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환 / 권태정 기자= 명예회복, 야구도시, 무관심, 광주상무

광주FC 선수들이 지겹도록 들은 단어다. 부정할 수 없는, 모두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1년을 달렸다. 과정은 고단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남기일 감독대행의 “축구 변방에서 축구 중심지로 가자”라는 말만 믿고 묵묵히 따라 갔다.

그 끝에는 승격이라는 성과가 있었다. 광주가 K리그 클래식으로 돌아온다. 2012년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지 2년 만이다. 광주는 6일 열린 경남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1,2차전 합계 4-2로 승격을 확정했다.

2부 리그 4위에서 1부 리그 승격까지.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나자 광주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승격의 기쁨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힘든 역경을 딛고, 무관심 속에서 이룬 성공이기에 감동은 더 컸다.

광주 선수들 각각의 사정을 살펴보면 그들이 왜 승격을 그토록 원했는지 알 수 있다. 남 감독대행이 광주의 최대 강점으로 꼽은 ‘선수들의 간절함’과 비슷한 맥락이다. PO 2경기만 놓고 봐서는 광주 선수들이 경남 선수들보다 더 간절했다. “무조건 승격한다”라는 김호남의 카카오톡 남김말처럼 광주 선수들은 승격에 모든 걸 걸었다.

광주 선수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광주에서 4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한 선수들에다가 신인과 베테랑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승격을 해야만 하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임선영-김호남, ‘원년 멤버’의 힘
임선영(26)과 김호남(25)은 2011년 창단 첫 해부터 한 차례도 팀을 떠나지 않은 ‘원년 멤버’다. 이제는 날마다 붙어 다니는 단짝이 됐다. 4년간 한 팀에서 슬픔과 기쁨을 공유했으니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

이들은 4년간 열악한 팀 사정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올 시즌에는 나란히 7골씩 넣으며 광주의 공격을 책임졌다.

임선영은 “솔직히 곧바로 1부 리그로 올라올 줄 알았다. 그런데 2013년 승격에 실패를 하니까 정신이 바짝 차려야겠더라. 1부로 올라오는 데까지 2년이 걸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임선영은 올 시즌 후반기 주장을 맡으면서 자신을 버렸다.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주장 완장을 찬 뒤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남 감독대행이 임선영을 주장으로 낙점한 것도 적극적인 성격과 플레이를 원해서다.

대학 시절 당한 큰 부상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도 주장을 맡으면서 떨쳐냈다. 모범을 보여야하는 자리에 서서 적극적인 경기력으로 팀을 도왔다. 일명 ‘공을 예쁘게 잘 차는 선수’에서 ‘힘까지 겸비한 선수’로 변신했다.

광주 관계자는 “선영이는 4년간 주전으로 뛴 선수다. 팀에서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동료들도 그 부분을 인정하면서 잘 따라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김호남, 여름(이상 25) 등 동료 선수들과 이종민(31), 이완(30) 등 베테랑 선수들까지 임선영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팀 분위기를 주도했다.

임선영이 정신적으로 중심 역할을 했다면 김호남은 성실하고 적극적인 공격으로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 측면에서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동료 선수들을 도왔다. PO에서는 허리에 진통제를 맞고 2경기를 뛰며 동료 선수들의 모범이 됐다. “지금 조금 아프다고 못 뛰면 평생 후회한다”라는 각오였다.

임선영과 김호남은 2년 전 강등되던 당시를 생생히 떠올렸다. 임선영은 “힘든 점이 많았다. 동료들도 하나 둘 떠나는 상황이라 마음이 복잡했다. 그럴 때마다 (김)호남이와 대화를 하면서 승격을 약속했다. 우리 손으로 승격을 만들자고 말이다”고 말했다. 김호남도 “2년 동안 승격만 생각했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에게 광주는 자신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준 구단이다. 창단 초창기에는 벤치 설움까지 겪었으나 이제는 당당한 광주의 주인공이 됐다. 김호남의 카카오톡 남김말은 승격 후 "무조건 승격했다"로 바뀌어 있다.


