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지난 겨울 태국 무대에서 활약하던 이용래가 대구FC 유니폼을 입으며 4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다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귀환 정도로 생각했다. 1986년생 중앙 미드필더가 지닌 시야와 경험은 무시할 수 없지만, 기동력을 중시하는 대구의 팀 스타일상 이용래는 보조적 역할에 그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실제로 계약 역시 지도자 준비의 전초 단계인 ‘플레잉코치’ 형식이었다.

하지만 13라운드를 마친 현재 그런 예상은 섣부른 판단에 불과했다. 올 시즌 이용래는 플레잉코치가 아니라, 요즘 표현으로 ‘닥주전(닥치고 주전)’이다. 이용래 본인은 주전이라는 표현을 한사코 부정하지만, 팀의 안정된 경기 운영을 위해서 중원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수가 됐다. 경고 누적(5회) 징계로 결장한 12라운드 광주 원정을 제외하면 올 시즌 K리그1 전 경기에 나섰다. 그 중 7경기가 선발 출전이다. 

그런 이용래의 활약상을 두고 팬들과 언론은 ‘취업사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액면 그대로의 부정적 표현이 아닌, 예상과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이용래의 팀 내 비중에 대한 우회적 찬사다. 선수 본인 역시 기분 좋은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욕심을 다 내려 놓고 대구에 왔지만 경기에 나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취업 사기라는 유쾌한 표현은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며 웃음을 지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 정말 플레잉코치로 계약한 것이 맞나? 억울할 수 있으니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분명 플레잉코치 자격으로 계약한 건데 이렇게 경기를 많이 뛸 줄은 몰랐다. 좋은 의미다. 플레잉코치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팀 상황에 따라 혹은 컨디션이 좋으면 경기는 뛸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생각하고 왔다. 그래도 경기를 나가니까 역시 기분은 좋다. 계약은 뭐… 아무 생각이 없다. (Q. 태국에서 충분히 부를 쌓고 돌아온 건가?) 그건 결코 아니다.(웃음) 미래를 생각하는 거다.

- 20대 중후반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지금의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한참 몸이 좋았을 때는 경기하기 전부터 기대가 되고, 설렜다. 오늘은 어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런 자신감이 절반 정도다. 나머지 절반은 혹시 경기장에서 내가 실수하거나 부진하면 어쩌나, 팀에 피해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안고 나간다. 팀에 피해만 주지 말자는 생각이다. 20대처럼 할 수 없다는 걸 냉정하게 내 스스로가 안다. 그래서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내 자신이 빛나는 게 아닌 팀을 빛나게 하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 그래서인지 플레이스타일을 바꿨다. 과거의 이용래는 기술이 좋고, 밸런스를 절충하며 공격 전개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경기 운영과 상대 카운터를 끊는 수비를 더 신경 쓴다. 
20대처럼 플레이하면 좋겠지만, 마음만큼 다 되는 게 아니다. 지금 나이에서는 어떤 플레이를 하는 게 맞을지 계속 생각해 왔다. 게다가 대구는 수비진의 평균 나이가 젊다. 허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중앙에서의 조율, 수비적인 헌신이고 그 부분을 더 신경 썼다. 3백 앞에서 위험 지역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차단하는 것, 그리고 상대 역습 때 사전에 위치를 잡아 공격을 지연시키는 걸 하는 게 지금 대구에서 해야 할 몫이다. 

- 그 덕에 올 시즌 경고 5회 누적에 의한 출전 정지 1호 선수가 됐다. 그만큼 카드 수집이 많았다. 이전에는 한 시즌 최다 경고가 33경기를 뛴 안산무궁화 시절의 6회였던데.
안 그래도 후배들이 벌써 5장이나 챙기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하더라.(웃음) 그게 현실이다. 상대 선수가 빠져나갈 때 저지하려고 발을 뻗어 반응하는 게 이제는 약간 느리니까 걸리게 된다. 기록대로 원래는 경고 많이 받는 스타일이 아닌데, 대구에서는 거기에 맞춰서 해야 하다 보니까 쌓인다.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역할이다. 중원에서 수비적으로 터프한 플레이를 해야 팀이 산다. 적절한 지연 행위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은 옆에서 누가 그런 걸 해야 같이 적극적으로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수원 시절에 (오)장은이 형이 그런 역할을 했는데, 내가 도움을 받았다. 지금 대구에서는 내가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다른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더 역할을 하게 하려면 뒤에서 내가 지켜줘야 한다. 

- 올 시즌 역대급 살인 일정인데 체력적인 문제는 없는지?
주중과 주말에 경기가 연이어지면 확실히 1경기를 뛴 다음 경기에서 힘이 부친다. 그래도 이병근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나와 근호 형은 조절을 해 준다. 그런 팀 차원의 관리와 배려를 받으니까 버틸 수 있다. 

