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랭크’는 마이클 파스빈더가 탈을 쓰고 나온다는 점만 빼면 퍽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여기 천재 음악가가 하나 있다. 어느 날 그의 음악이 세상에 알려지고, 자본의 부름을 받아 대중 앞에 나선 음악가는 쇼 비지니스 안에서 예술적 자아를 잃어버리다 결국 파멸에 이른다. ‘프랭크’는 이 클리셰를 한 인디 뮤지션의 SXSW 도전기로 압축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프랭크의 탈은 두 번째 목숨 같은 것이다. 목숨이 아홉 개 있다는 고양이처럼, 프랭크는 예술가로서 두 개의 삶을 갖고 돌아다닌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처음 죽었을 때 목숨을 내놓는 대신 탈만 잃어버린 채 달아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난 생각했다. 실제 세상의 예술가라면 차에 치인 순간 탈이 박살나는 것이 아니라 골통이 박살났겠지. 요절한 천재 예술가의 목록은 일일이 읊기 힘들 정도로 길다. 특히 흑인 음악가들의 삶이 그랬다. 지미 헨드릭스는 약물 혹은 술에 취해 죽었고, 마빈 게이는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죽었고, 투팍과 비기는 괴한이 갈긴 총에 맞고 죽었다.

영화의 말미, 맨얼굴로 돌아온 프랭크는 결국 세상과 화해하는 노래를 부르며 좀 더 건강한 정신의 천재로 돌아온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치유됐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이 주는 찰나의 감동을 더 오래, 한 작품 내내 느끼고 싶다면 디안젤로가 최근 내놓은 새로운 앨범을 들으면 된다. "미국의 마지막 흑인 아티스트" 디안젤로는 새 밴드 ‘The Vanguard’와 함께 ‘Black Messiah’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다. 두 번째 정규앨범이었던 ‘Voodoo’가 나온지 무려 15년(오늘이 발매 15주년이라고 한다) 만이었다. 여러분 디안젤로는 실존인물이었습니다. 사이버가수 아담같은게 아니라고요.


사진출처 : bet.com

두 번째 앨범 이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디안젤로는 뭘 하고 살았나. 듣자하니 하마터면 선배들의 뒤를 따라 요절한 천재의 목록에 이름을 올릴 뻔했다고 한다. 두 번째 앨범의 급속한 성공과 ‘Untitled(How Does It Feel)’ 뮤직비디오를 통해 얻은 섹스심벌 이미지는 원래의 디안젤로와 맞지 않았다. 아마 그에겐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역시 익숙한 이야기다. 커트 코베인이라든가.) 디안젤로는 술과 약물에 깊이 빠지며 살이 엄청 불어났다. 어느 날은 정신이 몽롱한 채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충격으로 차에서 튕겨나갔고 한쪽 갈비뼈가 모조리 나갈 정도로 심한 사고였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프랭크가 그랬던 것처럼.

디안젤로가 정신을 차리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건 음악적 동지의 사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와 여러 차례 함께 작업했던 제이딜라가 희귀병으로 2006년 죽었다. 친구의 죽음이 그를 파멸에서 끄집어냈다. 디안젤로는 흑인음악의 선각자들처럼 자신도 어느 날 요절할 거라는 예감을 달고 살았고, 그 예감은 그를 더욱 깊은 파멸 속으로 이끌어갔으며, 가까운 사람의 죽음만이 그를 죽음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죽음의 얼굴을 마주보았을 때 비로소 그 매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짐작한다.

그 뒤로 오랜 재활을 거쳐 조금씩 공연을 재개한 디안젤로를 유튜브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데뷔 당시의 껄렁껄렁한 팀버랜드 부츠(외모만 보면 소울 싱어가 아니라 우탱클랜의 비정규 멤버 같았다), 섹스심벌이 되었을 당시의 조각같은 몸매 모두 갖다 버린 디안젤로는 훨씬 건강하고 덩치가 큰... 뭐랄까, 근육 돼지같은 모습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그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디'의 새로운 음악을 예감했다. 디'는 이미 과거의 섹시함과는 결별한 사람이었다.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돌아온 디'의 목소리엔 금방이라도 파멸할 듯한 위태로운 분위기가 없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디'가 변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이젠 대중 곁에 오래 머물러 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왔으리라.

새로운 앨범이 주는 느낌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과거의 Voodoo는 듣는 이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듯한 음반이었다. 음반에서 심하게 농축된 그루브가 흘러나와 공기 중에 섞이면, 내 자취방 안의 공기는 점성이 있는 새로운 물질로 변하곤 했다. 대학가 자취방이 아닌 열대의 어느 섬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 그루브의 고갱이 자체를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있었다.

Black Messiah는 완전히 다르다. 믹싱은 매끈하고 차가워졌다. 멜로디는 희미한 대신(후반부 트랙들은 같은 테마를 변주하는 것에 가까울 정도) 한 곡 안에서 몇 번씩 변하는 복잡한 구성, 실험적인 리듬이 앨범을 채운다. 이 앨범은 놀랍게도 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디안젤로는 본능과 주술성을 조금 덜어내고 잘 조율된 음악으로 돌아온 것이다. 많은 가수들에게 세 번째 앨범은 원숙미를 갖춰야 할 시기다. 디안젤로에게도 그랬다. 그 사이 14년이 지나버렸을 뿐.

Black Messiah에 수록된 몇몇 트랙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디'는 수많은 죽음(1000 Deaths)이 주는 매혹과 가면을 쓴 듯한 삶(The Charade)을 넘어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음악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Betray My Heart), 새로 얻은 삶(Another Life)을 살아갈 것이다. 프랭크가 세상과 화해했듯이.


Voodoo 시절 라이브


Black Messiah에서 제일 감성적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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