꿈꾸는 신인들, ‘김호남처럼’
광주는 베스트11이 정해져 있지 않다. 시즌 초반부터 주전이 수차례 바뀌었다. 시즌 내내 1경기 이상 뛴 선수는 33명이나 된다. 반면 30경기 이상 뛴 선수는 2명뿐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보인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시즌 끝까지 긴장감이 컸다. 반대로 신인에게도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측면 공격수 김호남(25)은 팀 내에서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2011년 창단 멤버로 광주에 왔다. 그런데 2012년까지 두 시즌 동안 3경기에 출전한 게 전부다. 팀과 잘 어울리는 이름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

김호남은 “2년간 프로선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출전하지 못했다”면서도 “내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광주에 축구 인생을 걸고 싶었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고 했다.

김호남은 지난 시즌 7골 6도움으로 활약하며 주전 자리를 꿰차더니 올 시즌에도 7골 5도움을 기록하며 챌린지 베스트11에 선정됐다. PO 2차전에서도 골을 터뜨리며 승격에 쐐기를 박았다. 이만 하면 인생 역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안심할만한데 김호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늘 불안하다. 오늘 뛰지 않으면 내일부터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의 분위기가 나를 늘 긴장하게 만든다.”

2014시즌 신인들도 김호남을 보면서 한 시즌을 보냈다. 김호남처럼 훈련을 하다 보면 언제든지 선발로 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시즌을 보냈다. 2014년 신인 김영빈(23), 송승민(22), 이찬동(21)도 제2의 김호남을 꿈꾸며 광주에 입단했다.

대학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프로에 오면 1년차 때는 대부분 벤치 멤버라 뛰기가 쉽지 않는데, 이들은 올 시즌 주전과 교체 선수를 오가며 팀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이찬동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궂은일을 하며 광주의 뒷문을 지켰다. 6순위로 뽑힌 김영빈도 경험 많은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주전 중앙 수비수가 됐다. PO 2차전에서 뛴 23세 이하 선수는 이들 셋을 포함해 2년차 제종현(23), 오도현(20)까지 총 5명이다. 광주의 신인 선수들이 얼마나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기일 감독대행은 “다른 곳에서 좀 뛰었다고 자만하는 선수는 투입하지 않았다. 차라리 패기 넘치고 노력하는 신인이 낫다고 본다. 한 시즌 동안 꾸준히 경쟁시킨 결과다”고 했다.


자존심 잠시 접은 베테랑들
‘클래식’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특권이다. 챌린지로 내려올 경우 연봉과 팀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결코 아니다. 2012시즌 종료 후 명문 구단 출신의 모 선수가 챌린지행을 거부하고 개인 훈련을 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그런데 광주에는 명예보다는 출전을 위해 챌린지행을 선택한 선수가 많다. 그들에게 광주의 클래식 승격은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스스로 챌린지를 택해 팀을 클래식으로 올려놨다는 자부심이 있다.

PO 1차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조용태(28)는 2008년 수원삼성에 입단한 유망주였다. 2013년(군 제외)까지 수원에서 조커 역할을 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다. 그는 올해 경남으로 이적했으나 경쟁에서 밀려 여름쯤 광주에 왔다.

조용태는 “솔직히 광주행을 택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더 많은 경기를 뛰어서 경기력을 회복하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광주에 왔다. 그래서 승격에 대한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조용태의 선택은 결국 신의 한수가 됐다. 조용태가 경남에 남았더라면 승격이 아닌 강등을 경험했을 것이다.

왼쪽 수비수 이완(30)도 한때는 전남드래곤즈의 주전 선수였다. 그런데 2012년부터 하락세를 걷더니 2013년 울산으로 이적해 4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완은 “광주로 오면서부터 한 경기라도 뛸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라운드에 서고 싶어 챌린지로 왔다. 시즌 초반 선수들끼리 ‘마지막에 웃자’고 한 게 현실이 돼 기쁘다”고 했다.

수원-울산-서울 등 명문 팀을 거친 오른쪽 수비수 이종민(31)은 숨은 공신이다. 팀내 고참 선수로서 조용히 선수단 분위기를 잡았다. 경기장 안에서는 감독 역할까지 했다. 광주의 전술도 이종민의 공격 가담 정도에 따라 변했다. 대전-인천-경남 등을 거친 김민수(30)와 나이는 어리나 전남에서 활약한 정준연(25)도 광주에 경험을 불어넣어 준 선수들이다.

광주의 승격 원동력은 ‘선수 구성’이다. 모두가 간절했다. 신인은 미래를 위해, 베테랑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원년 멤버는 광주의 명예를 위해 뛰었다. 여기에 남기일 감독대행도 ‘경험 없는 어린 감독’이라는 평가를 깨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광주FC 제공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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