하지 않고, 다치지 않고 둘 다 좋은 경기했으면 좋겠다고... 올 한해의 결실을 맺는 자리니까요. 우승에 대한 간절함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거예요. 누가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지, 컨디션이 누가 더 좋은지가 중요하겠죠. 불꽃 튀기는 경기를 해보고 싶어요.
전민경 잘했으면 좋겠어요, 둘 다. 정미는 잘할 거에요. 여태까지 잘 해왔고 누구보다 경험도 많고 큰 경기에서 잘 하는 선수니까요. 네가 최고다, 정미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 제 입으로 이런 말 하려니 민망한데요.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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