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 판도 흔든 아틀레티코의 가능성과 숙제

[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유벤투스와 바이에른뮌헨이 당연하다는 듯 우승을 자축할 때, 레스터시티가 기적은 실재한다는 걸 보여줄 때,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가 여전히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그 옆엔 명품 조연이 있어야 한다. 이번 시즌 유럽 빅리그의 2인자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또 강했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 보루시아도르트문트, 토트넘홋스퍼, 나폴리의 시즌을 특별히 돌아보는 건 그래서다. 2인자라 부르기 아까운 그들을 쩜오라 불러보려 한다. 이 표현을 만들어주신 박명수 님께 리스펙.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양강시대는 끝났다.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우승 가능성이 남은 것은 여느 때처럼 FC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지만, 아틀레티코마드리드는 3강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2013/2014시즌 라리가 우승에도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2014/2015시즌을 앞두고 아틀레티코의 직접적 경쟁 상대를 세비야, 발렌시아 등의 클럽으로 지목했었다. 이제는 야망의 크기가 달라졌다. 올 시즌 순위표는 아틀레티코가 다른 차원의 팀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완다그룹의 투자를 받은 아틀레티코는 재정 규모도 운영 방향도 진화했다. 2020년까지 아틀레티코와 계약된 시메오네 감독은 아틀레티코가 정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스타일 변화를 꾀하고 있는 아틀레티코는 다음 시즌을 더 기대할 수 있는 팀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올 시즌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틀레티코의 경쟁력: 유럽 최고의 수비

축구 경기에서 이기려면 상대 보다 많은 골을 넣어야 한다. 접근법은 각자 갖춘 전력에 따라 다르다. 2골을 먹더라도 3골을 넣을 수 있는 화력을 갖추거나, 한 골 이상 넣기 어려운 화력을 갖췄다면 무실점 수비 능력을 갖춰야 한다. 

축구계에서 ‘결정력은 비싸다’는 말이 있다. 골을 넣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이 되는 공격수들의 몸값은 비싸다. 공격 지역에서의 창조성, 흔히 말하는 천재성은 어려서 익히지 않으면 성인이 되고 나서 발전 시키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면에 수비는 개인 능력 보다 팀 전체의 조직력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재정 수준이 낮은 팀이 택할 수 있는 전력은 선수비 후역습이다. 수비 조직을 단단히 하고 상대가 공격을 위해 올라 왔을 때 배후를 쳐야 한다. 레스터시티의 2015/2016시즌 EPL 우승 방정식은 2013/2014시즌 아틀레티코가 라리가를 정복했던 방식과 큰 틀에서 보면 닮았다. 

아틀레티코가 가진 최고의 경쟁력은 역시 수비다. 라리가 순위표를 살펴보면 실점 기록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리그 37경기에서 18골 밖에 내주지 않았다. 37라운드 레반테전에 두 골을 내주기 전, 36경기에서 16실점이었다. 유럽 주요 5대리그에서 10골대 실점을 기록한 팀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뮌헨과 아틀레티코 뿐이다. 분데스리가는 18개팀으로 1부리그가 구성되어 치른 경기 수가 아틀레티코보다 적다. 아틀레티코 수비가 유럽 최강이라는 점은 기록으로 증명된다. 

아틀레티코 수비를 대표하던 표현은 ‘두 줄 수비’다. 4-4-2 포메이션의 부활을 이끈 시메오네 감독은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에 포백 라인과 미드필더를 일자로 촘촘하게 세웠다. 상대 원톱을 가두고, 2선 공격수들이 뛸 공간을 없앴다. 투톱은 상대 빌드업 기점을 괴롭혔다. 자기 진영에서 그야말로 질식수비를 폈다. 

아틀레티코의 수비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서만 강한 것은 아니다. 적극적인 전방 압박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FC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뮌헨을 무너트리는 과정에서 아틀레티코는 전방 압박의 밀도를 극대화했다. 투톱은 정말로 공을 뺏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상대 후방 라인을 압박한다. 기본적으로 상대 후방 빌드업이 측면으로 쏠리게 한다. 

상대를 측면으로 몰아둔 이후 미드필드진과 그물망을 짠다. 세 명이 상대 풀백과 센터백의 각도를 좁히고, 나머지 두 명은 공이 빠져나올 수 있는 루트를 차단한다. 반대로 길게 공을 넘기도록 유도한다. 전방 지역에서는 상대를 측면으로 몬다. 패스 정확성을 떨어트리기 위함이다. 아틀레티코의 이 같은 수비법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홈 경기장의 잔디 상태도 한 몫 한다. 물기가 적고, 길게 잔디를 길러 놓는다. 짧은 패스의 속도와 정확성을 떨어트리기 위한 전략이다.

전방에서 볼 탈취에 성공하면 바로 역습으로 나서고, 실패하면 빠르게 수비로 전환해 두 줄 수비를 구축한다. 아틀레티코는 전방 압박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 요원인 코케와 사울 니게스를 후반기부터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해왔다. 공격에만 특화된 선수들은 수비 기술 및 위치 선정, 압박 밀도에서 두 선수에 비해 부족하다. 코케와 사울은 포지셔닝이 좋고 전술 이해력도 탁월하다. 둘은 공격 전개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돌파나 킬러 패스를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무리가 없었다.

