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장 다녀오는 동안 밀린 한식대첩을 보며, 나는 마침내 경북 대표 권순미 아주머니가 탈락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팔도 각지의 거대한 식당 주인이거나 대학 교수님이라는 어마어마한 달인들 틈에 낀, 자그마한 체구의 종부 한 명(과 체구가 좀 더 큰 그의 자매)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한식대첩은 지극히 한국적인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많은 리얼리티쇼는 미국 프로그램에서 늘 보던 출연자들간의 갈등 대신 억지 훈훈함으로 범벅이 되어 있기 일쑤였다. 왜 세상의 모든 도전자들은 선량하고, 왜 모두 응원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런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통에 ‘슈퍼스타K’를 비롯한 많은 프로그램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한식대첩은 장사로 잔뼈가 굵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싸움이다. 그들은 자기 지역의 말투로 노골적인 설전을 벌인다. 시즌1의 서울 대 경북(절묘하게도 현직 대통령을 닮은 경북 대표의 외모와 말투!) 같은 흥미진진한 반목은 시즌2에 없다. 대신 전남과 충남의 도전자들이 다른 도전자들을 흉보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전남의 입심은 다른 지역을 가볍게 깔아뭉개고, 충남의 의뭉스러움은 옆 사람을 살살 비꼬며 약 올린다.

그 가운데 권순미 도전자는 조금 특별한 존재였다. 탈락하던 날, 마지막 끝장전(탈락미션)은 언니 권순향 아주머니 혼자 치러야 했다. 요리가 끝나자마자 스튜디오 안으로 돌아온 권순미 아주머니는 언니에게 “괜찮나”라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언니의 음식을 한눈에 알아보자 목메었고, 언니 곁으로 돌아간 뒤엔 조리대 뒤에 쪼그리고 앉아 짧은 수다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는 충남은 “뭔 애기들처럼 숨고 그러냐”며 충청도다운 퉁을 놓았다.

"멋진 종부가 되겠다"는 후진 말이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권순미 아주머니의 작별 인사를 들으며 울음을 참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그가 보여준 조용한 강단,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은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든 감동을 줬다. 리얼리티쇼의 멋진 캐릭터란 이렇게 삶 자체를 통해(최소한 삶 자체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길어 올린 리얼리티가, 그들의 손과 입에서 살아난다.

언젠가 끝장전까지 몰렸을 때, 권순미 아주머니는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멧돌에 콩을 두 번 갈아냈다. "(시)어머니에게 배운대로" 하고 싶었다는 것이 무리수를 둔 이유였고, 결국 자기 뚝심을 지키며 잔류에 성공했다. 이제까지 내가 본 모든 리얼리티쇼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한식대첩은 시즌1에 비해 지나치게 화려한 편집과 무의미한 일품식객의 등장으로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도전자들 중 진짜 실력자만 남은 후반부로 들어서며 경연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시청자의 뇌는 시각을 통해 끝없이 맛을 상상하게 된다. 저 색과 저 양감이 어떤 맛을 의미하는지 기억해내려 애쓰느라, 목요일 밤엔 야식도 잊어 버렸다.

2. 충청북도 출신인 나는 두 시즌 연속 충북이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충북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맛을 위해 먹는다기보다 살려고 먹는 동네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못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회를 구경하기 힘들었고 바닷고기라곤 간고등어 정도였다. 그렇다고 나물 요리가 다른 지역보다 발달했는가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 산은 어느 도에나 다 있지 않나. 충북 고유의 맛이 뭔지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 좀 달라.

오히려 그래서, 충북의 도전자는 향토성의 함정에서 자유롭다. ‘충북 고유의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 나오니 다른 지역 재료를 가져다 마음대로 재창조해 버린다. 이번 시즌에 나온 고서요리 연구가 교수님은 그 극단적인 경우일 것이다. 고서에 나오는 충북 요리로 경연에 참가한다는 건, 거꾸로 요즘 충북 사람들이 먹는 요리는 경연에 별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충북 도전자들은 심지어 사투리도 안 쓴다. 나는 그들이 선전할 때마다 아내를 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봐! 충북엔 대표 먹거리 따윈 쥐뿔도 없어! 그러니까 요리를 잘하는 거야!”라고 자랑 같지 않은 자랑을 외친다.

3. 잘못된 향토성의 함정에 가장 깊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지역은 단연 제주도일 것이다. 제주는 두 시즌 연속 회뜨기의 달인이 출연했다. 시즌 1에는 다금바리 명인, 시즌 2에는 옆머리를 멋지게 밀어버린 방어 명인이 나섰다. 결과는 둘 다 초반 탈락이다.

다음에 더 길게 쓸 기회가 있겠지만, 제주는 음식 문화가 그리 발달한 곳이 아니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의 대표 음식으로 꼽는 각종 회와 흑돼지 구이는, 물론 대표 음식이 맞긴 하지만, 요리의 기본부터 탄탄하게 배운 일류 요리사의 음식이라기기엔 단순하다. 방어 명인 김정호 씨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방어회를 떠 감탄을 자아낼 때도 있지만, 저걸 경연용이라고 가져왔나 싶을 정도로 밋밋한 국을 끓이기도 했다.

차라리 제주 향토 음식을 두루 익힌 사람이 출연했다면 좀 더 다양한 제주의 맛을 보일 수 있었을 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오래 살아남긴 힘들었을 것이다. 제주 음식의 특징은 투박함에서 온다. 육지의 다양하고 기름진 맛에 못 미칠 때도 있다. 김정호 씨가 제주식으로 소고기 적갈을 구워 의기양양하게 내밀었을 때, 심사위원들은 너무 퍽퍽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처가의 제사 음식 앞에서 느낀 퍽퍽함과 같았을 것이다.

한식대첩을 보며 제주도의 일상적 음식과 비슷하다고 느낀 건 오히려 한반도 반대쪽에서 온 북한의 요리였다. 북한팀이 배추를 넣어 소박하게 끓은 국은 제주도 음식의 정서를 닮아 있다. 남한의 요리가 화려하게 발전하는 동안, 여전히 수십년 전의 재료와 조리법을 간직하고 있는 곳. 제주 토속 음식의 매력 역시 그런 것이다.

글= 김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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