- 이근호와 함께 대구의 초반 부진 탈출을 이끌었다. 베테랑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줬다.
사실 걱정을 했다. 나이는 있지만, 둘 다 올해 대구에 새로 들어왔으니까 기존의 분위기와 문화를 우리가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게다가 대구는 최근 들어서 계속 잘 해 오던 팀이다. 시즌 초반에 성적이 안 좋다고 내가 나서서 뭐라고 하는 걸 기존 선수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대구에 오래 있었던 선수들과 우선 애기를 많이 했다. 팀이 부진할 때는 선수들끼리 미팅을 하고 스스로 깨우치는 게 가장 효과가 크다고 생각했다. 주장인 (김)진혁이를 중심으로 미팅을 열었다. 강원 원정에서 0-3으로 패한 뒤 서울전을 앞두고 선수들끼리 자발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진혁이와 근호 형이 주도해서 지금 팀에 어떤 게 필요하고, 왜 그걸 해야 하는지 공유하면서 긍정적 변화가 생겼다. 그게 지금은 4연승으로 이어졌다. 

- 15살 차이 나는 후배 이진용과 중원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용용콤비'라고 한다. 이진용 입장에서는 최고의 튜터링일 텐데?
진용이가 워낙 성실하다. 동계훈련부터 지켜봤는데 노력을 정말 많이 하는 선수다. 사실 저 나이에 기회가 온다고 무조건 잡을 순 없는데, 진용이는 준비가 돼 있었다. 평소에 이것저것 내게 많이 물어본다. 축구 생각이 많은 후배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냐고 하면 내가 아는 걸 최대한 알려주려 한다. 경기를 앞두고 상대에 대한 분석을 한 걸 갖고 어떤 식으로 수비를 할까 계속 공유한다. 진용이한테 미안한 게 대구 입단하고 아직 따로 식사를 못 했다. 코로나 때문에 여럿이 먹는 게 힘든 상황인데, 그래도 진용이 불러서 같이 밥 먹으면서 더 많은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 해외에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는 안정감도 지금 활약의 보이지 않는 힘일까?
아무래도 태국에서 뛸 때는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4개월 정도 혼자 지낸 적도 있다. 축구 선수라는 직업을 택한 이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내가 결혼 후 옆에서 묵묵히 내조해줘서 정말 고맙다. 아들이 태어난 뒤 한국에서 함께 지내는 게 처음이다. 웬만하면 시간 날 때마다 거의 아들과 함께 놀려고 한다. 낮 시간에 열리는 홈 경기는 아빠 뛰는 걸 보러 온다. 저녁 시간은 잠 자는 시간 대문에 오지 못하게 한다. 아직은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공도 잘 찬다. 오른발로 공을 차는 편인데, 나처럼 왼발로 찼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냥 아들 바보다. 

- 팀이 최근 4연승으로 강등권에서 상위권까지 올라왔다. 세징야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둔 결과여서 더 의미가 큰데? 대구는 세징야 팀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냈다. 
세징야는 좋은 선수다. 팀에서 비중이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큰 선수가 없을 때도 잘 해야 한다. 세징야가 부상인 동안 어떻게 극복할 지를 늘 고민했고, 답을 찾았다. 지금의 대구는 누가 대신 뛰든 상대보다 간절하게 달릴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분위기에서는 누가 들어가도 해낼 수 있다고 본다.

- 팀이 리그 5연승을 한 적이 없다. 4연승만 이전에 네 차례 했다. 이번이 5연승을 위한 5번째 도전이다.
진혁이, 근호 형과 최근 이번 경기가 올 시즌 대구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얘기를 주고 받았다. 상대인 인천을 생각하기 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나가느냐가 중요한 경기다. 4연승을 했으니까 ‘이번에도 잘 되겠지’라는 안일한 준비를 하면 안 좋은 상황이 온다. 우리가 마음가짐을 늘 4연승의 출발선이 된 서울전처럼만 먹으면 홈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도 간절함으로는 누구에게 지지 않는 팀이니까 그 지점에서 우리가 이겨야 한다. 더 절실하게 뛰고, 대구 팬들에게 5연승을 선물하고 싶다. 

- 마지막 불꽃을 태우러 왔는데, 아직도 한참 뜨거운 것 같다. 현역 선수 생활을 언제 마칠 지 함부로 속단하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은데?
글쎄, 그 부분은 조금 냉정하고 싶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후반기 상황이 어찌 될 지 모른다. 부상 없이 마무리를 하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다. 지금은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선다. 언제 은퇴할 지 모르고, 이 나이에는 부상이 닥치면 극복하지 못하고 끝마치는 경우가 많다. 멀리 보기보다는 눈 앞에 있는 한 경기, 한 경기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싶다. 욕심내기보다는 좋은 모습일 때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다.

- 지도자 준비는 병행하는 건가?
현재 지도자 자격증 C급을 보유 중이다. 5월 말에 B급 교육을 위한 지도자 연수에 들어간다. 예전부터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런 목표가 확고했기 때문에 이번에 대구로 온 거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겠다는 욕심이 있었다면 태국에 남아서 계속 했을 거다. 마음을 먹었으니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 지금은 대구를 위해 최선을 다 해서 헌신하며 지도자 준비를 병행하겠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구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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