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서울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 역에서 보조구장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몇몇은 ‘호덕’, ‘용섭’ 등의 손팻말을 만들어 들고 왔다. 1일 오후 열린 청춘FC와 서울이랜드FC의 연습경기는 일찍 찾아온 팬들에게 포위 당했다. 1,000석이 부족했던 관중들은 근처 풀밭에 둘러 섰다. 바위 위에 걸터앉은 관중들을 통제하느라 킥오프가 지연될 정도였다. KBS2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 형성한 팬덤이다.

벨기에 전지훈련을 마치고 온 청춘FC의 국내 첫 경기 상대는 서울이랜드였다. 경기 결과는 제작진 요청에 따라 명시하지 않는다. 예상보다 흥미진진한 경기였던 건 분명했다. 경기 전엔 프로와 아마추어의 수준 차이가 클 것으로 보였다. 실제론 팽팽했다. 서울이랜드가 2군에 가까운 선수단으로 나오긴 했으나, 청춘FC는 90분 내내 높은 집중력과 끝없는 질주로 서울이랜드의 프로 선수들을 괴롭혔다.

서울이랜드와 청춘FC, '미생‘들끼리 맺은 인연

서울이랜드는 이들이 상대하기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춘FC는 ‘축구 미생’들의 이야기를 표방한다. 서울이랜드의 프로 선수들 중엔 아직 완생이 되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최유상과 주민규가 그렇다.

올해 초 서울이랜드의 공개테스트 ‘디 오퍼 2015’에서 546대1의 경쟁률을 뚫고 프로가 된 최유상은 “청춘FC 중 나만큼 노력하지 않은 선수가 있겠나.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춘FC 멤버 중 염호덕, 이동현, 허민영 등 여러 선수들은 ‘디 오퍼’의 지원자였고, 그 중엔 꽤 두각을 나타낸 선수도 있었다. 테스트 당일 최유상의 컨디션이 나빴다면 청춘FC 중 한 명이 서울이랜드에 입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시즌 K리그 챌린지 득점 선두(18골)를 지키며 2부의 스타로 떠오른 주민규도 3년 전 드래프트에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때 ‘내겐 재능이 없는 걸까.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때 축구를 접었다가 뒤늦게 다시 시작했다면? “아마 나도 청춘FC에 지원했을 거다. 뽑혔을 거라 장담하진 못하겠다.”

두 팀 선수들 사이엔 인연도 많다. 체중 감량으로 방송 분량을 많이 가져가는 김바른은 중학교 시절 주민규와 중학선발팀에 함께 뽑혀 일본으로 원정을 다녀왔다. 주민규는 당시의 김바른을 기억하고 있다. 최근 체형 변화를 위해 체중 조절 중인 주민규는 “김바른 선수와 나는 비슷한 처지”라며 웃었다.

청춘FC에서 가장 유쾌한 멤버 김용섭(관중들은 법대생 김용섭이 킥을 할 때 “법대로 해라”라는 응원을 보냈다)은 최유상과 청주FC에서 8개월 정도 함께 뛰며 친분을 쌓았다. 최유상이 청춘FC 모집 공고를 처음 봤을 때도 두 선수는 통화 중이었다. 김용섭은 이미 지원서를 낸 상태였지만 합격 여부를 알 수 없어 일단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유상은 나중에 방송을 통해서야 친구의 합격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왜 거짓말했냐”고 핀잔을 준 뒤 축하를 보냈다.

끝을 알 수 없더라도 도전하라

청춘FC는 때로 프로그램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에 직면하기도 한다. 생업을 중단하고 축구를 다시 하겠다며 모인 선수들에게 미래를 제시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재형 PD는 처음부터 “우린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멤버들이 계속 선수로 남을 수 있을지 아무도 확답을 해줄 수 없다.

비슷한 시기를 경험해 본 주민규와 최유상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어쨌거나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나라도 지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규는 “처음엔 청춘FC가 선수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여기 모인 팬들을 보니까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이 정도라면 프로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겠나”라고 했다.

“나는 드래프트에 실패한 뒤 어렵게 프로에 입문했다. 모든 게 순탄한 선수들보다 내가 더 절실하다. 그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청춘FC) 선수들도 절실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보고 있는 나도 동기부여가 된다.”

최유상은 “지금 나이가 아니면 축구선수에 도전조차 할 수 없다. 그 점이 내겐 가장 중요했다. 다른 일을 하며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축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청춘FC가 진짜 기회건 아니건 나 같아도 도전했을 거다. 도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훗날 자신을 뒤돌아봤을 때 도전하는 모습이 보여야 후회가 없다.”

“당장 작년에 같은 처지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감이 된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나도 마지막 도전을 앞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공익근무요원 생활 틈틈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프로 선수 같은 생활 패턴을 만들려 노력했다. 청춘FC 첫회에서 테스트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모습과 나도 똑같았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아니까”

안정환 감독은 벨기에 전지훈련 방송분에 나온 대로 선수들을 엄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팬들이 모인 첫 경기, 선수들이 들뜰까봐 인터뷰 금지령도 내렸다. 주민규는 “김바른은 워낙 공을 잘 찼던 선수다. 좋은 지도자를 만났으니 잘 풀릴 것 같다”며 팬심 섞인 응원을 보냈다. 축구 선수들 중에서도 청춘FC의 애청자가 많다. 김영광은 청춘FC의 예상 밖 선전에 대해 “절실하니까 저런 모습도 보일 수 있는 거다. 축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다”라고 했다.

최유상은 김용섭이 벨기에에 있는 동안 휴대전화를 반납했기 때문에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용섭이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려고요”라며 일어났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건 없지만 용섭이가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아니까”라는 것이 그의 응원이었다. 이날 경기를 본 한 프로 구단 관계자는 “청춘FC 중 당장 프로팀에서 뛸만한 선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기회를 줄 만한 선수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서울이랜드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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