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강인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편안해 했던 스페인식 공격형 미드필더, 즉 메디아푼타(mediapunta)로서 새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 이강인을 위한 포지션이다.

스페인의 ‘수페르데포르테’는 하비 그라시아 신임 감독이 2020/2021시즌을 앞둔 훈련을 시작하며 이강인을 메디아푼타로 기용했다고 전했다. 전임자인 마르셀리노 토랄 감독 시절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포지션이다.

이 매체는 ‘훈련 초반이라 베스트 멤버를 짐작하는 건 힘들지만, 이강인의 활용법은 분명했다. 첫날부터 이강인은 측면이 아닌 안쪽에서 뛰었다. 이강인은 공격수 막시 고메스보다 몇 미터 뒤에 위치했으며,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보다는 앞에 위치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이강인에게 이상적인 위치다. 이강인의 위치를 찾아주는 건 이번 시즌 프로젝트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며 특히 주목했다.

각 나라마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일컫는 특유의 표현이 있다. 스페인에서 단순히 공격형 미드필더(mediocentro ofensivo)라고 하지 않고 메디아푼타라는 표현을 쓸 때는 스페인식 개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포지션을 부르는 이탈리아식 표현 ‘트레콰르티스타’나 아르헨티나식 표현 ‘엔간체’ 역시 축구 문화적 배경이 포함된 용어들이다.

이강인이 다가오는 시즐 맡을 역할은 가장 전형적인 메디아푼타에 가깝다. 스페인 공격형 미드필더들은 지난 30년 동안 4-2-3-1 포메이션에서 가장 자주, 가장 편안하게 활약했다. ‘트레카르티스타’나 ‘엔간체’들이 전문 윙어 없는 환경에 더 익숙한 것과 달리, 메디아푼타는 좌우 윙어 및 원톱까지 총 4명이나 되는 공격진을 여유 있게 지휘하는 경우가 더 흔했다.

공격수 숫자를 둘에서 하나로 줄여가면서까지 공격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유행이 일었던 건, 공격 전반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메디아푼타 자신은 전문 공격수에 비해 득점력이 떨어지지만 대신 나머지 공격진에게 시의적절한 패스를 공급하고 상대 수비 전체를 뒤흔들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문 공격수가 전방에서 공을 기다리는 것과 달리, 메디아푼타는 상대 수비진과 미드필드 사이에서 자유롭게 위치를 바꿔가며 공간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위대한 메디아푼타 선배 파블로 아이마르와 다비드 실바는 발렌시아 시절 시즌당 득점력(라리가)이 각각 4.5골, 5.3골에 불과했지만 스타로 대접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4-2-3-1과 메디아푼타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 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영향 받은 4-3-3, 아틀레티코마드리드에서 영향 받은 4-4-2 포메이션이 더 인기를 끌었다. 발렌시아 역시 최근 성공 비결은 4-4-2였다. 그러나 그라시아 감독은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는 가운데 이강인 중심 전략을 구성하기 위해 4-2-3-1 포메이션을 다시 도입하려 한다.

이강인은 지난 시즌 동안 4-4-2 포메이션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중앙이 아니라면 오른쪽 측면을 더 선호하지만, 왼쪽 미드필더로 뛰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도 서툴지만 성실한 수비가담과 팀 플레이를 수행했다. 그러나 전력의 중심으로 대우받기 시작한 이번 시즌은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메디아푼타는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고 MVP를 수상했을 때도 맡았던 역할이다.

이 포지션에는 경쟁자조차 없다. 지난 시즌 발렌시아가 드물게 공격형 미드필더 있는 포메이션을 썼을 때, 이강인이 아니면 원래 윙어인 카를로스 솔레르나 곤살루 게드스가 이 위치를 맡곤 했다. 솔레르와 게드스는 주전 윙어로 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유사시가 아니라면 이강인의 경쟁자로 보기 힘들다. 최근 노장 다비드 실바를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실제로 훈련에서 이강인 팀만 4-2-3-1로 나섰고, 상대팀은 로드리고 모레노와 센터포워드 유망주 조르디 에스코바르 조합의 투톱으로 나섰다.

이강인을 위한 판은 깔렸다. 스스로 증명해야 할 과제만 남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