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축구는 아직 기계가 대체하지 못한, 인간의 일이다.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과 최용수 FC서울 감독의 두뇌 싸움은 선수 22명의 육체가 벌이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최강희 감독은 스리백 승부수를 다시 꺼냈고, 의외인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전북에 승리를 선사했다.

12일 전북 전주의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개막전에서 전북이 FC서울에 1-0으로 승리했다. 2016년 K리그 첫 경기이자 가장 이목이 집중된 경기임에도 파격적인 라인업이 나왔고, 역대 개막전 최다인 32,695명의 관중은 더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신만만 최용수, 우세를 낙관하다

경기 전 최용수 서울 감독은 자신만만했다. 서울은 앞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두 경기에서 10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2연승을 거둔 멤버를 전북전에 그대로 투입했다. 지난해의 3-5-2 포진에 공격수 데얀, 미드필더 신진호와 주세종, 수비수 김원식을 추가해 더 완성도를 높인 멤버였다. 최용수 감독은 “좋은 선수를 많이 영입한 것에 비해 우리 데얀, 아드리아노에 대한 방어에 너무 비중을 가져가지 않나 생각한다”며 은근한 우월감을 이야기했다. 주도권을 쥔 쪽은 서울이란 이야기였다.

동계훈련부터 현재 멤버, 현재 포메이션으로 훈련한 서울에 비해 ‘대 서울용 결전 전략’으로 스리백을 쓴 전북은 일주일 정도만 발을 맞추고 이 경기에 나섰다. 최강희 감독은 “서울이 무섭잖아요”라며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상적이진 않지만 전략적으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취골 싸움이라서 이걸 내주면 어려운 경기가 된다. 대량 실점을 할 수 있는 중앙 수비의 상태였다.”

전북이 서울을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선발 라인업에 U-23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K리그 클래식 팀이 의도적으로 U-23 출장 규정을 어겨 교체 한도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망주 대신 검증된 선수로만 선발 라인업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전북은 여전히 서울보다 불안해 보였다. 원래 미드필더인 이호, 풀백 최철순을 센터백 김형일과 함께 스리백에 배치했고 방출설이 돌았던 루이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한 상태였다.

이호와 루이스, 뜻밖의 주연을 맡다

서울이 경기를 장악하고 주도할 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지만, 경기 양상은 예상을 조금씩 빗나가고 있었다. 서울이 더 많은 슈팅을 날린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북은 주도권을 내주고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역습으로 대등한 싸움을 만들어 나갔다.

전반전 전북의 주인공은 뜻밖의 선수들인 루이스와 이호였다. 루이스는 최강희 감독이 “작년보다 몸이 좋다. 김보경, 이재성의 백업 멤버”라고 말한 그대로 부상당한 김보경 대신 출장해 화려한 발재간을 보여줬다. 서울보다 공격 전개의 조직력이 약한 가운데 전북의 경기 운영은 종종 미드필더의 드리블에 의존해야 했다. 루이스는 여러 차례 서울의 압박을 발재간만으로 뚫어 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최용수 감독은 경기 전 “어차피 정보전인데 최철순을 (중앙 수비수로) 쓴다는 거야 뭐 (예상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전북 수비수 중 가장 돋보인 건 이호였다. 지난해 부상 여파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던 이호는 군복무 시절 포지션인 수비수로 변신, 일종의 스위퍼 역할을 투지 넘치게 소화했다. 김형일과 최철순이 데얀과 아드리아노를 번갈아 막으면 뒤로 투입되는 공을 이호가 끊었다. 이호가 직접 거친 수비로 서울의 공격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북의 수비가 생각보다 끈질긴 가운데 점점 서울 공격은 급해지고 있었다.

김신욱, 점프도 뛰지 않고 헤딩골을 넣다

교체카드를 먼저 쓴 쪽은 겨우 2장만 들고 있던 최강희 감독이었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전북이 수비형 미드필더 파탈루를 빼고 윙어 레오나르도를 투입했다. 그러나 레오는 평소 포지션이 아닌 일종의 중앙 미드필더처럼 뛰었고 전북의 선수 배치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 레오는 스피드가 아니라 오른발 킥으로 팀에 공헌하기 시작했다. 전북이 전반전보다 노골적으로 세트피스 상황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북의 코너킥은 전반전에 단 하나였으나 후반전엔 3회로 늘어났다.

결국 알아도 막을 수 없는 김신욱의 머리가 전반 후반 16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제골을 만들었다. 레오나르도의 중거리슛이 수비 맞고 나가 코너킥이 선언됐고, 이재성이 올린 공은 서울 골대의 파포스트 쪽으로 휘어져 날아갔다. 낙하 지점엔 김신욱이 서 있었고, 거의 점프하지 않은 채 정확히 날린 헤딩슛은 유현의 손이 닿기 전 서울 골대 안에 들어갔다. 경기가 진행 중일 때 투지와 집중력으로 김신욱의 헤딩을 계속 방해하던 서울 수비도 코너킥 상황까지 완전히 막진 못했다.

박주영의 투입, 오히려 전북의 ‘닥공’을 낳다

최용수 감독은 벤치에 있던 박주영을 준비시켰다. 후반 22분 박주영이 다카하기와 교체 투입됐다. K리그 최고 수준 센터포워드 세 명이 동시에 전북 수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최강희 감독은 바로 이동국 대신 로페즈를 투입해 대응했다.

이때부터 경기는 농구의 점수 쟁탈전을 연상시키는, 빠르고 격렬한 속공 싸움으로 흘렀다. 이때 이득을 본 쪽은 전북이었다. 전북은 이기고 있는 경기 막판까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주도권을 유지하며 승리를 굳히는 특유의 운영에 익숙한 팀이다. ‘닥공’이다. 이날 전북은 공격수를 추가 투입하지 않고 스리백을 유지하면서도 일종의 ‘닥공 모드’로 들어갔고, 서울은 득점 기회만큼 실점 위기도 많이 겪어야 했다. 로페즈와 레오가 스피드를 활용해 서울 수비를 흔들어놓는 동안 아드리아노도 동점골을 노렸으나 골은 터지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리그, K리그의 재개를 알리다

경기가 끝난 뒤 다시 기자들을 만난 최강희 감독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최용수 감독만 여유 대신 경직된 표정을 띠고 나타났다. “개막전의 보이지 않는 부담이 우릴 짓눌렀다. 준비했던 패턴이 안 나왔다. 득점 찬스가 막혀서 더 위축됐다.”

전북에선 최강희 감독이 이호의 이름을 다시 호명했다. 이어 등장한 김신욱은 앞선 ACL 두 경기에서 받은 혹평과 부담감을 이날 날려버린 듯 보였다. “군사훈련의 여파로 2주 전까지 온 몸 중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동계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무릎도 발목도 아팠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팀 훈련이 끝난 뒤 두 시간씩 개인 운동을 했고, 몸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동료이자 스승과 같은 이동국 선배를 많이 배운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비수도권을 연고지로 두고 있지만 지난해 K리그 최고 인기 구단 반열에 오른 전북은 시즌 첫 경기부터 원정 서포터석을 제외한 경기장을 촘촘하게 채우는데 성공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는 노래 ‘오오렐레’를 부르는 N석의 서포터들은 1층이 부족해 2층에서까지 녹색 유니폼을 입고 소리를 질렀다.

2016년 프로축구 개막전에서 나온 골은 하나뿐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겐 절대강자 전북의 뻔한 승리처럼 보일 경기였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보면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요소인 예측 불가능성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올해 K리그도 종잡을 수 없으거란 예감을 갖기 충분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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