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1993년, 초등학교, 당시로 따지면 국민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배운 노래가 애국가였다. 그런데 평생 나를 따라다닐 이 노래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가사가 싫다. 대신 나는 호주 국가(anthem) ‘Advance Australia Fair’를 좋아한다. 꼭 내가 체류한 경험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인생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호주 이민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 노래엔 유독 ‘우리’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통상적으로 서양에서는 ‘우리’보다 ‘나’라는 주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독특해 보인다. 나는 특히 2절이 좋다. ‘For those who've come across the seas, we've boundless plains to share’, 해석하면 ‘우리는 바다를 건너 이곳에 온 사람들과 우리의 무한한 토지를 공유한다’라는 뜻이다. 참 이민자의 나라다운 가사다. 누가 이 나라에 오던 환영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국가(anthem)가 국가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나라가 지향하는 방향과 가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가사로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패권 국가에 어울리게 가사가 도전적이다. ‘전투(fight)’, ‘포탄(rocket)’, ‘탄환(bombs)’, ‘용맹(brave)’ 같은 호전적인 단어들이 등장한다, 영국은 입헌군주제의 나라답게 ‘여왕을 지켜 달라(God Save the Queen)’고 국가를 통해 신에게 기도한다. 우리에겐 동해물과 백두산,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중요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국가의 가사가 그 나라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내가 호주 국가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변인으로 관찰한 호주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다. 나만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나라가 아니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친근하다. 물론 모두는 아니겠지만. 내가 느낀 호주가 그렇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종차별이 적고, 서로를 존중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일 것이다. 일하는 만큼 번다. 복지 수준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4년 선정한 세계 행복지수(The Better Life Index)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한국은 36개국 중 25위에 머물렀다. 사람이 이름처럼 산다는 것처럼 나라는 국가 따라 가는 것 아닐까.

내가 애국가를 싫어하는 건 4절 때문이다.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 부분이다. 괴로운데 나라를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는 더욱 그렇다. 청년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국가가 나를 보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갑과 을, 좌와 우로 나뉘어 사분오열됐다. 그런데도 나라를 사랑하라고? 나에겐 나라는 무조건 옳다는 의미로 들린다. 내가 꼬인 걸까.

나라를 사랑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건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보인다. 나라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다. 나라가, 대통령이 잘못하면 욕 한마디 정도는 하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는 빨갱이는 아니다.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지 않는다. 김정은을 향해 '개새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애국가가 싫다. 앞서 언급한 가사가 1절에 있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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