#아틀레티코의 문제: 뒤늦게 자리 잡은 공격 조합

아틀레티코가 끝내 우승하지 못한 이유는 최적의 공격 조합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우승을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골을 먹지 않고 끈끈한 축구를 하는 것 뿐 아니라 확실하게 득점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틀레티코는 지난 10년 간 팀내 최고의 공격수를 뺏겨 왔다. 자체 육성 선수인 페르난도 토레스가 리버풀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디에고 포를란(인터밀란), 세르히오 아구에로(맨체스서시티), 라다멜 팔카오(AS모나코), 디에구 코스타(첼시) 등이 정점에 올랐을 때 이적시켰다. 

마리오 만주키치는 시메오네 감독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고, 2015/2016시즌을 준비하면서 여러 공격수를 영입했다. 잭슨 마르티네스와 루시아노 비에토, 야닉 카라스코와 앙헬 코레아 등이 1군 멤버로 합류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공격 옵션을 확보했다. 

아쉽게도 이들은 시메오네 감독의 기대만큼 빠르게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겨울 이적 시장에 중국 클럽 광저우헝다로 이적시킨 콜롬비아 공격수 마르티네스는 전성기 기량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틀레티코 이사진은 실패한 영입이라고 인정했다.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힘과 속도가 한참 좋을 때 보다 못했다.

비에토는 비야레알에서처럼 지속적인 기회를 받지 못했다. 팀 전술도 달라지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전 공격수로 나설 수 있는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코레아와 카라스코는 조커로 유용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통적인 스트라이커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특히 카라스코는 측면에서 역습의 첨병으로 잘 했지만, 지공 상황에서는 한계를 보였다. 코레아도 득점 상황을 만드는 순간적 기지는 좋았지만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서 팀이 원하는 역할을 90분 간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결국 팀을 이끈 것은 앙트완 그리즈만이었다. 그리즈만이 꾸준히 득점하면서 승점을 얻을 수 있었다. 위기는 그리즈만이 주춤하면서 찾아왔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페르난도 토레스의 부활이었다. 토레스는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1월 이적 시장 기간에 시메오네 감독과 향후 거취를 두고 가진 면담을 통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시메오네 감독은 공격 상황에서 코케가 토레스의 뒤쪽으로 이동해 마무리 패스를 공급하도록 했다. 득점 마무리 역할을 하던 그리즈만은 측면과 전방을 오가며 수비를 분산시켜주는 이타적 역할을 했다. 토레스가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고, 토레스 자신도 그 기회를 잘 살렸다. 

토레스는 리버풀 시절에도 스티즌 제라드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되었을 때 가장 눈부신 활약을 했다. 시즌 초반부터 코케와 토레스의 조합이 이뤄지고, 그리즈만과 투톱 콤비가 조화를 이뤘다면 더 많은 승점을 얻었을 수 있다. 전반기에 최적의 조합을 찾는데 허비한 시간이 적지 않다. 

#아틀레티코가 우승하려면: 내려선 상대를 무너트려라

아틀레티코가 최종 라운드에 우승 기회를 잃은 것은 레반테와 원정 경기에서 당한 1-2 패배 때문이다. UCL에서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뮌헨을 탈락시킨 팀이 올 시즌 라리가에서 최하위로 강등이 확정된 레반테에게 졌다. 

문제는 지공 상황의 창조성과 빌드업 능력이다. 수비를 단단히 하고 전진한 상대의 뒤를 노리는 역습 능력에서 아틀레티코는 유럽 최고의 팀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 수 아래의 전력을 갖춘 팀이 선수비 후역습 자세를 취하면 공략하는 과정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인다.

레알과 바르사는 한 수 아래 팀을 상대로 큰 점수 차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두 팀 모두 100골이 넣는 득점력을 보였다. 아틀레티코는 그에 비해 화력이 부족했다. 강팀을 잡을 때와 마찬가지로 약팀을 상대할 때도 아슬아슬한 승부가 적지 않았다.

올 시즌 공격수를 다수 영입하면서 아틀레티코는 프리시즌 기간에 압박 수비 보다 공격 과정을 화려하고 매끄럽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프리시즌 기간에 약팀을 상대로는 잘 됐지만 라리가 실전에서는 쉽지 않았다. 

토레스와 그리즈만이 남고, 코레아와 카라스코가 살아난다면 올 시즌보다 개선된 공격력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아틀레티코는 국제 유소년 이적 규정 위반으로 FIFA로부터 1년 간 선수 영입 금지 징계를 받았다. 항소를 통해 개시 시점을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는 여름 이적 시장에 필요한 위치에 충분한 보강 작업을 해야 한다. 수비 라인이나 미드필드 라인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필요한 것은 공격진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디에구 코스타의 복귀설이 대두되고 있다. 코스타가 오고, 토레스와 그리즈만, 카라스코, 코레아 등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합할 수 있다면 올 시즌보다 화력이 더 확실해질 수 있다. 스트라이커만 보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비는 점점 나이가 들고 있다. 2선에 보다 창조적이고 활발한 선수가 공격 라인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알렉산드르 라카제트, 루카스 페레스, 루이스 나니 등이 현재까지 아틀레티코와 이적설로 연결되고 있다. 한 수 아래 전력, 혹은 비등한 전력의 팀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화력 증강이 챔피언이 되기 위한 과제다. 

글=한준 기자
그래픽=조수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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